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꺼내기까지 얼마나 망설였을까
분주한 아침이었다.
첫째, 둘째의 등원 준비, 셋째의 수유와 보챔, 아직 덜 치운 어젯밤의 식탁… 정신없이 주방에 서 있던 나에게 네 살짜리 둘째가 다가왔다.
그러나 아이는 내 앞이 아니라 내 뒷모습에 대고
작고 느릿한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지금 놀 수 있어? 없어....?"
그 말에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이게 과연 네 살 아이의 말일까 싶을 정도로 조심스럽고 미안하고 고민이 엿보이는 말투였다.
그 짧은 질문 속에 아이가 얼마나 망설였을까.
지금 말을 걸어도 될까? 엄마 바쁜데 괜찮을까? 안 놀아준다고 하면 어떡하지?
작은 가슴으로 여러 번 생각하고 꺼낸 말이었을 것이다.
나는 얼른 손에 들고 있던 것들을 내려놓았다.
"당연히 놀 수 있지!"
그러고 나서야 문득 떠오른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자주
"엄마 이것 좀 하고 조금 있다가 놀자~"
라고 말했는지.
둘째는 오빠도 있고 막내 동생도 있어서 언제나 눈치를 본다. 엄마를 독차지하기 어려운 걸 아는 아이.
그래서 더 자주 참고 더 조심하고 한 박자 늦게 행동한다.
그 모습이 안쓰럽고 마음 아프다가도
첫째의 거침없는 자기표현과 떼쓰기 육아에 지칠 땐
솔직히 둘째의 그런 모습이 편하다는 생각도 든다.
아이 같았으면 좋겠으면서도
그렇게 조심스러운 아이가 나를 조금 편하게 해주는 것도 사실이다.
모순된 감정이다.
사랑하면서도 미안하고 고마우면서도
짐짓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이 감정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나는 좋은 부모가 되고 싶다.
모든 아이에게 똑같이 공평하고 싶고
각자의 방식으로 건네는 마음에
더 예민하게 더 따뜻하게 반응하고 싶다.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하루는 첫째에게 더 미안하고
또 하루는 둘째의 마음이 더 걸린다.
그래도 분명한 건
오늘 아침 그 아이의 작은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았다는 사실.
그 순간만큼은 나도 괜찮은 부모였다고
스스로 다독일 수 있었다.
완벽하지 않아도
아이의 마음을 알아채려는 마음.
그게 지금의 나에게는
부모로서 내릴 수 있는 가장 좋은 결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