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처럼 부유하며 이리저리 들락날락 먼지 한 톨 남기지 않고 다시 자리를 뜨고, 그 사람과 이어져 있다가도 다시 멀어져 그러나 끊기지 않아 우린 아직 연결되어 있어. 흠씬 두들기던 키보드 망설이게 만드는 건 또 같은 내용을 적고 있는 것은 아닐까 또 반복인가 싶어서.
같은 음식 같은 잠자리 같은 도로 같은 텀블러에 담은 같은 커피 마시며 다른 것이라곤 예측뿐. 매일 아침 세우는 새로운 ㄱㅖ획은 한없이 빗나가고.
나는 마침내 특정 장소에 특정 순간에 다다랐을 때 무언갈 결정할 용기가 생기는 사람입니다. 그전 선택의 순간엔 별 생각없이 무작위에 맡기구요, 꼼짝없이 기다려야 하는 상황엔 호흡을 살핍니다. 사건은 그것의 내적 몸부림과 외부적 담담함 사이 마찰로 발생하는 불꽃 같은 것이라서 곳곳엔 새로운 사건들이 도사리고 또 기다립니다.
반복해도 질리지 않는 단어가 있다면 기다림이 아닐까요.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아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말장난 같은 반복엔 자명하게 현실을 담아낸 솔직함 뿐입니다. 일상은 기다림의 연속.
기차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고 이제 막 플랫폼이 나왔습니다. 나는 미지근한 생수를 사고 승강장으로 걸어갑니다. 기차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고 기차를 놓칠 일은 없습니다. 나는 이 기차를 오래도록 타왔고 승강장은 바뀌지 않았으니까요.
승강장은 고요합니다. 모두가 자신에게 맞는 칸을 찾아갑니다. 나는 아직 기다립니다. 멀리서 기차가 들어옵니다. 나는 익숙한 플랫폼에 다가서서 점점 커지는 기차의 앞부분을 지켜봅니다.
움푹 파인 철로가 둔중한 몸체로 채워지고 이내 익숙해집니다. 기차를 들여오려 사람들이 서 있는 승강장보다 철로를 더 깊게 파고 기차는 들어오고.
기차는 반쯤 위로 올라와 발판이 내려옵니다. 나는 발판을 밟고 올라서 객실로 들어갑니다. 사람들이 승강장에서 기차를 기다립니다. 나는 반쯤 떠 있습니다. 아직 시야가 익숙치 않습니다. 나는 반쯤 떠 있습니다.
덜컹 열차가 흔들립니다. 붙잡아두던 무언가가 풀리듯 스르륵 열차가 풀려납니다. 열차가 움직입니다. 승강장이 멀어집니다. 많은 이들이 기다렸을 석조 벤치가 점점 시야 오른쪽으로.
나는 반쯤 떠서 앞으로 나아갑니다. 열차 절반까지 차오르던 승강장이 사라지고 이제 완전히 떠올랐습니다. 눈을 감기로 합니다. 조용한 상승감을 간직한 채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보기로 합니다. 나는 기다립니다. 도착지를 조용히 그려봅니다. 그곳은 조금 더 조용할 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