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항상 조용하지만 감정기복이 심한 사람이야
"너는 항상 조용하지만 감정기복이 심한 사람이야."
친구가 불쑥 던진 이 한마디는 나를 깊이 생각하게 했다. 조용하지만 감정기복이 심하다는 말은 칭찬도, 비난도 아닌 것 같았다. 그러나 그 안에는 나라는 사람의 복잡한 모습을 꿰뚫어 보는 시선이 담겨 있었다. 나는 그 말을 곱씹으며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란 사람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나를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있을까? 아니, 누군가 나에 대해 평가를 내릴 수 있을까? 학창 시절에는 다른 사람들의 말이 내 정체성을 대신할 때가 많았다. 친구들이 "넌 정말 착하다"라고 말하면, 나는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할 것 같았고, "넌 소심하다"라는 말이 들리면 스스로를 점점 작아지게 만들었다. 그렇게 나를 향한 평가에 휘둘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나는 진짜 '나다움'이 무엇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조용하면서도 감정기복이 심하다는 말은 틀리지 않았다. 나는 낯선 사람들 앞에서 쉽게 긴장하지만, 좋아하는 주제가 나오면 열정적으로 말을 이어가곤 한다. 기분이 좋을 땐 하늘을 날 것 같다가도, 슬픈 일이 있으면 하루 종일 우울함에 잠기기도 한다. 이런 내 모습을 부정하거나 숨기려고 할 때마다 오히려 더 큰 혼란과 피로를 느꼈다.
어느 날, 나는 이렇게 결심했다. '그래,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 그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감정이 풍부한 건 내 단점이 아니라, 내가 세상을 진심으로 느끼고 경험한다는 증거였다. 조용함은 내가 혼자만의 시간을 사랑하고, 깊이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후로 나는 '나다움'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들을 하나씩 정리하며, 나만의 기준을 세우기 시작했다. '조용하다'는 건 사람을 대할 때 신중하다는 의미일 수 있고, '감정기복이 심하다'는 건 감정적으로 풍부하다는 뜻일 수 있다. 그렇게 나의 장단점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사람들은 흔히 '나다움'을 찾는 것이 어렵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나답다는 건 어떤 완벽한 모습이 아니라, 내가 지닌 부족함과 강점을 고스란히 끌어안는 것이다. 누군가의 기준에 맞추려고 애쓰는 대신, 내 안에 있는 다양한 모습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진정한 나다움이다.
지금도 나는 때때로 조용하고, 감정기복도 여전히 심하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이 나를 이루는 중요한 일부라는 것을 안다. 친구의 그 한마디 덕분에 나는 나를 새롭게 이해할 수 있었고, 더 이상 '나다움'을 의심하지 않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