방전된 마음, 자연과 사람으로 충전하자
일요일 오전. 쉬는 날임에도 이상하게 지친다.
평일 간 받은 스트레스와 피로를
주말을 통해 물리쳐야 하는데
그럴 힘마저 없이 힘들다.
소파에 앉아 OTT를 통해 보고 싶었던
영화들이나 몰아보고, 식사는 배달로 때우고 싶지만
오래전 잡아놓은 약속 때문에 그렇게 하지도 못한다.
씻고 옷을 입고 나간다.
약속장소는 내가 살고 있는 서울이 아닌 경기도 외곽.
지도앱을 통해 검색해 보니 1시간 30분이 걸린다.
'다음부터는 무조건 토요일에만 약속 잡아야지.
내일 출근해야 하는데 이렇게 먼 거리를 나가다니
나도 참 어리석지'라는 생각을 한다.
그렇게 지하철을 타고 고속터미널역으로 간다.
더운 날씨임에도 사람들이 북적인다.
나는 역에서 나와 조금 떨어진 버스정류장으로 간다.
그곳에서 광역버스를 타고 한 시간가량을 더 간다.
통근 시간이 지하철로 30분 걸리는 나에게
이 여정은 굉장히 머나먼 여정이다.
그렇게 버스를 타고 좀 달리다 보니 이색적인 풍경들이 눈에 들어온다.
강남이나 종로 같은 서울시내 중심지 건물들보다
더 높은 건물들이 우뚝 서있다. 몇 년 전에 이곳에 왔을 때도
'더 이상 지을 곳이 있을까?'라고 생각했는데 몇 년 사이에
더 많은 건물들이, 더 높게 지어져 있다.
아파트들 또한 빼곡히 들어서있다.
내가 살고 있는 광진구와는 직선거리로 그다지 멀지도 않은데
이렇게 다른 풍경이 펼쳐질 줄은 몰랐다.
여행지를 고를 때 휴양지보다는 도심을 선호하는 나에게
이 고층건물 뷰는 아까의 기분과는 다른 기분을 선사한다.
이윽고 도착한 약속장소. 수많은 사람들이 웨이팅을 하고 있다.
우리도 번호표를 뽑고 대기하고 있었다.
그냥 가만히 앉아있기엔 그래서 슬슬 식당 주변을 돌아다녀봤다.
그런데 웬걸, 방금 전까지 보였던 고층건물과 아파트 촌 뒤로
조그마한 개울이 흐르고 있는 게 아닌가.
더 고개를 들어 멀리 바라보니 비닐하우스와 드넓은 들판, 산이 보인다.
차로 10분만 내달리면 이름만 들어도 다 아는 IT기업들의 본사가 있는데
이런 곳에 농사짓는 땅과 고즈넉한 시골 풍경이라니..
출발할 때와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 나 자신을 느낀다.
식사를 마치고 일행의 차를 타고 조금 더 외곽에 위치한 카페에 갔다.
그곳은 인적이 드물었다. 카페와 주유소들 만이 눈에 띄었다.
주위는 온통 푸르른 산과 들이다.
방전돼 있던 내 심신이 계속해서 충전되고 있음을 느꼈다.
커피와 조각 케이크를 벗 삼아 우리는 대화를 이어간다.
요즘 관심사, 취미, 가족들 안부, 옛 추억들을 곱씹으며 이야기를 주고받으니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그러는 동안, 나는 온몸에 에너지가 감돌고 있음을 실감한다.
충전기를 핸드폰에 꽂으면 영화를 보면서도 충전이 된다.
나 또한 그랬다. 쉼 없이 말을 하고, 또 들어주며 리액션해 주고, 끊임없이
머릿속에서 생각을 이어나갔음에도 지치지 않았으며 계속해서 충전되고 있었다.
가끔씩 고개를 돌리면 보이는 자연풍경은 충전을 더 가속시켜 줬다.
자리를 서서히 정리하고 작별 인사를 나눈다.
돌아오는 지하철 안, 문득 생각에 잠겼다.
'집에 계속 있었다고 해서 내가 이렇게 에너지를 가득 채울 수 있었을까?'
모를 일이다. 집에 있었다면 끊임없이 발전하는 타지를 보며
기술과 사회상에 감탄하지 못했을 것이고,
자연의 생그러움을 느낄 수 없었을 것이며,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과의 대화에서 얻는
정보나 교감, 신뢰, 고마움의 감정은 언감생심이었을 터.
물론 혼자 있다고 해서 충전이 안 되는 건 아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힐링하면 그것 또한 완충의 방법이다.
하지만 이왕이면 함께 충전하는 걸 권해드린다.
애니메이션 영화 '몬스터 주식회사'에서 몬스터들은
아이들의 울음소리를 에너지의 원천으로 삼는다.
이와 비슷하게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우리의 에너지 원천이 아닐까?
나도 다른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 충전한 것처럼
그 사람도 나로 인해 충전 됐을 수도 있다.
긍정과 즐거움의 에너지를 주고받는 인간관계,
사람에게 받은 상처를 사람에게 치유받는
이 엄청난 선순환. 이것을 직접 느껴보셨으면 좋겠다.
사람이 인위적으로 만들어 낼 수 없는 자연 풍경도 함께라면 더욱 좋을 것이다.
평소 보지 못한 사람, 보지 못한 풍경에서
우리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
여러분들도 그런 경험을 꼭, 자주 하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