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에게 직장생활이 힘든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번째로 힘든 이유는 별다른 변화 없이 오늘도 어제처럼 하던 일을 계속해서 반복하는 것이다. 이미 익숙한 일이라 마음은 편하다. 그렇지만 계속해서 단순하게 반복될때는 고민에 빠진다. 스스로에게 느껴지는 무기력과 성장 없이 정체되어 있는 삶이 불안을 주기 때문이다.
직장생활이 피트니스 센터의 러닝머신 위를 달리는 것 같다. 죽어라 달려 보지만 한걸음도 앞으로 나가지 못한다. 러닝머신 위에서는 발만 살짝 들어도 달리는 것처럼 느껴진다. 착시 현상이다. 자신의 힘으로 내딛지 않는 이상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러닝머신 위의 사람처럼 타력에 의해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이 있다. 익숙한 일상에서 자력을 잃다보니 조그만변화에도 두려움을 느낀다. 불안함에 어쩔 줄 몰라 한다. 직장인은 변화를 거부하지도 그렇다고 현실에 만족하지도 못하는 심리적 이중성에 빠져든다. 서서히 삶에 지쳐 갈 수 밖에 없다.
직장생활이 힘든 두 번째 이유는 변화에 있다. 변화는 아무리 편하게 다가온다 하더라도 변화 자체가 스트레스의 근원이다. 익숙했던 자신의 생존 환경을 위협하는 사건이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변화는 지금까지 하지 않았던 일을 해야 하는 일로 바꾸어 버린다. 고민하지 않았던 것을 고민하게 만든다. 하지 않아도 되었던 일을 하도록 압박을 가한다.
조직에는 권한과 책임이 존재한다. 권한과 책임은 직장에서 조직 라인을 따라 각자의 역할에 맡게 배분되어 있다. 각 계층의 책임자는 문제가 생기면 각자에게 위임된 권한과 책임을 가지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보통의 경우 직장인은 문제를 일으키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것에는 암묵적인 동의가 존재한다. 정해진 일이 정해진 규칙대로 일어나고 처리되는 안정적인 생활을 바라고 있다.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은 현재의 생활을 불안하게 만드는 원인이다.
새롭게 시작하는 일은 결과가 확정되기 전에는 좋고 나쁜 것의 가치 판단이 어렵다. 변화를 받아 들여야 할지 거부해야 할지 판단을 할 수가 없다. 불확실한 상황이 길어지다 보면 직장인은 새로운 변화를 대하는 일 자체가 불편해진다. 변화는 일상화된 규칙의 적용을 받지 않고 일어난다. 개인은 물론 모두를 어디까지 뒤흔들어 놓을지 알 수가 없다. 직장인은 사소한 변화에도 예민한 반응을 보일 때가 많다.
직장인은 조직에 매몰되어 있다. 개인보다는 조직이라는 전체의 부분으로만 표현된다. 전체속의 한 부분이다 보니 직장인의 무능함은 용서받기가 쉽다. 조직에서는 규정대로만 움직여도 책임질 일이 거의 없다. 조직에 규정이 없다면 움직이지 않으면 된다. 조직은 의외로 직장인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있다. 안정이 담보된 상황을 뒤로 하고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는 건 위험을 자초하는 짓이다. 권한과 책임이라는 틀을 벗어나는 일을 한다는 것은 안전한 상황에서 벗어남을 의미한다. 문제가 발생하면 책임을 면할 길이 없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조직의 안정을 바라는 문화 속에서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대가는 무겁다. 변화는 결과와 무관하게 조직을 위태롭게 만든다는 편견의 공격을 받게 된다. 편견은 불안에 휩싸인 직장인에게 적극적인 지지를 받게 된다. 경직된 조직 분위기와 문화 속에서 조직을 위협하는 돌발 상황이 발생하면 어떻게 될까? 누구도 선뜻 나서지 못하며 앞장서지 못한다. 어떠한 사건이던 조직이 함께 책임을 져야 한다. 그래야 조직에 속한 개인이 무사할 수 있다. 암묵적 기대가 구성원에게 문제해결 능력을 상실하게 하는 것이다.
공동 책임은 무책임과 같다. 조직의 책임은 곧 면책을 의미한다. 무능은 부패보다 심각한 폐해를 일으키며 조직에게 오랫동안 아물지 않는 깊은 상처를 남긴다. 조직에 잠재된 트라우마는 조직문화로 되살아나고 이후의 조직 구성원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직장인은 무수히 많은 나뭇잎 중 하나에 불과하다. 거센 비바람과 뜨거운 태양 광선 쏟아지는 눈보라에도 나무에 꼭 달라붙어 있기만을 소망하는 소박한 나뭇잎과 같다. 큰 욕망 없이 매달려 있기만을 바라는 것은 나뭇잎이 소원하는 것이다. 조직에서 개인의 희망은 중요하지도 않고 관심도 끌지 못한다. 나무에게 있어서도 하나의 나뭇잎은 중요하지 않다. 나뭇잎은 입장이 다르다. 거세게 불어오는 바람이 생사를 가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뭇잎이 달려 있기 위해서는 나뭇가지가 무사해야 한다. 나뭇잎이 잘 달려 있으려 해도 나뭇가지가 바닥에 뒹굴고 있다면 소용없는 일이다. 나뭇가지는 나뭇잎보다 힘이 쎄기에 잘 견딜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그렇지만 잘 견디는 나뭇가지는 바람에 저항하지는 않는다. 바람의 위협에 의지하며 유연한 모습을 보인다. 이리저리 휘둘리는 것 같지만 자신에게 닥친 위험을 효과적으로 분산시키는 몸짓이다.
직장인은 두 가지 위협에 부딪히며 살아가고 있다. ‘변화 없는 무료한 일상’ 과 ‘일상을 위협하는 변화’ 그 중 어느 것에 맞닥뜨리게 되더라도 직장인에게는 힘든 시련이 될 것이다.
어느 경우에 처하던 상관없다. 현실에서 적응하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바둥거려야 한다. 가장 좋은 해결책은 “끊임없이 움직여라” 다. 현실에 안주하는 순간 곧바로 도태가 시작된다.
적응은 편안함을 부르고,
편안함은 변화의 거부를 부르고,
거부감은 자신의 도태를 부르게 된다.
변화를 거부하는 태도는 빠르게 변하는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게 한다. 현실에 뒤쳐지다 보면 어느 새 현실과 괴리되고 동떨어진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무심히 흘러가는 시간에 머물러 있다면 유능한 직장인도 진부하게 된다. 한 때 그들에게 유용했던 지식과 기능을 낡아서 쓸모없게 된다. 과거의 유능함이 현재의 무능함으로 바뀌고 나면 변화하지 않았던 직장인의 자리는 사라진다. 직장인은 목적의식을 갖고 움직여야 한다. 무료함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도 그렇고 위협적인 변화에 순응적으로 적응하기 위해서도 그렇다. 끊임없이 바뀌는 현실에 맞춰 유연하게 움직여야 희망대로 살아갈 수 있다.
어쩌면 우리는 시간이라는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지도 모른다. 단지 매달려 있는 것에만 집중하다보면 자신이 왜 그렇게 매달려 있어야 하는지를 잊는 경우가 있다. 목적 없는 매달림은 오래가지 못한다. 매달려 있어야 하는 동기부여가 되지를 않는다면 꽃망울 하나 잎사귀 하나도 피워 낼 수 없다. 각자가 매달림 속에서 의미를 찾아야 한다. 아침이슬처럼 영롱한 자신의 가치를 발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