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다섯, 다시 멈춰 선 대학생
대학교에 들어오기까지 나는 여러 번 돌아갔다. 회사생활에 적응하지 못했고, 재수에 실패했고, 결국 상담심리학과를 선택하며 ‘이 길만은 끝까지 가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지난 학기, 모든 걸 걸고 공부했음에도 기대만큼의 성적을 받지 못했다. 더 이상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작은 학교에서조차 이 정도라면, 사회에서는 더 아래로 가라앉겠지. 현실을 마주하며, 안 되는 걸 붙잡고 이루지 못할 희망을 품은 채 스스로를 갉아먹으며 괴로워하겠지.’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나는 방학이 가장 두려웠다. 학기 중에는 시험과 과제가 나를 채찍질했지만, 방학이 시작되면 나 자신을 몰아세우는 것이 오롯이 나의 몫이었다. 나는 늘 무언가를 해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자격증, 토익, 비교과 프로그램, 전공서적… 해야 할 목록들을 작성해 가면서 애써 불안을 가렸다. 하지만 계획은 늘 어그러졌고 결과는 손에 쥐어지는 것이 없었다. 자격증 시험에 떨어지고, 욕심껏 빌린 책들은 다 읽기도 전에 반납기한이 다가왔다. 무언가를 해내겠다고 했던 나는 결국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실패자, 패배자가 되어갔다. 그래서 차라리 학기가 나았다. 적어도 학점이라는 기준이 있었고 성적이 좋기만 하면 나 자신을 조금은 인정할 수 있었으니까.
회사에서 첫 좌절을 경험한 이후, 나는 시간이 주어지면 반드시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 속에 살았다. 남들보다 늦게 시작했으니 앞으로는 쉬지 않고 달려야만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친구를 만나 시간을 보내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하루를 흘려보낼 때면 나 자신이 너무 쓸모없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스물다섯의 겨울방학에도 어김없이 무너졌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사람을 만나도 죄책감이 들었고, 결국 나를 스스로 고립시켰다. 만나는 사람이라곤 주말에 보는 남자친구뿐이었지만 감정을 숨기느라 에너지를 소진한 나는, 만남 이후 더 오래 누워있고, 어찌할 바 없이 쌓여가는 죄책감과 무가치감에 더 자주 울었다.
도무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머릿속은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고 누군가 미래 계획을 물어오면 횡설수설할 뿐이었다. 두 달 가까이 그렇게 지냈다. 하지만 1년 넘게 혼자 있어 본 나에게 두 달은 길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더 깊은 우울감 속으로 잠식되어가던 찰나에 문득 밖에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생각은 더 하지 않고 노트북과 필기구를 챙겨 카페로 나갔는데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기분이 나아졌다. 고소한 원두 향, 고민과 일상을 나누며 웃고 떠드는 사람들, 노트북을 펼치고 업무를 정리하는 직장인들… 나 역시 그저 하루하루를 기쁨과 고통을 느끼며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 중 한 명이라고 생각하니 비로소 숨이 트이는 것 같았다.
이제는 나도 내가 좋아하는 글쓰기와 사진을 하며 내가 진짜 하고 싶었던 것들을 시도해보려 한다. 내 안에 쌓인 이야기들을 글로 남기고, 그동안 숨기고 있던 내 모습을 조금씩 드러내 보이려 한다. 재수실패, 회사 부적응, 학업 좌절 등, 나는 아직도 성공경험이 없고 자존감도 바닥을 친다. 겨울 방학 내내 무력감에 잠식당하며 힘겨운 시간을 보냈으나 그 속에는 늘 앞으로 나아가려는 마음도 함께 있었다. 멈춰 서기를 반복하며, 다시 앞으로 나아가는 중이다.
‘회항’.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다시 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