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처럼 떨어지며 그것은 내려왔다
반투명한 살갗 한 잎 어느새 불어나서
너와 나 우리 모두를 집어삼켜 버렸다
― F75. 낙엽처럼 떨어진 것
속절없이 지나가는 무의미한 순간들에
어떻게든 색을 담아 두 눈으로 붙잡아도
결국엔 시야를 벗어나 과거되어 흑백돼
― B54. 최고의 표백제
반갑게 인사하는 지친 기사님과
가볍게 목례하는 바쁜 탑승객과
그 모습 멍하니 보는 무념무상 내가 있다
― D59. 승차입니다
빽빽하게 들어차서 숙주인지 사람인지
네가 뱉은 숨의 거품 내가 금새 주워섬겨
너와 나 우리 모두가 한 거품 속 정어리야
― B42. 너인가 나인가 너인가
끝났다 생각하고 잠에 져버렸어
일어나 정신차림 멀어진 도착점뿐
한숨이 절로 나오지만 군말 없이 시작해
― E28. 끝은 오지 않아
조정으로 출근하려 부대끼는 백관들은
검은 홀을 꽉 쥔 채로 고개 숙여 예를 다해
앞뒤로 줄지어 서서 정연하게 조례해
― E35. 예나 지금이나
철퍽 하고 으깨지는 점박이 낙엽잎이
내 발을 꼬옥 잡고 함께 내딛었고
미끄덩 하늘이 땅이 되어 꼬리뼈가 땅 만났네
― A23. 이른 가을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