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기쁨인가, 아이의 기쁨인가
-엄마의 만족이 되지 않기를-
엄마라는 사람은 자신의 아이를 제일 사랑한다. 그래서 내 아이가 좋아하는 것은 다 해주고 싶다.
그런데 문제는 다해주는 엄마의 공급을 내 아이는 고맙게 여기며 모두 반기는가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아이의 자발적인 요청에 의한 것일 때에만 아이들은 진정 고마워하고 기뻐한다는 것이다(행복반 홍교사).
아이가 정말 원하는 것을 들어줄 때는 아이의 평소 행동에 대한 '세심한 관찰'이 필요하다.
일상생활 가운데 관심을 가지고 흥미로워하는 것을 파악한 후에 아이에게 이런 것은 어떤지 의견을 물어보는 것이다.
마침 필요하고 관심 있는 것을 엄마가 제안했다면 아이는 뛸 듯이 기뻐하며 'YES'를 외칠 것이 분명하다.
아이의 진정한 기쁨을 위한 것. 그것이 육아의 핵심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에게는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내재된 한 가지 잔재주가 있다. 그건 바로 '세심함'이다. 이 세심함은 청결함이라거나 완벽주의와는 좀 다르다(반대인 것 같기도 하다^^;).
사람의 감정을 캐치하고 공감하고 알아서 빠져주는 그런 능력으로, 한마디로 '소심함'과 일맥상통한 듯도 하다.
많은 날들 동안 갈고닦아진 이 능력으로 우리 아이들을 길러왔기에, 누구보다 더 아이들의 이야기나 요구에 귀를 기울이고 반응하는데 익숙했다(그에 반해서 내 체력은 한 해, 한 해 엄청난 속도로 떨어지지만 말이다).
첫째, 둘째는 각각 3살 때까지 가정보육을 했다.
어릴 때 오롯이 아이와 함께하는 것이 힘들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이 '세심함'임을 생각했다.
누구보다 내 아이를 가장 사려 깊게 배려해 줄 수 있었고, 그래서 힘들 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행복반의 홍교사다!'
라고 말이다.
아이들을 육아하는 동안 나는 철저히 세상가운데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내 아이들에게만큼은 가장 훌륭한 엄마이자, 선생님이고 싶었다.
그렇게 놀이하며 함께 추억을 쌓아갔고, 지금도 그렇게 함께 살아가고 있다.
사람들은 행복할까. 행복하게 살고 있는 걸까?
다른 사람은 두고라도, 나부터 행복한가?
행복을 누리고 있는 걸까?
행복은 무언가 굉장한 것이 아니겠지.
그저
나로 인해,
너로 인해,
우리로 인해
그 하루가 무사히 지나가는 것이 감사가 되는 거란 것을 안다.
한 번이라도 웃고,
기쁨으로 미소 지었다면,
그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한 거라 생각한다.
아이의 기쁨은 나의 기쁨이 될 수 있지만, 그것은 오롯이 아이에게 가장 큰 기쁨이 되어야 한다.
나는 그저 아이의 기쁨을 함께 기뻐해 줄 수 있는 조력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아이의 기쁨을 위한다고 하는 일이 나의 만족을 위한 것이 아니기를, 온전히 아이가 기뻐할 수 있는 선택들을 순간순간 할 수 있기를.
오늘도 간절히 바라는 '행복반 홍교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