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간 일기장 속 번진 글씨 위에서, 나를 꺼내 읽다
다 지워버리고 싶었던 날들
그때는 일기도 쓰지 않았다.
하루하루가 살아지는 대로 흘렀고
의식도, 기억도 없이 사라져갔다.
그러다 우연히
서랍 속에서 오래된 노트를 하나 발견했다.
내가 썼던 글씨였다.
삐뚤빼뚤하고,
감정이 격하게 묻어 있고,
잉크가 번져버린 페이지.
그 문장들을 손가락으로 짚어보다
나는 울고 말았다.
그건 너무도 분명히
살아 있으려 했던 사람의 기록이었다.
나는 나를 이해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살아야 할 이유가 있나.”
“오늘 아침에 일어났다. 아무도 나를 반기지 않았지만,
그래도 눈을 떴다.”
그 문장들은 나를 비난하지 않았다.
살고자 발버둥 치던 나의 증거였다.
어느 날은
그날 먹은 밥의 종류까지 적어놓았고,
어느 날은
내가 들은 말, 받은 상처, 그날의 울음이 적혀 있었다.
그 글들을 보며 깨달았다.
나는 나를 포기하지 않았구나.
그냥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어
종이에게 털어놓고 있었구나.
흘러간 문장이 나를 일으켜 세운다
나는 매일 한 문장씩이라도 적으려 한다.
그 문장이 오늘의 나를 지켜줄지
내일의 나를 붙잡아줄지는
지금은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 시절의 내가 남긴 문장 덕분에
나는 지금 여기 있다는 사실이다.
내가 남긴 말, 내가 읽는 위로
나는 이제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다.
그 문장들이 누군가에게 닿기를 바란다.
언젠가
흘러간 나의 말이
어느 누군가의 오늘을 살게 하기를.
그리고 그 사람도
자신의 문장을 써내려가길.
“사라지지 말고 살아줘.”
그건 이제
나를 위한 문장이 아니라
당신에게 보내는
작은 생존의 기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