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길이 남을 하루.
종강 파티라는 이름으로
남편 학교 동기들이 우리집에서 bbq파티를 했다.
오붓한 모임을 예상하고 추진한 일이었는데
누군가의 눈치없는 (고기 파티의 복음) 전파로
많은 이에게 이 소식이 전해졌다.
게다가 그날은 no school day.
그들의 자녀들도 함께 초대.
그래서 참석자의 인원이
성인 18명, 5주 된 신생아 포함 어린이 13명
총 31명이었다. (우리 가족 5명 포함하면 36명)
전날부터 온종일 청소와 정리를 했다.
주방도 미리 세팅해놓고 여러 잡동사니 다 치워놓고.
그날 오전 축구 대회에 공항 픽업까지 바쁜 일정을 소화한 남편과 입국한 지인까지
피곤에 쩔은 성인 3인과
no school day에 한껏 들뜬 어린이 3명이
코스트코에서 카트 한 가득 고기와 과일 등 먹을 것을 사 왔다.
미국 집 주인의 소유 재산인 그릴과 야외 테이블 덕분에
이 모든 인원의 수용이 가능하....긴 했지만
정말 복작복작.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릴에 불 지피는 동안 나는 세팅된 주방에서
밥과 찌개를 순조롭게 끓였으나
고기를 꺼내 시즈닝을 뿌리고 올리브유를 바르고 떠난 자리가 초토화었고 그 타이밍에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손님 맞으랴, 이것저것 챙기랴
나름 차분하게 정신 바짝 차리려 했으나
공사 중이어서 길이 막혔다는 분에게 보낸 문자를 보니
릴렉스. 라고 써 있다.
내가 그걸 왜 거기 썼는지 그날 밤에 암만 생각해봐도 기억이 없다.
그냥 나 자신에게 한 말이다.
릴렉스.
고기는 참. 맛있었다.
한국에서 맛 보기 힘든 꽃등심을 15덩이나 샀기 때문이다.
(미국은 고기가 싸다.)
좋은 날씨에 그릴에서 숯불에 구웠기 때문이다.
삼겹살도 엄청 고소했다.
미각이 둔한 나도 느낄 수 있었다.
그 고소함을 몇 명이 왔는지, 다 왔는지, 모두 초면이라 누가 누구인지, 어떤 분과 어떤 분이 부부인지도 모른 채
느끼며 밥을 퍼 먹었다.
여자팀 테이블에서 밥도 먹고
과일도 꺼내 먹고 커피도 내리고 그랬다.
그때, 손님 중 한 가정이 모밀 국수를 후식으로 제공하겠다 하시며 각종 도구를 포함하여 재료를 세 박스 가져왔다.
그리고 고기를 드신 후 요리를 시작하셨다.
모밀국수 남편은 좁디좁은 싱크대 옆 통로에 서서 무를 강판에 갈기 시작하셨다.
그때부터 내가 멘탈이 나간 것 같다.
여자 테이블은 이미 식사가 끝나 거실에서 과일과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눌 타임이었고
아이들은 고기로 배를 채운 후 뭘 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고 있었고
남자들은 야외의 뜨거운 햇볕을 피해
주방으로 들어와 식사를 하고 있었다.
각자의 필요가 다른 이 시점에 모밀 국수 요리팀까지 겹치니 아주 정신이 혼미했다.
아이들은 방황하다 게임을 시작했다.
아주 1,2층을 날아다니며 숨바꼭질을 했다.
그러다 뭔가 우당탕탕 뛰어다니며 ‘늑대야’ 게임도 한 것 같다.
이렇게 카오스 상태에서
각자의 그룹끼리 담소를 나누고 있는데
갑자기 이 모든 오디오를 뒤덮는 오열의 소리가 들려왔다.
오열의 주인공은
모밀 국수 요리를 막 대접하고 이제 나도 먹어볼까 하시던 부부의 둘째 아들.
아. 이 가정을 소개하자면.
이 부부에게는 아들 셋이 있는데
큰 아들은 우리 둘째와 이름도 나이도 같은 다니엘.
둘째는 세젤귀(세상에서 제일 귀여운)라는 별명을 가진 7세.
셋째는 5주 2일 된 신생아이다.
그러니까 이 세젤귀. 가 까무라치듯 울며 내려왔고
같이 놀던 아이들 5-6명이 우루루 내려오며
새라와 부딪쳐서 넘어졌다며 알려주었다.
세젤귀는 부러진 것 같다며 엄청나게 큰 소리로 울었고,
난 이 세젤귀가 우리집에 처음 놀러 왔던 지난 날
계단을 엎드려서 미끄러지며 내려왔던 상 장난꾸러기임을 상기하며
이것은 엄살 아니면 정말 부러진 것이라 생각했다.
세젤귀의 엄마는 그가 평소에 이렇게 우느냐는 나의 질문에 그렇지 않고 진짜 아픈 것 같다고 했고
헉. 나는 부러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아니길 바라는 마음으로 가만히 있었다.
