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비상 시 출구

콘센트와의 거리가 가깝다면 굳이 엉킨 충전기선 풀지 않았다 거리가 딱 알맞았다 그것으로 만족했다


언젠가 대량의 티백이 문 앞에 배송되었는데 오랬동안 꾸준히 마시다가도 그 향 떠올리려 할 때면 아무런 향취도 그 색도 자세히 들여다본 적 없다는 걸 깨달아 티백상자는 영영 닫아버렸다


차는 그러니깐 뜨거운 물에 넣으면 서서히 식물 향이 올라오는 발명품은 홀로는 필요치 않다


그건 소통의 도구 타인을 위한 것에 불과하다


당신의 집에 방문한 이(아주 개성적이거나 귀품있는 행색이 아니더라도 적어도 상의와 하의를 적절히 갖추고 신발의 색깔과는 상관없이 검거나 흰 양말을 신은 이라면)에게 선뜻 온수를 내밀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린 밍밍함에 대해 잘 알고 그것은 홀로 느끼기에 충분한 감정이지 남들과 나눌 것은 못 된다는 사실은 공공연하다


작은 몇 개의 풀잎만 띄어두면 알아서 연기는 올라가고 거기 베인 향(그러니깐 여기서 말하는 향은 온수를 담았을 때 올라가는 허연 김에서는 느끼지 못할 집 밖의 생명체의 향이다 온수가 담긴 컵에서도 냄새가 맡아지기도 하지만 그것은 우리에게 새로운 가치를 전해주기보다 온수를 담고 있는 용기와 그것에 베인 추억을 아주 옅게 뿜어내는 것에 불과하다 손님이 오기까지 이 집안에 오래 앉아있었던 자신은 공기 중에 섞인 그 향취를 이미 코 속에 머금고 있다 손님도 이윽고 집 안의 냄새를 맡기 마련이지만 그것에 적응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리며 집 안의 냄새를 완전히 파악하는 것은 집주인으로 하여금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안그래도 내밀한 공간에서 홀딱 벗겨진 채 외부인을 맞고자하는 방주인은 없을 것이다 자신의 방을 얻고자 하는 이는 적어도 타인과 자신 사이의 최소한의 구분선을 가지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 분위기를 형성한다


이 집에 들어온 당신과 여기서 오랜 시간을 보낸 집주인 모두 이 만남은 새로움이며 이제 이 곳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와 함께 또다른 만남의 공간이 펼쳐지니 한껏 여민 옷깃을 잠시 펼쳐두고 우리 코와 코를 맞대고 바람 불어봐도 같은 것들이 오가고 있다는 것을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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