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을 피하는 방법

남자들이여, 거리낌 없이 양산을 펴자

by 레지널드

무더운 여름철, 사람들은 저마다 건강 관리에 힘쓴다.


쇠해진 기력을 보충하기 위해 양질의 보양식을 먹는다든지

아무리 더워도 꼭 운동을 한다든지,

안 먹던 영양제도 챙겨 먹는 등 방법은 가지각색이다.


여기에 더해 나는 사람들이 꼭 추가로 신경 썼으면 하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바로 피부관리.


보기만 해도 뜨거운, 작렬하는 태양으로부터 우리는

피부를 보호해줘야 한다.

자외선은 햇빛이 강한 낮 시간뿐만 아니라

흐린 날도 구름을 투과하여 우리를 공격한다.

세수하고 스킨과 로션 바르는 게 기본인 것처럼

외출 시 꼭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고 나가길 권장드린다.


내가 자외선 차단제 예찬론자가 된 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자외선 차단제는

여자들만 바르는 거라고 생각했고

남자가 바르고 다닌다고 하면 속으로

'아 되게 꾸미는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했다.


주변 사람들의 강권에 의해 어쩌다 한번 바르면

미끌미끌하면서도 끈적이는 그런 감촉 때문에 힘들었다.

엄청나게 두꺼운 막이 내 얼굴을 가로막는 기분이랄까.

그뿐 아니라 이상하게 땀도 더 나는 것 같았고

그 땀 색깔이 하얀 것도 맘에 들지 않았다.

나에게 자외선 차단제는

'비 남성적'(?)이었으며 몹시 귀찮은 존재였다.


그렇게 내 20대를 안타깝게 보냈다.


그러다 몇 년 전, TV 채널을 막 돌리다가

한 토크쇼를 보게 됐다. 게스트로 유명한 피부과 전문의가

나왔는데 그 의사가 그런 말을 했다.


"자외선 차단제만 잘 발라도 저를 만날 일은 거의 없을 겁니다"


이유는 딱 짚어 말하기 힘들었지만 저 멘트가 굉장히

내 마음속에 들어왔다.

공교롭게 그날, 뉴스에서도 자외선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보도가 나왔다.


그러고 보니 수많은 연예인들이 피부관리 비결로

수분섭취와 함께 자외선 차단제를 항상 언급했었던 것도 기억이 났다.


한번 발라볼까 하고, 생전 처음으로 내 돈 주고 자외선 차단제를 구매했다.

처음엔 어색했으나 정말 며칠 지나고 나니 자연스럽게 습관화 됐다.


'많이 판매된 순'으로 설정한 뒤 맨 위의 제품을 구매했는데

그 후 자외선 차단제에 대해 좀 알아보니

종류도, 성분도 그렇게 다양한 줄 몰랐다. 신세계였다.


플라시보 효과인지는 몰라도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고 나서부터는 자신감이 생겼다.


'나는 피부 보호를 위해서 뭔가 하긴 한다'

'이 정도 햇빛은 뭐 받아도 돼. 난 선크림 발랐으니까'

'피부 노화가 조금은 더디게 진행되겠지'


하지만 눈이 부실정도를 넘어서서 멀어버릴 것 같은

강한 태양빛을 자외선 차단제 하나로 이길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요즘 아이템 하나를 추가했다.


바로 양산.


자외선 차단제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고민했다.

남들 없는 집에서 바르고 나가는 행위와

사람들이 많은 거리에서 남자가 양산을 쓰고 있는 건

나에겐 굉장히 다른 문제였다.


'이건 정말 비웃음거리가 될지 몰라'


양산을 쓰는 남성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뉴스는 보긴 했지만

정작 내 주변에서 양산을 쓴다는 사람은 없었고

길거리에서 본 적도 없었다.


고심에 고심을 하던 어느 날,

한 남성이 양산을 쓰고 지나가는 걸 봤다.

내가 그 사람을 보면서 조금이라도

'아 저 사람 참 유별나네'라고 생각했다면 아마 지금도 쓰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 사람을 보면서 난 '양산 썼네. 그럼, 당연히 관리해야지'라는 생각만 들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선입견이 사라진 것을 깨닫고, 바로 양산을 사러 갔다.

물론, 화려한 양산을 쓰면 정말로 사람들이 다 볼 것 같아

최대한 어두운 색을 골랐다.

요즘은 양산과 우산을 겸한 기능 제품들이 많이

나와있는데 나도 그런 제품을 구입했다.


'자외선 차단제'라는 큰 벽을 넘어서서 그런지 의외로

양산은 쉽게 적응했다.


외려 양산은 뿌듯하기까지 하다.


'난 한여름에 돌아다니는 것도 이제 부담스럽지 않다'

'난 선구자다'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지 않던 시절, 날려버린 내 피부를

'양산 쓰는 남자' 초기 멤버가 되어 조금이나마 보완해 준다는 뿌듯함이 솟는다.


남들 시선은 중요하지 않다. 내 피부가 중요하다.

그리고 사람들은 내가 헐벗고 다니지 않는 이상,

나에게 전혀 관심이 없다. 남에게 시선을 주고

이해 못 하겠다는 생각을 할 만큼 여유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러니 남자들이여, 이제부터 양산을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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