주위에 있던 한 누나가 본인이 팔 빠진 경험을 이야기했는데
그와 증세가 완전 똑같다는 증언에 모두들 그럼 세젤귀의 팔 끼우러 병원으로 가자 하며
지인들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누나의 부모는 팔을 끼워주셨던 의사분에게 전화를,
세젤귀의 부모, 그리고 가해자로 지목된 세젤귀와 부딪힌 아이의 부모도
각각의 지인에게 이 응급 상황을 알리며
도움과 조언을 요청했다.
왜냐하면. 여기는 미쿡이니까.
병원가서 x-ray 한장 찍는것도
시간과 돈이 엄청나게 들 뿐 아니라
전신마취하면 1000만원이다.
어쨌든 세젤귀의 아버지는
가해자로 지목된 아이 아버지의 차를 타고
응급실로 떠났다.
모두들 팔 잘 끼우고 오라며
긍정적인 위로를 하며 보냈다.
이 와중에.
갑자기.
천장에서 물이 주루루루룩 떨어졌다.
화재 경보기에서 물이 흐르는 것이다.
무슨 일인가 싶어 천장을 쳐다보다
그 위치 즈음인 2층 화장실에 올라가보니
화장실이 물바다가 되어 있었다. (미국 화장실은 건식으로, 욕조 외에는 방수가 안됨)
세젤귀의 형인 다니엘이 물풍선 다발에 물을 넣으려고 애쓰다
잘 안되어 흘러내린 물이
바닥에 고이고 모여 물바다가 되었고
이 물은 1층 천장 히터가 나오는 구멍으로 새어 들어간 것이었다.
세젤귀와 다니엘의 엄마는
그를 말리려 여러 말로 설득했지만
이미 풍선에 꽂힌 다니엘은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그래서 (뼛속까지 교사인) 내가
“이모집 지금 물바다가 될 것 같아.
이모 홍수나면 이제 어디서 살지?”라며
부드러운 내용의 말이지만
선생님같은 표정으로 말렸다.
이 어머니는 모밀 국수 다 만들자마자,
세젤귀가 응급실에 가자마자,
홍수를 일으키고 풍선을 포기해야 하는 큰 슬픔에 잠긴 큰 아들을 위로해주어야 하는 기막힌 상황을 겪어야 했다.
정말 대박이다.
나보다 더 심한 여왕이 여기 계셨다.
차차 한둘씩 집으로 돌아가고
조금씩 정리는 되었으나
두 가정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점점 소식은 악화되었다.
팔이 빠진 것이 아니라는 소식,
애빙턴 병원에는 소아 정형외과가 없어
시티에 있는 병원으로 옮겨야 한다는 소식,
부러진 게 맞다는 소식,
그리고 병원에서 사진 찍었다고 한지 2시간여 지난 뒤에 결과가 나왔을 때
어머니는 전화를 받고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다.
세젤귀의 팔의 뼈가 부서져서
수술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된 것.
아.....
더디고 더딘 미국 병원.
구급차를 타고 시티 병원으로 이동한다고 했는데
구급차를 기다리는데만 1시간 걸린 듯.
병원에서는 전화도 잘 안 터지고
서로 연락도 잘 안되어 소통도 어렵고.
아무튼 참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냈다.
저녁 8시가 넘어서야 남편이 그 가족을 집에 데려다 주었고
그제서야 길고도 긴 하루를 마무리하게 되었다.
새라는 가해자로 지목되었지만
세젤귀보다 덩치도 훨씬 작고 훨씬 어린 여자 아이로
단지 거기에 서 있었는데
세젤귀랑 부딪쳤고
넘어졌고
꺾였고
뼈가 부러진 것이었다.
그래서 새라는 잘못이 없다.
하지만 새라의 부모는 최선을 다해
함께 있어주고 위로해 주고 책임져 주었다.
새라 아빠는 병원에 계속 왔다갔다 하며 함께 있어 주었고
새라엄마도 밤새 병원에 같이 있어주겠다며 책임을 졌다.
너무 미안해하고 마음 힘들어하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하지만 책임감 있는 모습에 감명받고
나의 모습을 돌아보기도 했다.
그렇게 떠났다.
아니, 떠나려고 하는데.
새라의 예쁜 구두 한 짝이 사라졌다.
그래서 또 온 집을 뒤졌다.
그래도 없다.
못 찾았다.
다음날 온 집을 청소하며 찾아 보아도 없다.
그래서 새라엄마에게 위로와 격려의 문자를 보내며 신발을 아직 못 찾았다고 했다.
답이 왔다.
“어제 밤에 신발 걱정 때문에 울면서 잤어요.
괜찮아요.
새라신발 세젤귀 엄마 가방에 있다네요.”
대박!
우리 세 엄마. 친해질 수밖에 없을 운명 같은 느낌. ㅎㅎㅎㅎㅎㅎ
정말 엄청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