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만에 받은 참혹한 성적표
엑셀과 브레이크를 동시에 밟으며 살아오셨군요
심리검사 결과를 보고 상담사가 가장 먼저 나에게 건넨 첫마디였다.
나를 찾기 위한 첫 번째 방법으로 전문 상담사를 찾았다. 혼자서는 하기 어려울 것 같아서 20만 원이 넘는 거금을 투자하기로 했다. 비싼 검사는 꽤 효과가 있었다. 두툼한 검사결과지를 분석하며 나를 속속들이 들여다보는 것 같은 상담사의 말에 나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나에게 몇 가지 질문을 건네며 지나온 삶이 버겁고 힘들었을 텐데 어떻게 견뎠는지 물었다.
안타까워하는 그녀의 표정과 달리, 정작 나는 물음표를 지었다. 그때의 나는, '힘든 삶을 살았다'는 말에 잘 공감하지 못했다. 마치 남의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음.." 하며 검사결과지를 응시할 뿐.
몇 가지 질문이 이어졌다. 그날 처음 만난 분이었지만 더 솔직할 수 없을 만큼 있는 그대로 나를 드러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정말 간절했던 것 같다. 내가 누구인지, 그 정답을 알아내고 싶다는 간절함. 그리고 이렇게까지 했는데 결국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할까 봐 두려운 마음이 한 데 뒤엉켜 머리가 복잡했다.
그렇게 한참을 대답하다가 뜬금없이 눈물이 터졌다. 그냥 운 것이 아니라, 누가 버튼을 누른 것처럼 눈물이 쏟아졌다.
나는 당황스러워하며 물었다.
"선생님, 왜 눈물이 나죠?"
선생님이 대답했다.
"저 같아도 울 것 같아요. 그동안 너무 힘들게 사셨거든요."
힘들게 살았다.. 나는 그 말을 곱씹었다. 그렇게 말할 자격이 있을까. 머릿속으로 더 열악한 환경에서도 훌륭하게 살아낸 사람들을 떠올렸다.
세 시간의 상담을 마치고 밖을 나섰을 때, 나는 탈진하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집으로 돌아와선 다음날까지 몸살을 앓았다. 선생님이 상담 후에는 더러 아플 수 있으니 며칠간 푹 쉬라고 했던 게 이 말이었구나, 생각하며 희미한 웃음을 지었다.
나에게 한 걸음 다가간 것만 같은, 묘한 고통이었다.
선생님은 내가 힘들다고 했는데, 나는 왜 내가 힘들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했을까. 생각해 보면, 나는 힘든 상황에서도 늘 반대편에 서서 나를 내려다보곤 했다. 스스로를 가장 엄격한 잣대로 평가했다. 마음이 아프고 힘들다고 느낄 때마다 당근이 아닌 채찍을 잡았다.
그래서였을까. 사회적으로는 사람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다.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고, 배려하는 것은 나에게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정작 자신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 누군가의 만족을 위해 나의 만족은 늘 어딘가에 처박아두곤 했다.
심리검사결과는 그 모든 것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강박과 불안, 충동, 학습된 이타성...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그 결과가 고작 이거라니. 장장 30년을 공들였는데, 망작이라니. 허무했다.
그 후로 며칠 동안은 검사 결과를 보지 못했다. 심호흡을 크게 하고, 다시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을 때 학습된 이타성이라는 단어가 눈에 띄었다. 그래, 나는 왜 나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게 된 걸까. 언제부터였을까. 왜 나는 오랜 시간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신을 통제하며 살아왔던 걸까. 나를 채찍질하며 결국 얻은 것이 뭘까. 그토록 집착했던 좋은 평가는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었을까. 나는 왜 이렇게 되었을까.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까. 어쩌면 난 이미 감정 불구인 걸까. 여러 가지 생각들이 물밀듯이 차올랐다.
정신없이 지나온 삶, 그 첫 번째 조각이 궁금해진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