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이 맛집을 알아냈다 한다. 사무실 근처에서만 주로 점심을 해결하다 며칠 전 차를 타고 근처 냉소바 맛집에서 식사를 했다. 색다른 맛을 찾아 한 번 움직이니 직원들이 새로운 맛집 정보를 공유했나 보다. 고추 짜장 맛집으로 유명한 중국집인데 대기 줄이 길어 조금 일찍 출발해야 먹을 수 있다 한다. 생소한 이름에 그러자고 하면서도 점심시간으로는 좀 이른 감이 있어 좀 있다 출발하자 했다.
식당에 도착해서야 직원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이 후회가 되었다. 비가 오는 날인데도 열 명이 넘는 사람들이 식당에 대기하고 있었다. 대기의자에 앉아 내리는 장맛비를 바라보며 잡담을 나누었다. 간혹 몇몇 사람들이 식당에 왔지만 대기자들을 보고 그냥 가버렸다. 식당 안 상황을 유리문 넘어 보지만 식당 안의 손님은 좀처럼 줄지 않는다. 차츰 점심시간 내에 먹고 갈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며칠 전 직원들도 왔다가 대기자들을 보고 그냥 지나쳤다 했다. 이번에는 꼭 먹어 보겠다는 강한 의지로 일찍 출발할 것을 제안했던 것인데 시간이 이르다는 생각에만 꽂혀 늦게 출발한 것이 내 판단 착오였다. 그보다 중국집 짜장 맛이 거기서 거기지 얼마나 대단하겠냐 라는 생각이 느긋하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내리는 비가 굵어지더니 어느덧 점심시간이 다 되어 갔다. 슬슬 조바심이 났다. 평소 다른 중국집의 음식 나오는 속도를 생각하면 이렇게 더디진 않을 텐데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게다가 손님이 많으면 으레 서빙하는 직원도 빠릿빠릿 움직일 텐데 어째 움직임이 느긋한 게 중국인의 만만디가 생각이 났다. 제때 먹고 갈 수 있을지 불안감이 들었다.
대기 의자에서 식당 안으로 들어섰을 때는 이미 12시 45분이 되었다. 그냥 다른 데 가자고 할 수도 없었다. 인사이동으로 떠나는 직원과의 마지막 식사라 애써 맛집을 찾았는데 이대로 가자고 하면 분위기를 망칠 것 같았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어쩌겠나 싶어 주문을 해서 기다리는데 이게 또 하세월이다. 옆 테이블을 보니 식사가 한 번에 같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한 그릇씩 따로따로 나와 일행이 같이 함께 먹지 못하고 있었다.
시간이 촉박하니 내 표정이 밝지 않았나 보다. 맞은편에 앉은 우리 직원이 내 표정을 살피더니 벽에 붙어 있는 안내문을 가리켜 주었다. 순간 웃음이 나왔다. 짜장면을 제외하고 음식을 그때그때 만들어서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으니 화내지 말라는 것이다. 나 같은 사람을 많이 겪었었나 보다. 아예 안내문을 사전에 작성해 부착해 놓을 정도면 많이 느리다는 것을 이해하라는 뜻인데 좀체 진전이 없으니 그마저도 심드렁해진다.
홀에서 일하는 주방장의 얼굴을 살펴봤다.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하길래 짜장면과 볶음밥, 짬뽕 밖에 안 하는데 이렇게 손이 느릴까. 경기가 안 좋아 자영업자들의 폐업이 늘어나는 어려운 상황인데 이렇게 식당을 운영해도 괜찮을까. 식당은 식수 인원을 제때 맞춰 가면서 운영하는 것이 중요하다는데 여기는 이렇게 운영해서 될까. 걱정보다는 화난 마음에 어디 잘되나 보자는 심정이었다. 주방장은 나의 뒤틀린 심사에 대해서는 그러거나 말거나 자신의 속도로 천천히 음식을 내고 준비하는 모습만 보였다.
순간 어릴 적 교과서에서 읽었던 윤오영의 ‘방망이 깎던 노인’의 수필이 떠올랐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지만, 옛날 풀을 메긴 옷감을 다듬잇돌에 올려 방망이로 두드리면 옷감이 펴지거나 윤기와 촉감을 살렸었다. 작가는 노점상 노인에게 방망이를 사려고 한다. 노인은 방망이를 깎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작가가 그만하면 되었다고 하지만 노인은 그냥 가라 한다. 방망이가 뭐 대단하다고 노인은 찬찬히 살피고 뜸을 들여가며 방망이를 만든다. 차 시간을 놓치고만 작가는 씩씩거리며 노인을 욕한다. 아내가 그 방망이를 사용하고는 요렇게 꼭 알맞은 방망이는 좀체 만나기 어렵다는 칭찬을 한다. 작가는 마음이 풀리고 노인에 대한 태도를 뉘우친다.
문득 식당 주인이 음식에 대해 진심이라 생각되었다. 이렇게 대기자들이 많으면 식당 주인은 대체로 빨리빨리 만들어 손님을 응대하려 할 것이다. 그래야 돈도 많이 벌고 더 많은 손님이 몰려와 장사가 더욱 번창하도록 하려는 것이 인지상정일 것이다. 이 식당은 그런 것 같지 않다. 손님이 많이 오거나 적게 오거나 자기 방식으로 식당을 운영하는 것 같다. 정성스럽게 한 그릇씩 음식을 내놓은 것을 기본으로 여기는 것 같다. 아니면 주방장의 손이 느려서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
한참 후에 나온 음식을 한번 먹고서야 기다린 보람을 느꼈다. 역시나 사람 입맛은 똑같아서 괜히 사람들이 많은 것이 아니었다. 청양고추를 짜장에 잔뜩 넣어 매웠지만 다진 돼지고기와 느끼한 짜장 맛을 잡아는 독특한 맛이 색달랐다. 맛있게 매운맛에 면도 쫄깃해 식감도 좋았다. 매워도 계속 댕기는 것이 중독성이 있었다. 살면서 많은 짜장면을 먹었지만 이런 짜장면은 또 처음이었다.
사는 게 각박해지고 경쟁이 치열해지다 보니 직장인의 점심 한 끼 식사도 여유가 없다. 그 보다 먹고살기 힘들다 보니 식당에서 사 먹을 여유도 없어 편의점에서 도시락으로 식사를 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살기 위해 먹지만 먹는 음식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크게 관심을 갖지 못하고 그냥 한 끼 때우는 식사가 비일비재하다. 어쩌면 오늘 점심 한 그릇이 그 사람만을 위해 정성스레 준비한 음식이라 여겼다면 대접받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식당 밖에 많은 사람들이 또 대기하고 있다. 이미 점심시간을 지난 후라 이들은 직장인과 달리 여유가 있어 보였다. 굵은 비가 어느새 가늘어졌다. 직원들은 다들 맛집을 정복한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즐거움을 주는 것이 음식이 주는 또 다른 선물임을 그들의 밝은 대화 속에 느껴졌다. 장맛비 때문에 식당 가는 게 불편해져 점심 먹는 것도 일이 되는 여름이 한층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