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평생 직업이란 걸 가져본 적 없는 아버지 아래서 찢어지게 가난했던 당신은 다섯 동생 입에 풀칠이라도 시켜야 하는 큰형으로 90 평생 살아내셨다지요. 70여 년 전 충북 수석을 하고 장학금 받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에 입학한 이유도 제일 빨리 졸업해서 선생질로 월급 받아 동생들 밥 먹여야 해서 가셨다 했지요.
서울 부잣집 골방 하나 얻어서 망나니 도련님 셋을 맡아 입주 과외시키며 살아내신 그 세월.
당신은 마치 모르는 다른 나라 사람 이야기하듯 덤덤히 웃으며 이야기해주셨지요.
그래서 그런 줄 알고는 있었습니다만.
그리 되지 못한 막내아들 짜증만 평생 냈었지요. 세월 변한 거 모르는 답답한 노인네라고.
판사. 의사. 교수.
"사람 노릇"하려면 이 세상엔 딱 세 가지 직업만 있다고 버릇처럼 되뇌신 당신입니다.
당신 스스로 교수라 불리기보다는 선생이라는 호칭을 좋아한 이유도
그 사람 구실 할 수 있게 됐다는 안도에서 나온
애써 낮춘 대견함 때문이었을 겁니다.
큰아들 개원 의사 만들었으니. 사람 구실 할 겁니다.
하나 있는 사위 포항공대 교수 되었으니. 그냥 잘 살아낼 겁니다.
아버지.
이 총장님. 이교수님. 아니 이 선생님.
임종을 준비하라던 당신께서 6개월 훌쩍 넘겨 청주 작은 요양원에서 의식 없이 숨 쉬고 버텨내고 계신 이유가.
혹시. 이 막내아들 때문인가요.
사람 노릇 하며 제대로 밥벌이 못할 것 같은 걱정에 아흔된 의식 없는 노인이
질기게 버텨내고 계신 건가요.
이렇게 라도 있어줘야
판사 의사 교수되지 못한.
어릴 적부터 그리 되지 못할 것 같아 걱정하던 막내아들 살아낼 힘내 볼까 아직도 그 걱정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