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人災) 공화국은 이제 그만
얼마 전,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나는 생존자다'를 봤다.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 사고들의
생존자를 인터뷰한 다큐멘터리인데
그중 내가 가장 관심 있었던 회차부터 봤다.
그것은 바로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다큐를 보는 내내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특히 삼풍백화점의 주인이자 그룹 총수가
자신도 피해자라고 하는 대목에선 같은 사람으로서
환멸을 느끼기도 했다.
삼풍 사고가 발생하기 1년 전,
느닷없이 한강 다리가 끊어지는 일도 있었다.
전쟁 중에 전략적으로 다리를 폭파시킨 게 아니다.
여느 날처럼 출근하는 우리네 가장이,
학교에 가던 학생들이 건너던 그 한강다리가 끊어지면서
피해자와 가족들의 평범한 일상도 끊어져 버렸다.
'안녕히 다녀오세요'라는 말을 그냥 하는 인사말 하듯
하는 게 아닌 진심을 담아서 했어야 했던 시대다.
왜 그런 불안한 시대를 사람들이 살아야 했나.
가장 큰 원인은 아무래도
성장 제일, 물질 만능주의가 아닐까 한다.
못 살고 힘들었던 시절.
우리는 다른 나라들처럼 잘살고 번듯하게 사는걸
꿈꿔왔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어렵게 자본도 유치받고, 많은 기술인들과 학자들이
노력했고, 평범한 국민들이 근면성실하게 일해준 덕분에
지금처럼 잘 사는 대한민국이 만들어졌다.
그 과정이 위대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성장기에서 일부 기업인들과 정치인,
공무원들은 중요한 가치 하나를 빼먹었다.
바로 사람의 가치이다.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사람이라는 가치를 너무나도 경시한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 때문에 성장의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떠났다.
삼풍만 보더라도 그렇다
회사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건설자재를 축소하거나 저품질의 것으로 채우고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관료들과 뒷거래를 하는
이러한 행위들이 사람들을 죽게 만들었다.
법적인 처벌이 재범과 재발을 막는다는 보장은 없지만
지나치게 관대한 법의 잣대가 아쉬운 것도 사실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사망한 삼풍사고의 책임자들이
준엄한 법의 심판을 받았다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심어주지 않았을까?
그들이 저지른 잘못들이 결국엔 수많은 생명을 앗아간
사건으로 연결 됐는데 그들에게 적용된 법은
과실과 뇌물혐의 등이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이러한 행위가 사람의
안전과 생명을 위협한다는 걸 충분히 인지했을 것이다.
고로, 이들의 죄목은 '살인'에 가까운 무언가를 적용했어야 하지 않나.
희생자들의 원한을 달래주기 위해서, 복수를 위해서
강력한 처벌을 하자는 게 아니다.
부정한 행위를 했을 경우 어떻게 된다는
강한 메시지를 전달해 줌으로써
앞으로 그 누구도 그러한 잘못을
저지르지 않게 선례를 남겼어야 했다는 개인적인 생각이다.
결국 사람의 생명을 간과한 성장은
중요한 자재를 빼먹는 건설과 다를 게 없다.
삼풍 백화점 붕괴사고 이후 30년이 흘렀다.
그때도 놀라운 발전을 이뤄낸 대한민국이지만
지금은 당시와는 차원이 다르게 더 발전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때와 마찬가지로
지난 30년 동안 많은 사람들이
그릇된 사고방식의 피해자가 되었다.
그렇다면 관(官), 기업들만 책임이 있는 걸까?
우리 각자 모두에게도 책임이 있다.
이상하게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만 있다는
그 병, 바로 안전불감증이다.
'나는 괜찮겠지', '설마 저것 때문에 무슨 일 있겠어?'
하는 생각 때문에 모든 사고는 시작된다.
구명조끼를 입어야 한다는 경고에도
'답답해서 싫다'라고 일갈하고
2인 1조로 움직여야 할 때 '시간의 효율성'을 앞세워
혼자 다니고..
다들 한 번쯤은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안전에 신경 쓰는 주변 동료를 바라보며
'쟤는 왜 이렇게 유난이야'라고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
사고로 인한 피해자는 누구나 될 수 있다.
나도, 당신도 마찬가지로 운 좋게 살아있는 것이다.
이젠 더 이상 이런 사고사로 죽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
각자 자신이 맡은 직업에 대한 윤리,
그리고 생명존중 사상과 안전에 대한 교육 및 인식이
절실한 시점이다.
지금까지는 우리가 성장만을 중요시 여기며
달려왔다. 그 덕에 우리는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성공 사례가 되었다.
이제는 성장 보다 다른 가치를 중요시 여겨도 된다.
언제까지나 '성장, 발전'을 명목으로
저러한 불법과 생명경시를 눈감아줄 순 없다.
'인재 공화국'에서 황망하게 세상을 떠난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위한다면 꼭 그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