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알 사탕

by 비상 시 출구

지하철을 타러 갔다.

공사로 인해 스크린 도어가 모두 열려있었는데 검은 철로를 포함하여 훤히 보이는 맞은 편이 다소 어색했다. 왠지 모를 두려움도 함께 다가왔다.


멀리서 열차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열차는 은빛 옆구리를 보이며 빠르게 달려갔다. 달리는 열차의 표면을 직접 눈으로 확인한 것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과거에는 스크린도어도 없이 사람들이 이 광경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겠지. 질주하는 열차 옆에서 떠들고 웃고 장난치며.


얼마나 많은 껍질들이 살아있는 것들로부터 나를 애워싸고 있는가. 온전히 인식하지 못하지만 분명 있다. 겹겹의 껍질들의 세계.

덕분에 온전히 보호될 수 있었고 또한 둔해져버렸다.

맞은 편에 앉은 직전까지 울던 아이가 초록색 사탕 봉지를 찢고 입 안에 넣는다.

양 볼에 이리저리 굴려본다.

방긋 웃는다.

잠잠해진다.

부모는 큰 호흡을 내쉬고 잠시 눈을 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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