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괜찮지 않아도 당신만은 괜찮아야 했던 이유
첫 번째 궁금함을 해결하고 싶었다. 이타적이라서? 착해서? 스스로가 그렇지 않은 사람임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진짜' 이유를 알고 싶었다.
유튜브를 찾아보았다. 정신과 의사, 상담사 등 많은 전문가가 살면서 한 번쯤은 느꼈을 심리적 고민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나는 점점 빠져들었다. 이래서 유선생, 유선생 하는구나.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만났다. 그렇게 몇 번의 알고리즘을 거쳤을까? 누군가 글쓰기를 강조하며, '생각을 정리하는 데는 글쓰기만 한 것이 없다'라고 했다.
그때 문득, 내 인생을 처음부터 다시 정리해 보면 답을 찾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을 정리하듯, 옷장을 정리하듯 뒤죽박죽인 내 인생도 한 번 정리해 보자. 지금 머릿속에 떠다니는 이 흐릿함을 정리해 보자.
마음을 굳게 먹은 나는 가장 어릴 때의 기억부터 적어보기 시작했다. 꽤 좋은 날들이 있었다. 호기심 많고, 자기 주관이 뚜렷한 아이. 집에서 가장 몸집이 작지만 말은 가장 많았던 아이. 고집 센 골목대장.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날들을 적어 내려갔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가장 상처받았던 순간을 떠올리게 되었다.
사건의 시작, '그 애'의 고백
신나게 적어 내려가던 나의 연대기는 어느덧 열세 살에 멈추었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발단은 역시 열세 살에 있었다. 열세 살, 그 해 봄에 어느 때처럼 평범했던 일상을 뒤흔드는 사건이었다.
"야 XXX이 너 좋아한대! 이따가 고백한데!"
'그 아이'는 인기가 많았다. 수학여행을 가서 진실게임을 했을 때, 반에서 두 명을 빼고 전부 그 아이를 좋아할 만큼.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였을까. 그 아이가 나를 좋아했다.
나는 두려움을 느꼈다. 관심의 대상이 되면 안 될 것 같은 직감이 들었다. 하지만 그 아이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나에게 편지를 건넸다. 나는 도망치듯 화장실로 숨었고, 자리로 돌아왔을 땐 따가운 시선을 느꼈다.
다음 쉬는 시간, 그 아이는 다시 찾아와 물었다.
"너, 내가 싫어?"
미안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우리는 7살 때부터 친구였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한참을 고르다가, 그냥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속으로 바랬다.
그날부터 이전과는 다른 분위기를 느꼈다. 복도를 지나갈 때면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누군가가 "쟤야?"라고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누군가를 마주치기 싫어서 쉬는 시간 내내 소변을 참다가 수업종이 치면 부리나케 화장실을 다녀왔다. 하지만 내가 가장 참기 어려웠던 것은 나의 친구 A였다.
나에게는 친구 A와 B가 있었다. 그중 A가 그 아이를 좋아했다. 내가 고백을 받던 날, A가 사귈 거냐며 화를 냈다. 당황스러웠지만 나는 사귀지 않을 거라고 침착하게 대답했다. 그때는 솔직하게 말하면 다 해결될 거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해결되진 않았다. 오히려 그 일은 나에게 상처가 되었다. 왜냐하면 나는 고백을 받은 순간, A를 가장 먼저 떠올렸기 때문이다.
달라진 것들을 감당하기엔 너무 어렸다. 그 뒤로 한동안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하게 될 만큼, 그 일은 나에게 아주 어렵고 힘든 일이었다.
C의 등장
며칠이 지난 뒤, 한 친구(C)가 나를 찾아왔다. 이사 간 집에서 5분 거리에 사는 친구였다. 그날 공원에서 아이스크림을 먹다가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들었다.
"너, 선생님한테 뇌물 줬어?"
귀를 의심했다. 반장으로 담임선생님과 가까웠던 내가 300만 원의 뇌물을 바쳤다, 그 소문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소문의 근거지는 A와 B라고 했다. "그 얘기 잘 퍼뜨리고 있지?"라는 A, B의 말을 C가 화장실에서 들었다.
태어나서 가장 슬픈 날이었다.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차원이 다른 기분. 가슴속에서 무언가 터져 나오는 것처럼 배신감을 느꼈다. 이제 내가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건 C였다. 우리는 한동안 함께 지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C는 점점 A와 친해졌다. 그때 나는, 하나 남은 친구에게도 버려질 만큼 스스로가 참 쓸모없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처음부터 우리가 친구이긴 했던 걸까? 나 혼자만의 착각이었던 건 아닐까. 사람들은 왜 나를 떠나는 걸까.
