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혼자 놀기
인생 색감보정 프로젝트 #2 혼자 놀 줄 모르는
혼자 노는 건 재미없는 일일거라고 외로울거라고 생각했다. 혼자 맛집에 가서 맛있다며 호들갑 떨 수도 없고, 날씨가 좋다며 실없는 이야기를 나눌 수도 도란도란 사소한 고민을 나눌 수도 없기 때문이다. 나는 혼자 놀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누군가를 만날 때만 화장을 했고, 예쁜 옷을 차려입었으며 기분 좋게 문을 열고 나섰다. 혼자 일정을 소화할 땐 초췌한 옷차림에 대충 세수만 하고 떨떠름하게 문을 나섰다. 밥도 대충 저렴한 걸로 때웠다. 약속 상대가 '나' 혼자뿐인데 나를 소중히 대해주지 않으니 놀고 있는데도 적적했고 왁자지껄한 사람들 속 공허함도 느꼈다. 항상 오직 나만을 위한 외출이 아닌 상대방을 만나는 것에 초점이 맞춰진 약속이었다.
초반에는 다른 사람을 만나고 대화를 나눈다는 것이 설레고 즐거웠었지만 어느순간부터는 약속을 마치도 돌아오는 길이 왠지 모르게 허탈하고 아쉬웠다. “이 말은 하지 말걸… 괜히 나댔네…”라고 생각하며 오히려 고민을 나누기 전보다 더 많은 고민이 생겨버린 날도 많았다. 고민은 나누면 반이 된다던데… 나에게는 그게 적용되지 않을 때가 많더라. 사람들과의 만남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 생각이 깊어졌다.
그런 고민을 가지고 있을 때쯤, 겨울 유럽 여행을 가게 되었다. 파리에서 5일 정도 머물렀는데, 각자 하고 싶은 게 달라 ‘혼자 하루를 온전히 여행해 보기‘로 했다. 혼자 서울에서 놀아 본 적도 없는 내가 외국에서 혼자 논다니. 그것도 파리에서. "낭만적이잖아?' 설레면서 동시에 긴장됐다.
파리에서 ‘나와의 데이트’를 위해 예쁘게 꾸몄다. 불편하지만 왠지 패셔너블해 보이는 코트를 입고 가장 잘 어울리는 반묶음 머리와 블러셔도 톡톡 해주었다. 런던에서 산 향수도 칙칙 뿌려주었다. 이 차림으로 한국에서 집을 나선다면 분명 동생이 "누구 만나냐?"며 의심의 눈초리로 보낼 게 뻔한 그런 옷차림이었다. 사실 나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자 사랑하는 사람은 ‘나’인데… ‘나’를 늘 뒷전으로 생각했다는 걸 깨달았다. 오늘 하루만큼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찬 일정이었고, 진정으로 나를 아껴주는 하루였다.
평소와 달리 잔뜩 꾸민 옷차림으로 나와의 데이트를 나섰다. 좋아하는 노래 ‘angel baby’를 이어폰에 꼽고 에펠탑 주변을 산책했다. 산책하다가 사진사를 만나 사진을 요청드렸고 혼자 놀았던 날을 기념해 사진으로 남기기도 했다. 오르세 미술관에서 좋아하는 고흐 작품만 골라서 봤고, 내가 좋아하는 카메라로 반나절동안 풍경 사진도 왕창 찍었으며 좋아하는 몽블랑 디저트도 포장했다.
행복했다!
혼자 노는 법은 별거 없었다. 다른 사람을 만나듯이 나와 데이트 일정을 잡고, 좋아하는 옷을 입고, 행복하게 문을 나서면 되는 것이었다. 한국에 돌아온 지금, 가끔 유럽에서 혼자 놀았던 날을 떠올리며 추억에 잠기곤 한다.
혼자 놀 줄 아는 사람은 별거 없다.
나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위해주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