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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ronto Jay Dec 09. 2022

판사. 의사. 교수

임종을 앞둔 아버지가 아직도 믿고 있는 세상의 단 세 가지 직업


"연명치료 거부 동의서에 가족 싸인이 필요합니다."

"수술을 하긴 했습니다만 임종을 준비하셔야 될 듯합니다."


지난 5월 아버지의 낙상사고로 뇌출혈 응급 수술을 마치고 나온 의사의 한마디입니다.


한평생 직업이란 걸 가져본 적 없는 아버지 아래서 찢어지게 가난했던 당신은 다섯 동생 입에 풀칠이라도 시켜야 하는 큰형으로 90 평생 살아내셨다지요. 70여 년 전 충북 수석을 하고 장학금 받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에 입학한 이유도 제일 빨리 졸업해서 선생질로 월급 받아 동생들 밥 먹여야 해서 가셨다 했지요.

서울 부잣집 골방 하나 얻어서 망나니 도련님 셋을 맡아 입주 과외시키며 살아내신 그 세월.

당신은 마치 모르는 다른 나라 사람 이야기하듯 덤덤히 웃으며 이야기해주셨지요.


그래서 그런 줄 알고는 있었습니다만.

그리 되지 못한 막내아들 짜증만 평생 냈었지요. 세월 변한 거 모르답답한 노인네라고.

판사. 의사. 교수.

"사람 노릇"하려면 이 세상엔 딱 세 가지 직업만 있다고 버릇처럼 되뇌신 당신입니다.


당신 스스로 교수라 불리기보다는 선생이라는 호칭을 좋아한 이유도

그 사람 구실 할 수 있게 됐다는 안도에서 나온

애써 낮춘 대견함 때문이었을 겁니다.


큰아들 개원 의사 만들었으니. 사람 구실 할 겁니다.

하나 있는 사위 포항공대 교수 되었으니. 그냥 잘 살아낼 겁니다.


아버지.

이 총장님. 이 교수님. 아니 이 선생님.


임종을 준비하라던 당신께서 6개월 훌쩍 넘겨 청주 작은 요양원에서 의식 없이 숨 쉬고 버텨내고 계신 이유가.

혹시. 이 막내아들 때문인가요.

사람 노릇 하며 제대로 밥벌이 못할 것 같은 걱정에 아흔된 의식 없는 노인이

질기게 버텨내고 계신 건가요.


이렇게 라도 있어줘야

판사 의사 교수되지 못한.

어릴 적부터 그리 되지 못할 것 같아 걱정하던 막내아들 살아낼 힘내 볼까 아직도 그 걱정에

끈질기게 숨 몰아 쉬시며 "계셔주시는" 건가요.


어쩌면 당신께서 맞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꾸자꾸 듭니다.


나중에

이 막내아들 아버지 따라 하늘나라 가는 날.

좋아하시는 책들 잔뜩 준비해주세요.

이생에 못한 공부 열심히 해서

아버지 좋아하시는 "판사" 거기서라도 한번 해볼게요.

"의사"한번 해서 사람 노릇이 아닌 아들 노릇한번 해볼게요.

"교수"도 한번 해서 마음 편히 해드릴게요.


당신 말씀대로 이 세상에 있는 제대로 된 직업은 세 가지 밖에는 없습니다.


더군다나 병신 같아 보이는 "판사 의사 교수"여야 한다는 그 말.

당신이 옳았습니다.


50아들 이제야 그맘 알아 누워 계신 당신께 고백합니다.




아버지의 의자 .정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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