누구도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이 맞고, 내가 틀렸음이 분명했다.
그날 이후, 잘 먹지도 웃지도 않았다. 모든 사실을 들은 엄마가 펄펄 날뛰며 학교를 찾아가서 뒤엎자고 했지만, 다시는 주목을 받고 싶지 않았다. 나는 무기력했다. 내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유가 달랐던 너와 나의 눈물
엄마는 나에게 전학을 권유했다. 나는 망설였지만,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교실 앞에 서서 마지막 인사를 하던 날, A와 B가 눈물을 터뜨렸다. 마음이 아팠다. 우린 왜 이렇게 되었을까, 한참을 같이 울었다.
마음이 흔들렸다. 그래서 우습게도 다음 날, 다시 학교를 갔다. A와 B는 눈이 휘둥그레져 왜 다시 왔느냐고 물었다. 나는 슬퍼서 전학을 못 갔으며 이제부터라도 다시 잘 지내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자 A가 대답했다. 어제는 자기가 좋아하는 '그 아이'에게 여려 보이고 싶어서 울었다고. 그래서 너 전학 안 가는 거냐고.
참 어리석은 짓이었다. 그냥 예정대로 전학을 갈걸, 왜 그랬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집에 가는 길. 신호등 앞에 멍하게 서있을 때였다. 같은 방향으로 가던 C가 말했다. 나를 충격에 휩싸이게 했던 그 '뇌물소문'은 사실 나와 A, B사이를 갈라놓기 위해 지어낸 이야기였다고. 내가 그 일에 대해 사실확인조차 하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사람에 대한 두려움을 느꼈다. 깊은 혐오와 회의감이었던 것 같다. 그 뒤로는 사람을 믿기가 어려웠다. 친하게 지냈던 친구도 언젠가는 한순간에 등을 돌릴 수 있구나. 조심하지 않으면 내 등에 다시 칼이 꽂힐 수도 있겠구나. 세상은 믿을만한 곳이 아니구나.
지금 생각해 보면 별거 아닐 수도 있는 그 일이 나에겐 너무 큰 비극으로 느껴졌다. 적극적으로 대처했다면 조금은 달랐을까. 나를 지키기 위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스스로가 비겁하고 멍청하게 느껴졌다. 왜 용기가 없었을까, 왜 그렇게 무기력했을까.
그 뒤로 나는 많이 달라졌다. 아니, 달라져야 했다. 결국 전학을 갔고, 눈치를 보며 살았다. 온전히 혼자 있는 시간이 가장 편안했다.
같은 일을 두 번 겪고 싶지는 않았다. 어떻게든 새로운 집단에 적응해야 했다. 최선을 다 해 친구들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고, 나보다 친구가 좋아하는 것을 했다. 그랬더니 많은 사람들과 훨씬 쉽게, 빨리 친해질 수 있었다. 이따금씩 배신당하는 악몽을 꿀만큼 인간관계가 두렵기도 했지만, 나를 있는 그대로 믿어주는 좋은 사람들 덕분에 조금씩 회복할 수 있었다. 그렇게 아주 깊은 상처가 조금씩 아물어가고 있었다.
지나친 타인중심의 이유
유퀴즈를 보면서 곽튜브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그가 아픔을 딛고 일어나서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다른 사람에게는 일어나지 않는 일이,
왜 나한테만 생겼을까.
자책하면서 스스로에게 원인을 찾는 것
내가 느꼈던 기분과 같았다. 나에게 원인을 찾았고, 그래서 나를 바꾸었고, 노력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사람들이 나를 떠날 거라고 믿었다. 내가 잘 해내지 못하면 다시 혼자가 될 것 같았다. 그때부터 내 삶의 태도가 바뀌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의 인생 태도에 대해 미국의 정신과의사 에릭번(Eric bern)은 다음 4가지를 제시했다.
1. I'm OK, You're OK(자기 긍정, 타인긍정)
2. I'm OK, You're not OK(자기 긍정, 타인부정)
3. I'm not OK, You're OK(자기부정, 타인긍정)
4. I'm not OK, You're not OK(자기부정, 타인부정)
출처 : 한국교류분석학회
돌아보니, 당시에 내가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전략은 3번이었던 것 같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자, 예전과 같은 사건이 반복되지 않을 최선의 방법. 그렇게 조금씩 나의 인생에서, 나를 밀어내는 방법으로 살아왔다. 이것이 지난 세월 동안 오랜 습관처럼 자리 잡은 듯했다.
나를 가장 괴롭혀온 첫 번째 답. 그 실체를 확인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