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읽었던 책들, 어른이 되면 어떤 느낌으로 와닿을까
어렸을 때, 정말 책을 읽기 싫어했다.
변명 같지만 읽기 싫은데 계속
읽으라고 하니까 더 싫어서 안 읽었다.
물론 지금은 그 시절을 후회한다.
그럼에도 정말 재밌게 읽었던 소설 몇 편은 있었다.
내가 읽었던 책 속에는 너무나 멋지고
행복한 삶을 살았던 사람도 있었고,
'어쩜 저렇게 사람이 불쌍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안쓰러운 삶도 있었다.
며칠 전, 문득 그 책 속의 주인공들이 떠올랐다.
초등학생의 시선에서 읽었던 그 사람들의 삶을
어른이 된 지금 다시 읽어본다면 어떤 느낌일까?
나는 과연 그 인물들 중 누구의 삶과 가장 가까우며
앞으로 지향해야 할 삶은 누구의 삶일까?
우리 집에는 아동용 세계문학전집이 있었다.
다 읽어보진 않았지만 당시에도 재밌게 봤던 건 여러 번 읽었다.
그 후 20년이 훌쩍 지났다.
다시 그 주인공들을 만나고 싶어졌다.
내가 가장 재밌게 읽었던 건
쥘 베른의 소설 '80일간의 세계일주'다.
19세기에 발표된 작품이고 나는 20세기와 21세기를 살던
초등학생이라 시대가 정말 다름에도 불구하고
그 책을 읽으면 가슴이 뛰었다.
나도 세계일주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물론이고,
주인공 필리어스 포그가 참 멋있다는 생각을 했다.
설정 자체가 멋있다.
베일에 싸인 백만장자 영국 신사. 어떻게 부자가 된 지
그 누구도 모르며 정해진 시각에 나타나
말없이 카드게임만 하고 정해진 시각에 식사하는 포그.
굉장히 정 없고 칼 같아 보이지만
너그러울 땐 한없이 너그럽고 아량과 선행을 베풀 줄 아는 인물이다.
시간에 쫓기는 급박한 상황에서도 절대 여유로움을 잃지 않는,
그러면서도 중요한 게 뭔지 파악할 줄 아는, 말 그대로 신사다.
포그의 하인이자 집사 파스파르투도 빼놓을 수 없는 캐릭터다.
이 사람은 과거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정말 많은 직업을 가졌었다.
집안일의 매력을 느끼고자 이 일에 지원했다가
졸지에 세계일주를 하게 됐다.
가끔 사고도 치지만 자신이 맡은 일에 책임감도 강하고
포그에 대한 충성심도 투철하다.
포그 못지않게 부러운 존재이기도 하다.
고용주 잘 만나서 유급 세계여행을 하니 말이다.
그들의 여정 중 아시아는 일본, 홍콩, 인도만 나온다.
어렸을 땐 그게 참 아쉬웠다.
아마 포그가 지금 사람이라면 분명 한국을 들르리라 믿는다.
그다음으로 재밌게 본 소설은
마크 트웨인의 '왕자와 거지'.
이 책을 통해 나는 함부로 장난치면 큰일 난다는 걸 깨달았다.
쓸데없이 옷 바꿔 입는 장난을 치는 바람에
왕자는 고생이란 고생은 다하고,
결국 아버지의 임종도 지키지 못했다.
그래, 그때 했던 고생과 목격했던
서민들의 삶을 기반으로 훌륭한 정치를 했다고 믿어야지.
가난한 집안, 그것도 거지로 태어난
톰 캔티도 훌륭한 인격을 가진 사람이다.
톰이 정신 못 차리고 계속 왕자 답지 못한 행동만 했다면
왕위계승은 다른 사람에게 돌아갔을 것이며
결국 그들의 운명은 그렇게 비참하게 지속됐을 것이다.
결정적으로 왕위 계승일에 톰은 진짜 왕자를 모른척하고
자신이 왕이 될 수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직하게 사건의 전말을 고백한다.
격식과 예의를 강조하는 영국 왕실의 기풍,
그리고 그와 반대되게 하루하루 비참하게 먹고사는
하층민들의 삶을 잘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읽는 내내 슬펐던 작품도 있다.
해리엇 비처 스토의 '톰 아저씨의 오두막'.
어렸을 때는 그 소설이 노예제가 끝난 이후에
나온 책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커서 알았다.
이 책이 출판 됐을 당시는
남북전쟁이 일어나기 전이었다는 걸.
주인공 톰은 중년의 흑인 남성이자,
노예이면서 한 집안의 가장이다.
선량한 주인을 만나 잘 살아오던 그였지만,
주인의 가세가 몰락하면서 톰의 인생도 지옥으로 바뀐다.
그 지옥 같은 여정을 보여주면서 작가는 노예제를 강력히 비판한다.
이 책을 처음 읽을 때,
나는 농장주 레글리의 잔혹함에 큰 충격을 받았다.
물리적인 폭력보다 더 잔인하게 느껴진 건
레글리가 흑인 노예를 감시하는 작업반장으로 흑인을 임명하고
그 작업반장은 더 가혹하게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괴롭힌 대목이다.
같은 사람끼리 어디까지 바닥을 보이며
살 수 있는지 보여준 작품이다.
이 책을 여러 번 읽은 건 톰의 선함,
거기서 뭔가 교훈을 얻고자 한 게 아니었을까 싶다.
이 책들을 다시 읽는다면, 나는 어떤 생각을 할까?
아마도 제일 먼저 필리어스 포그의 경제적 여유를 갈망하겠지.
그리고 가난하게 자랐지만 정직함을 가슴 깊게 새겨둔
톰 캔티처럼 살자고 다짐할 테고.
그리고 톰 아저씨는.. 이 아저씨는 사실 좀 복잡하다.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건지. 남을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까진 좋은데,
요즘 세상은 호의를 감사하게 생각하긴커녕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서.
재밌게 읽었던 소설 몇 가지를 떠올려보기만 해도
그때 생각에 미소가 지어지고 빨리 읽어보고 싶다는 열망이 솟구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