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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토에스더 Aug 04. 2024

말귀를 잘 못 알아듣는

사오정이 아이들에게 인기쟁이인 이유

 인생 색감보정 프로젝트 #1 사오정



  말귀를 잘 못 알아듣는 사람을 흔히 '사오정'이라고 부른다. ‘날아라 슈퍼보드’를 보지 않아서 왜 사오정이라고 부르는지 의문이었는데, 머릿살의 주름에 귀가 파묻혀 있어서 말귀를 잘 못 알아듣는단다. 사진을 보니 조금 귀엽게 생긴 것 같기도 하다. 사오정과 관련한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예전에 술집에서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대화하다가 내가 말귀를 계속 못 알아들었다. 나는 그냥 인정하자 싶어 한마디 덧붙였다. 

 “그래. 내가 사실 약간 저팔계 긴 해.” 

그러곤 살짝 웃으며 당당하게 화장실을 갔는데 친구 둘이서 

”응? 근데 사오정아님? “ 이래서 너무 민망했다.


맞다. 나는 사오정이다. 사람들이 웅얼거리며 하는 얘기는 거의 잘 못 알아듣는다. 친구와 통화할 때면 거의 5번 이상은 "어? 뭐라고 했어?"라고 되묻게 된다. 친구들에게는 오늘따라 더 못 알아듣는 다며 매번 욕먹기 십상이다. 상대방이 짜증 낼 것 같을 땐 그냥 알아들은 척 슬쩍 넘어기도 한다. 이런 사오정 같은 내 모습이 불편하지만 사오정이 뜻밖에도 아이들에게 인기 만점이 될 수 있는 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 난 내 안의 사오정을 그저 귀엽게, 따뜻하게 봐주기로 했다.


 초등학생 남형제 두 명을 과외했을 시절 이야기다. 과외 초반이라 아이들과 조금 어색했고 많이 친해지지 못한 상태였다. 어느 날 형제 중 동생인 민우가 아직 어려 책을 나에게 읽어달라고 했다. 그때 난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있었어서 무슨 책인지 큰소리로 물어봤다.


나: 책 읽어달라고? 무슨 책인데?

민우: 소피가 xxx 오나 둥 완둥 **^^*}~*책 (잘 들리지 않았다)이요

나: 뭐?? 소피가 완둥완둥 똥을 싼다고?


'소피가 화나면 정말 정말 화나면'이라는 책이었다. 아이들은 숨이 넘어갈 정도로 깔깔댔다. 거의 10분 넘게 둘이서 데굴데굴 구르면서 웃더라. 이때까지 그렇게 낯을 가리다가 완둥완둥 한방에 그렇게 웃다니. 완둥완둥이라는 생전 처음 보는 표현도 완전 초등학생 취향저격인데 똥이라는 치트키까지 들어갔으니... 어머니께도 정말 웃긴 선생님이라고 칭찬했다고 한다. 



그 이후로 아이들은 나를 완둥완둥 선생님이라고 불렀고 근 2년간 함께하며 남동생들처럼 서로 티격 댔지만 가끔 보고 싶은 소중한 제자들이 되었다. 업무를 할 때는 말을 잘 못 알아듣는 것으로 인해 내 능력을 의심하는 건 아닐까 걱정이 크다. 늘 다시 한번 여쭈어보거나 혼자 잘 못 들어 착각해 일처리에 있어 죄송한 적도 많다. 하지만 그러한 성격이 사랑받을 때는 뜻밖에도 아이들과 함께 할 때다. 들리는 그대로 억양을 약간 웃기게 해서 뱉어보시라. 아이들은 생각보다 더더 좋아할 것이다. 순수하고 사랑스러운 아이들이기에.


창신동 골목, 사랑스러운 아이들


 요즘 평범한 동네의 골목을 찍는 것에 푹 빠져 있다. 가장 좋아하는 시간대는 오후 6시 즈음, 아이들이 학원에서 돌아오고 회사원들이 퇴근하는 시간대. 그 시간대에의 하늘은 가장 여유로운 색깔로 물들어있고 사람들도 마음이 노곤노곤 푹신해진 상태다. 그 시간에 골목길을 돌아다니다 보면 주로 부모님이나 조부모님의 손을 잡고 놀이터에서 집으로 가는 아이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엄마와 손을 꼭 잡고 오늘 있었던 일을 조잘조잘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면 저절로 마음이 몽글해진다.  


어쩌면 아이들에게는 어른 모두가 '사오정' 같을 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의도를 가지고 열띠게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토해내는데 우리 귀에는 도통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른들은 아이들만의 언어에 점차 적응하면서 또 아이들은 어른들의 언어를 조금씩 따라 해보면서 서로 깊이 있는 소통이 가능해진다. 각자 특성을 인정하고 존중해 주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각자 가진 특징은 저마다 장단점이 있다. 예민함이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지만 다른 사람의 아픔을 섬세하게 공감해 줄 수 있는 것처럼. '사오정'이 누군가에겐 답답함이지만 누군가에겐 웃음 유발제인 것처럼 말이다. 정말 마음에 안 드는 내 특징과 성격이 있다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다시 찬찬히 살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생각 외의 곳에서 그 성격을 사랑해 주는 사람을 만날 수도 있으니까. 


사오정이 뜻밖에 아이들을 웃기는 재능이 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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