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과 본능 사이, 어느 밤의 작은 흔들림
책대로, 원칙대로라면 단호했어야 했다.
하지만 아이의 말 한마디에
나는 또 엄마가 되었다.
저녁밥을 잘 안 먹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거의 안 먹었다.
나는 말했다.
“배고플 거야. 이거 말고는 더 이상 아무것도 없으니까 꼭 밥을 든든하게 먹어야 해.”
그런데도 둘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밥숟갈을 내려놓았다. 나는 원칙대로 움직였다.
밥을 안 먹으면 간식도 없다.
정해둔 약속이고 지켜야 할 훈육의 원칙이었다.
그렇게 하루를 마무리할 즈음 아이 셋 모두 잠자리에 들 준비를 했다. 다른 아이 둘은 곧잘 잠들었다.
하지만 저녁을 아무것도 먹지 않았던 둘째,
이 에피소드의 주인공인 아이는 밤 10시가 되도록 좀처럼 잠이 들지 못했다.
결국 아이가 입을 열었다.
“엄마, 배고파서 잠이 안 와.”
책에서는 말한다.
이럴 땐 단호해야 한다고.
‘밥을 안 먹으면 배가 고파서 잠이 안 올 수도 있다’는 경험자체가 교훈이 될 수 있다고.
나도 안다.
그게 정답일 수 있다는 걸.
하지만, 정말 그럴 수 있을까?
진심으로 배가 고파서 잠이 안 온다는 아이를
끝까지 그냥 자라고 하며 원칙을 지킬 수 있는 엄마가
세상에 몇이나 있을까.
나는 아이 곁에 앉았다.
“그렇지. 밥 안 먹었더니 진짜 배고파서 잠이 안 오지?”
이제 알겠지? 저녁밥은 꼭 먹어야 해. 그래야 밤에 편하게 잘 수 있어.”
그리고 다정하게 물었다.
“그래서 지금 뭐가 먹고 싶어?”
아이의 대답은
요즘 자주 먹는
“계란 토스트.”
그 말에 나는 불을 켜지도 않은 주방에서
작은 조명 하나만 켜고
아이와 함께 계란을 풀고 식빵을 구웠다.
밤 10시.
우리 둘만의 작은 야식 시간이 시작됐다.
놀라웠다.
평소엔 조금만 어떤 음식이든 깨작깨작거리는 아이가
계란 토스트를 한 입 한 입, 정말 후다닥 먹어치웠다.
그 모습에
‘이 아이, 진짜 많이 배고팠구나.’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나는 아이 옆에 앉아
이야기 저 이야기,
하루의 끝자락을 함께 나누었다.
계란 토스트 하나를 뚝딱 해치운 아이는
약속한 대로 양치를 다시 하고
내 손을 꼭 잡은 채 이불속에 누웠다.
그리고 1분도 채 되지 않아
새근새근,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날 밤,
나는 아이를 가르치지 않았다.
대신 믿고, 함께했고, 안아주었다.
작은 말 하나에 흔들렸지만,
그 덕분에 더 깊이 연결될 수 있었다.
아이의 그 한마디.
“엄마, 배고파서 잠이 안 와.”
그 말은 나에게,
‘오늘도 잘했어.
엄마로서, 충분히.’
라고 말해주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