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 쓰던 사내 여의도 점심시간 한복판 부러진 심처럼
검디검은 패딩 주머니에 손 넣은 채>
지나가다 마주친 그에게 아는 채 하지 않고 난 이곳(커피를 만드는 과정과 벽면에 등을 기대고 서서 음료가 기다리는 차분한 옷차림의 사람들 가지런하고 단정한 사람들 그들은 아직 졸업하지 못했다)에 도착 그는 검은 패딩 검은 슬랙스 검은 구두에 머리마저 검은 채로 여의도 한복판에서 두 손 주머니에 파 묻은 채 다리를 질질 끓고 걸어왔다 나는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으므로 그리고 오늘은 한강 다리 위에서 강물이 보이지 않을만큼 흐릿한 날씨였지만 우린 각박한 여의도 점심시간 인도 위에서 마저 이탈할 수 조차 없는 정해진 선로로 걷고 있었고 자칫 팔꿈치 가장자리가 닿을 거리로 가까워졌다 그는 꽤나 개성있는 외모를 가지고 있었고 그 창의적 생김새처만큼 대화중 담백한 농담 던질 줄 아는 사내였다 무엇보다 그는 연필을 쓰는 사람이었다 대화를 시작하기 전에 커터칼을 꺼내 드르륵 사각사각 자못 듣기 좋은 소릴 자아낼 줄 아는 사람 깎여나간 껍질을 가지런히 모아 손날 끝엔 거무튀튀한 심 묻히고도 그는 항상 연필을 가지고 다녔다
사람의 눈 커다란 매력포인트가 되는가 우리가 익히 아는 멘트처럼 당신은 누군가의 눈에 깊이 빠진 적이 있는가 생각없이 던져지는 이상형에 대한 물음에 눈 언급하는 이들 많지만 생애 누군가와 5분 이상 눈 마주치며 작은 동공의 움직임 까지 서로를 관찰하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눈을 보려할 때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눈 외의 것들이다 얼굴의 윤곽과 작게 난 입가의 여드름 생각보다 작은 귀와 냄새를 맡는 코의 움직임 그리고 시야 구석에 들어오는 눈동자 흔들리는 눈동자 나는 너의 눈동자 보고 너는 나의 눈동자 보고 두 동공은 작고 가는 선으로 이어지지만 그건 찰나 카메라 플래쉬 터진 후 우린 다시 상대의 몸을 꼼지락거리는 발가락을 티나지 않게 상한 머릿카락 끝을
날카롭게 깎은 연필은 뚝뚝 끊어졌다 심이 두꺼워도 종이를 짓누르는 압은 누르는대로 받아들여지는 삼차원의 공간 종이는 더 압축될 수 있고 그 자국을 우린 알고 있다 뒷 장을 펼쳐 다시 하얀 종일 덧대고 단정히 도려진 연필 가장자리로 슥슥 그으며 증거는 드러나고 서서히 밝혀진 윤곽에 입을 막고 놀랄 수 밖에 없었다 확실한 물증은 종이에 남았고 움푹 들어간 그 틈에서 다시 차오른 검은 심은 자신도 막 다듬어져 색 낼 수 있다는 걸 잊은 채로 자신이 그려내는 대상에 집중한다 연필을 쥐자마자 한 순간 뚝 하고 끊어질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검지로 조금만 더 눌러버린다면 반듯이 한 장 채워왔지만 당신이 질문 하나 던지지 않는다면 생기없는 눈동자로 그저 머릴 쓰다듬는다면 연필심은 끊어지는 수밖에 없다 그리곤 그곳을 나와 다시 처음부터 작은 커터칼로 사각사각 스케치가 가능한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