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편. 관계를 잃지 않고 살아가는 법
앞서 말한 경제적 생존의 물음에 대한 답에 근거하여, 질문은 곧 다음으로 이어진다.
“나는 이 사회 속에서 어떤 관계로 살아가고 있는가?”
그래서 우리는 두 번째, 사회적 생존을 마주하게 된다.
앞서 누차 말했듯, 생존주의자라는 정체성은 한국 사회에서 아직 생소하고 낯설다.
누군가에게 “나는 생존주의자다”라고 말하는 순간 돌아오는 반응은 대체로 곱지 않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군인이냐, 전쟁 놀이하냐”라는 말을 듣기도 하고, 때로는 음울한 세상 분위기 속에서 괴팍한 사람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EDC(Every Day Carry), 즉 매일 휴대하는 도구의 문제다.
이 EDC에 대해 생존주의자들은 칼·불·빛을 기본 요소로 삼지만, 이 가운데 한국 사회에서 가장 문제적인 것은 단연 칼이다. 해외에서는 일상적 도구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한국에서 칼을 소지하는 행위 자체는 곧바로 사회적 생존의 실패로 이어진다. 경찰의 단속 대상이 되거나, 타인의 눈에 잠재적 범죄자로 낙인찍히는 순간, 그 어떤 논리도 무용하다.
그렇다면 과연 한국에서의 사회적 생존과 물리적 생존은 모순되는 것일까?
만일 내게 물어본다면 "아니다" 라고 감히 말하겠다. 나는 이것을 근원적 부분에서 바라보고 싶다. 문제는 ‘칼’이 아니라 사회적 시선과 신뢰의 문제다. 인구의 과반 이상에 맞춰, 도시에 사는 우리는 무엇을 소지하는가보다, 어떻게 보이는가에 의해 생존이 좌우된다.
사회적 생존이란 무엇인가 라는 물음에 대해, 나는 단순히 무리에 섞여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군중 속에서 자기 자리를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한다고 말하고 싶다.
재난이 닥치면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모이게 된다. 하지만 필연적으로 모든 집단은 내부와 외부를 가르게 된다. 그 결과, 기존 사회로부터 삐뚤어진 삶을 살아온 사람은 이 과정에서 고립될 수 밖에 없다. 운이 좋으면 집단과 멀찍이 떨어져 혼자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운이 나쁘다면, 모든 것을 빼앗기고 쓸쓸히 도태될지도 모른다.
따라서 사회적 생존은 곧 배격당하지 않는 삶을 준비하는 것이다. 이건 위기 상황에서만의 문제가 아니라, 평소의 생활 태도 속에서 이미 결정된다.
도시에서 사회적 생존은 우리가 흔히 ‘사교성’이라고 부르는 것과 닮아 있다.
다시 말해, 도시 속에서 사회적 생존을 유지하려면, 역설적이게도 어느 정도 유행을 따라가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맛집을 함께 가고, 유행하는 카페와 전시를 경험하고, 어느 정도 시대의 흐름에 발맞추는 것.
이런 일상은 단순한 취향 소비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집단 속에서 낯설지 않게 남기 위한 전략이다.
누군가와 대화할 때 너무 시대착오적으로 보이지 않기 위해,
공동체가 공유하는 문화와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
필요할 때 신뢰를 얻고 관계망 안에 남기 위해.
이런 일들이 단순한 허영이나 사치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사회적 생존주의의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집단 속에서 자신을 ‘낯설지 않게 유지하는 기술’이다. 기술이라 표현한 이유는, 이는 후천적으로 충분히 늘 수 있는, 연습으로 일부 극복 가능한 영역이기에 그러하다. 이렇게 끊임없는 연습을 토대로, 매일 겪는 실전들 속에서 사회적 유대와 공감의 끈을 이어가기 위해 우리는 문화적 맥락을 공유해야 한다.
그리하여, 이런 태도는 사회적 생존의 기반이 된다.
그러나 사회적 생존을 단순히 ‘유행을 쫓는 것’으로만 한정지을 수는 없다. 진정한 사회적 생존은 결국 관계 속에서 맺는 신뢰에서 비롯된다.
친구를 존중하고, 애인을 진정성 있게 사랑하며, 동료와의 의리를 지키고, 가족을 소홀히 하지 않는 것.
이런 태도야말로 위기 상황에서 진짜 자산이 된다. 재난이 닥쳤을 때, 누군가가 당신을 피난처로 받아들이거나, 남은 물 한 컵을 내어줄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 신뢰 때문이다.
사회적 생존을 마음속에 품고, 체화시킨 훌륭한 생존주의자는 그래서 단순히 장비를 챙기는 사람이 아니다.
훌륭한 생존주의자는 사람을 존중하는 태도를 가방 속에 넣고 다니는 사람이다.
그래서 우리는 재난 생존 물품을 가방에 챙기는 것처럼, 사회적 생존을 위해서는 사람과의 관계망을 평소에 준비해야 한다.
취미 모임, 직장 동료 모임, 가족·친지 모임 같은 일상적 관계망.
온라인 커뮤니티, 지역 주민 단체 등 필요할 때 동원할 수 있는 사회적 자산.
위기 때 함께 이동하거나 자원을 공유할 수 있는 신뢰 기반의 공동체.
이런 사회적 네트워크는 결국 도시형 생존 장비와 다름없다. 단지 가방 속에 들어 있지 않을 뿐이다.
앞서 말한 것들의 반대급부로, 도시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물리적 위협보다 낙인이다.
“위험한 사람”, “믿을 수 없는 사람”, “이상한 사람”이라는 낙인이 찍히는 순간, 사회는 당신을 집단 밖으로 밀어낸다.
이는 곧 자원, 정보, 안전망에서 단절된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사회적 낙인은 신체적 위협보다 더 잔인하다. 도시에서 혼자 남겨진다는 것은 곧, 안전·정보·자원에서 차단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회적 생존주의자는 언제나 타인에게 ‘함께할 만한 사람’으로 보이는 것을 최우선으로 둔다.
이에 감히 평가하건대, 사회적 낙인은 도시형 재난에서 가장 치명적인 위험 요소다. 따라서 사회적 생존주의자는 언제나 함께할 만한 사람, 신뢰할 만한 사람으로 보이는 것을 최우선에 둔다.
인간다운 생존이란 무엇일까.
도시는 사람들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도시 생존에서 사회적 생존은 단순한 보조 조건이 아니라, 가장 핵심적인 생존 전략임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 즉, 사회적 생존은 도시 생존의 핵심과도 같은 것이다.
칼 하나, 불씨 하나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 사람 속에서, 사람과 함께 살아남는 능력이야말로 도시형 생존의 첫 번째 장비다.
사회적 생존은 단순히 고립되지 않는 기술이 아니라, 인간답게 살아남는 기술이다. 신뢰받는 태도, 존중하는 마음, 시대와 함께 호흡하는 감각을 잃지 않는 것. 이것이야말로 도시에 사는 생존주의자가 매일 가방에 챙겨야 할 진짜 도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