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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의 그림자

by 윤하루

그 문장은 내가 쓴 거였다.
처음엔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다. 단지, 알고 지내던 친구가 내 블로그에 올린 글 중 한 문장을 캡처해 인스타그램에 올린 것이었다. 출처는 없었고, 마치 자기 생각인 양 올려둔 그 글엔 수백 개의 좋아요가 붙었다.

"어디선가 본 말인데, 잘 썼네."

댓글을 읽다 순간적으로 머릿속이 멍해졌다. 내 글이 누군가의 타임라인에서 '유명한 문장'이 되어 있었다. 나는 좋아요 버튼 대신, 조용히 앱을 껐다.

그 문장은 내가 진심으로 쓴 것이었다. 감정이 바닥을 칠 때, 새벽 두 시에 커피를 식혀가며 꾹꾹 눌러 쓴 글이었다. 짧고 흔한 말처럼 보였겠지만, 나에게는 시간과 마음이 깃든 문장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걸 기억하지 않는다. 아니, 처음부터 몰랐다고 해야겠다.

며칠 후, 또 다른 계정에서 같은 문장을 봤다. 조금 순서가 바뀌었고, 몇 단어는 바뀌어 있었다. 하지만 그건 분명히 내 문장이었다. 이미 이 문장은 누군가의 손을 타고 변형되고 있었고, 나는 그 문장 안에서 점점 더 지워지고 있었다.

“정사 삼국지랑 비슷하네.”
친구가 툭 던지듯 말했다. “우리가 기억하는 삼국지는 대부분 연의잖아. 근데 그 연의가 가능했던 건 정사가 있었기 때문이지.”

그 말이 유난히 오래 남았다. 정사는 조용했다. 사람들은 기억하지 않았지만, 연의가 이야기를 부풀릴 수 있었던 건 그 밑에 있는 기록 덕분이었다. 지금 떠도는 내 문장도 그렇다. 누군가는 요약하고, 해석하고, 이미지로 만들어 퍼뜨렸지만, 그 시작엔 내가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묻지 않았다. "이 문장, 누가 쓴 거야?"라고.

나는 메일을 보냈고, 댓글을 남겼다. 대부분은 읽지 않았고, 일부는 "요즘 누가 출처를 따져요?"라고 답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점점 말수가 줄었다. 더 이상 쓰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내 것이 되어주지 않는다면, 왜 나를 담아야 하나 싶었다.

그러던 중, 낯선 사람에게서 메일이 왔다.
“이 문장, 혹시 당신이 쓴 건가요?”

그는 대학에서 인용문 관련 강의를 준비 중이라고 했다. 그가 보낸 슬라이드에는 내가 새벽에 쓴 그 문장이 적혀 있었다. 말미에는 조그맣게 내 이름도 있었다. 그는 덧붙였다.

“출처 없는 감동이 넘치는 시대지만, 저는 그 시작점을 알고 싶었습니다.”

나는 긴 글 대신, 한 문장만을 적어 보냈다.
“감사합니다. 그 문장은, 제가 쓴 것이 맞습니다.”

그날 이후, 나는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좋아요도 없고, 공유도 되지 않더라도, 내 문장을 내 이름으로 쓸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했다.

사람들은 여전히 짧고 감동적인 말을 찾는다. 이미지에 어울리는 문장을 원하고, 짧은 해시태그를 달아 공유한다. 나도 안다. 그게 요즘의 방식이라는 걸.

하지만 나는 바란다. 언젠가는 그 문장을 보고 누군가 이렇게 말해주기를.
“이거, 누구 글이야?”

그 물음 하나가, 사라진 이름들을 다시 불러내는 시작이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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