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자신의 삶을 잘 살아갈 거라는 믿음 가지고
주일날 교회에서 밥을 먹는데 앞자리에 앉으신 나이 드신 권사님들 두 분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아들만 둘이면 힘들어. 연락도 한 통 없고. 딸이 있어야 해."
아들을 키우는 입장에서 관심이 가는 대화라, 아시는 분들은 아니었지만 조금 더 귀기울여 들었다.
말씀하시던 분이 나의 시선을 느끼셨는지 힐끗 쳐다보더니 나도 바라보시며 계속 말씀을 하신다.
"키울 때 부모 욕심에 이런 저런 잔소리 하면서 내 욕심껏 키우려다 보면 아이랑 관계가 안좋아지고 크면 더 왕래를 안하게 되더라구. 딸은 커도 어쨌든 한번씩 왔다갔다 하는데, 아들은 영 전화 한통이 없어서 섭섭하고 그러더라구. 기대를 안하고 지들끼리 잘 살아라 해야해"
우리 아이들은 아직은 엄마를 찾고, 손이 많이 가니까 바로 체감되지 않았지만, 조금만 더 크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 때 엄마인 나는 무덤덤하게 그런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오늘 오전에 둘째 학교를 데려다 주는데, 또 심통이 잔뜩 났다.
분명 23분에 같이 나왔는데 엘리베이터가 윗층까지 올라가느라 시간이 지체된 것이다. 엄마인 나는 그저 따라 나온 것 뿐인데, 횡단보도 앞에서 괜히 나에게 심통을 부린다.
'내가 늦게 나온 것도 아니고. 시간이 늦은 것도 아니고. 단지 너의 생각보다 지체된 것 뿐인데. 살다 보면 그렇게 내 생각대로 딱딱 맞아 떨어지기만 하지 않는 게 세상 살이인데. 고작 1,2분 늦은 거 가지고 게다가 아무 상관없는 엄마 탓을 하면서 심통을 내?'
마음 속으로는 이런 저런 말들이 떠오른다.
말을 꾹 참는다. 그리고 함께 뛰어주었다. 대신 먼저 앞서 가지 않는다. 아이의 일이니, 나는 보조만 맞춰서 아이의 분주한 마음을 함께 해 주기로 했다.
저 앞에 같은 반 친구 여자 아이가 엄마 손을 꼬옥 잡고 대화를 나누면서 걸어간다.
우리 둘째는 아직도 늦었다는 생각에 이마가 잔뜩 찡그려서는 나보고 먼저 가란다.
'급하면 자기가 먼저 갈 것이지' 자기가 급하니까 엄마인 나보고 먼저 가란다.
나도 저 앞에 딸 엄마처럼, 우리 아들이랑 손 잡고 도란도란 걷고 싶은데 말이다.
갑자기 그 권사님의 말이 떠오른다. '아들이라 그런가?....'
함께 손잡고 걷고 싶은 엄마의 마음도 몰라주는 우리 둘째. 잠깐 섭섭한 마음이 들었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그건 아들과 딸의 차이가 아니다. 그저 성향 차이다.
우리 첫째는 둘째와 같은 나이 때, 엄마 손을 꼬옥 잡아 주었다. 항상 옆에서 걸었다. 그래서 엄마 말고 더 멀리 가보라고 내가 손을 놓아주었다. 손을 꼬옥 잡고 사랑을 전달하고, 손을 살짝 풀어주며 네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보라고 손을 놓아 주었다. 대신 눈은 아이를 따라 갔다. 다치지는 않는지, 위험하지는 않는지 지켜보되 한 걸음 떨어져 걸었다.
성향 차이다. 아들, 딸이 아니라, 나는 그저 우리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같은 엄마가 키워도 이렇게 다른 성향을 가진 두 아이를 만났는데, '딸은 어떨까?' 그런 마음은 고이 접는다.
그저 '잘한다, 잘한다.', '가장 너답게 자라렴' 해주면서 아이를 사랑을 담아 지켜보는 것이 바로 엄마인 나의 역할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그래, 정말 중요한 것은 자신의 삶을 자신의 템포대로 살아가는 것임을 알게 해주는 것이다.
불안한 마음을 내려놓고, 내 생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눈으로,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
그것만이 우리 아이들에게 내가 해줄수 있는 일이고, 물려줄 수 있는 유산임을 잊지 말아야겠다.
다시 나는 나에게 초점 맞추자.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잘 살아갈 것이다.
내 삶을 좀 더 즐겁고 풍요롭게 살아야 우리 아이들도 그 모습을 보고 더 멋지게 날아오를 것임을 믿으면서 오늘도 조금만 더 힘내는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