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짝 열린 창문에서 맞이한 어느 싸리눈의 임종장면

by 비상 시 출구

싸리눈이 자박이 내리기 시작한다 마당엔 벌써 눈이 밑창만큼 쌓여 신중한 한 걸음도 다 자국이 남는다

옷깃 여미며 다시 방 안으로 들어와 창문을 활짝 열고는 천 구백 육십년 대 어느 도쿄 재즈바에서 어색한 말투로

곤니치와 외치며 준비한 일본어 멘트는 그게 다라는 듯 서둘러 영어로 트리오를 소개하는 어느 음악이 재생되고

여전히 내리는 싸리눈이 마냥 내리기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걸 천천히 받아들여 본다

싸리눈은 엉망진창이다 마냥 곧게 나리지 않고 사방으로 통통 튀어 줄을 무성히 그린 사다리 게임을 하듯 천천히 하강한다 작은 바람에도 다시 상승한다 함박눈이었다면 차라리 무거운 몸짓에 제 뜻을 접고 모두가 한 방향으로 나리는 함박눈이었다면 달랐을 테지만 지금은 싸리눈이 내리는 중이다 열어둔 창문으로도 방황 끝 안식을 맞으려는 몇몇 눈송이가 들어온다 그들은 따뜻한 실내에서 임종을 맞이했다 그러나 마냥 애석하진 않다 애초에 비가 내릴 듯한 날씨였기 때문이다 비로 태어나 비로 땅에 닿을 것들은 몸체를 얻고 짧은 여행을 마쳤다 아주 개성적인 여행이 끝났다

바닥에 쌓이던 눈은 어느새 마당을 새하얗게 덮었다 함박눈도 아닌 싸리눈

겹겹이 덧대어 사라짐을 지연하던 함박눈과 달리 통통 튀며 어디로 갈지 예상도 못한 싸리눈으로 쌓인 이 모습은

퍽 순탄치 않다 그러나 이렇게 쌓인 눈은 금방 녹는다 금방 녹지 않는 눈은 금방이라도 얼어붙을 듯한 날씨에서 나린다 비와 눈 사이 운 좋게 몸체를 얻은 이들은 이제 금방 사라진다

처음부터 눈으로 내린 이들은 조금 더 오래 머문다

경력으로 보면 매한가지나 그래서 싸리눈은 더 방방 뛰어다녔는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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