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았는데, 나의 차례가 아니래요."
그 말을 듣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몸은 이미 일어날 준비가 돼 있었고, 마음은 멀리까지 가 있었다.
그런데 조용히 나를 가로막는 문장이 하나 놓였다. 그 문장이 전부인 것처럼, 그 말 이후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무도 나를 막지는 않았지만, 아무도 나를 부르지도 않았다.
내가 뭘 해야 할지는 확실히 알았지만, 그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거였다. 말하자면, 내 안에서 깨어난 의지가 타인의 타이밍에 막히는 기분. 그런 기분을 설명할 방법이 없어서 조용히 물을 마시고, 아무 일도 없는 척 하루를 넘겼다. 할 수 있는데 하지 못하는 날은, 할 수 없어서 못했던 날보다 훨씬 더 쓸쓸했다.
차례가 아니라는 말은, ‘너는 아직 안 돼’와는 조금 달랐다. 준비되지 않았다는 말도 아니었다. 어쩌면 그건 그냥, ‘지금은 네가 아니라는 말’이었다. 그렇게 내 차례가 아닌 날들 사이에서 나는 조금씩 기다리는 법을 배웠다. 물러나 있는 시간을, 사라지는 게 아니라는 식으로 받아들이는 법을.
그 말은 이상하게도 나를 위로했다. 아직 기회가 남아 있다는 말 같아서. 차례가 아니라는 건 언젠가는 올 거라는 뜻이기도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