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싶던 나, 임신을 결심하다

아기를 가져보는 건 어때요?

by 단월

그 시절, 나는 가장 깊고 검은 구멍에 빠져 있었다. 누군가를 구하겠다고 들어간 세계에서 정작 나는 매일 무너지고 있었다. 우울증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는 있었지만 그게 설명해주는 건 내 안의 텅빈 고요뿐이었다. 밤마다 죽음을 상상했고 어느 날은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그때의 나는 그냥, 살아지고 있었다. 살고 싶어서가 아니라 숨이 붙어 있으니 그저 그렇게 살아지는 나날이었다.

남편에게 끌려가 상담실 문을 열었다. "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말했을 뿐인데 상담사는 뜻밖의 제안을 했다. “아기를 가져보는 건 어때요?”

  순간적으로 불쾌했고 무례하다고 느꼈다. ‘아기? 지금 나의 이 상태에서? 살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할 소린가?’ 하지만 상담사의 말은 단순한 제안이 아니었다. 살기 위해 어떤 무게를 품어야 한다면 그 무게가 아이가 될 수도 있지 않겠냐는 마지막 줄 같은 말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줄을 붙잡았다.

  살고 싶어서가 아니라 사라지고 싶지 않아서. 죽지 않기 위해 아이를 갖기로 했다. 그것은 생의 시작이 아니라 내 죽음을 유예하는 일이었다. ‘사라지고 싶다’는 마음을 겨우 견디게 해줄 새로운 이유가 필요했던 나날이었다.

  임신은 기적이 아니었다. 여전히 불안했고 우울했고 두려웠다. 나는 준비된 엄마도 따뜻한 사람도 아니었다. 그저 내가 사라지지 않기 위해 도피처로 삼은 존재가 ‘태아’였을 뿐이니까.

  하지만 그 작은 생명이 내 안에서 자라기 시작하면서 나는 하루하루를 버텼다. 불면의 밤이 조금 줄었고 눈물이 줄어든 건 아니지만 어디론가 흘러갈 이유가 생겼다. 살아진다는 수동의 시간을 지나, 사라지고 싶은 절망을 건너, 나는 아주 조금씩 ‘살아주는’ 사람이 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출산. 첫 아이를 안고 처음 눈을 맞췄을 때, 나는 너무 무서웠다. “이 아이가 나를 구한 걸까?”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아니야. 내가 이 아이를 구하려 했던 거지.” 그 둘 사이의 간극은 나에게 ‘살고 싶은 마음’이 생겨났다는 증거였다.



  그렇게 6년이 흘렀다. 지금 나는 세 아이의 엄마다. 첫 아이는 나를 버티게 했고 둘째는 나를 길들였고 셋째는 나를 정착하게 만들었다. 이제는 내가 겪은 이 여정을 살고 싶은 누군가에게 말과 글로 건네고 싶다.


“사라지지 말고, 살아줘.”





《사라지지 말고 살아줘》 이 시리즈는 고된 육아일기나 아름다운 출산 스토리가 아닙니다. 그저 죽고 싶던 내가 어떻게 세 아이의 엄마가 되면서 오늘을 살아내게 되었는지 그 기록을 남깁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어려운 숨을 쉬고 있는 당신에게 닿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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