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비행일기
내 블로그 글을 자주 보시는 구독자라면 요 며칠사이에 내가 폭풍으로 블로그 글을 올렸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매 비행이 있거나 일이 있으면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텀이 길었는데, 최근에 많이 올린 이유는 내가 스탠바이, 즉 5분 대기조 듀티이기 때문이다.
스탠바이 듀티의 이유는 비행을 가야하는 크루가 갑자기 아프다거나, 가정사가 생겼다거나, 일이 생겨서 비행에 못 가게 되었을 때, 해당 비행은 안전을 위해 꼭 필수로 탑승해야하는 승무원의 수가 정해져있는데 이때를 대비해서 5분 대기조인 스탠바이의 듀티가 있는 것이다. 회사마다 다르지만, 우리 회사의 경우에는 집에서 대기하는 스탠바이만이 존재한다. 내가 알기로는 카타르나 에어아시아엑스는 공항에서 대기하는 에어포트 스탠바이도 있다고한다.
어제는 새벽부터 하루종일 대기하는 스탠바이였고, 오늘은 오전 9시부터 대기하는 스탠바이 듀티이다. 이렇게 스탠바이에 절대 불리지 않기를 간절하게 소망하면서 어제 오늘 아침에 스탠바이 듀티 시간에 맞춰서 일어나 침구류를 정리하고, 방을 정리하고, 목욕을 하고 경건한 마음가짐으로 이렇게 글을 쓴다. 스탠바이 듀티때 내가 꼭 하는 일이 있다. 그건 바로 항상 진동모르도 켜 놓은 핸드폰을 무조건 소리를 켜놓는다는 것이다. 그러고 혹시나해서 중간중간에 회사 어플에도 자주 들어간다. 혹시나 알람이 안 울려서 내게 피해보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서 체크한다. 핸드폰은 스탠바이 듀티 동안 절대 내게서는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존재가 된다. 화장실을 가든, 밥을 먹든, 뭘 하든 (사실 평소에도 그렇기는 한데...) 유독 스탠바이 듀티가 되면 핸드폰을 손에서 절대, 아니 내 멀리에도 두지 않도록 나는 항상 가지고 다닌다.
스탠바이 듀티의 경우, 나는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다. 특히 새벽 00시부터 시작하는 스탠바이의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 어제의 경우가 새벽부터 스탠바이였기에, 자다가 깼다가를 반복했었다. 나는 스탠바이 듀티를 그래서 싫어한다. 모 아니면 도를 좋아하는 나에게 있어서 스탠바이란... 정말 피곤하다.
내 첫 스탠바이 콜업은 중국 상하이였는데 자다가 아주 큰 소리랑 불빛이 핸드폰에서 나서 벌떡 일어났었던 기억이 난다. 다행히 리포팅까지 시간이 좀 있어서 다행이었지... 정말로 짜증난다. 잠이 확 달아나버린 그 느낌이란.. 그러고 정말 새벽에 리포팅까지 2시간 30분정도 남았을 때 갑자기 울려버린 나의 양곤 비행은... 아 정말 그 크루 찾아가서 패고싶었다.
다행히 어제는 불리지 않을 느낌이 들어서 폭풍으로 블로그 글을 올렸다. 이때가 아니면, 때에 맞춰서 블로그에 글을 올리기란 힘들다. 해외 스테이션에 나가면, 특히나 새로운 국가에 가게되면 크루들이랑 함께 여행다니고 놀러 다녀야하기 때문에. 하핳 (이번 달 말에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가는데 엄청 속으로 기대중이다. 하도 바르셀로나 좋다고 다들 그래서.. ㅎㅎㅎ 그리고 이 비행은 seasonal flight (맨날 있는 비행이 아닌 성수기 비행) 이기에 이 비행을 받는 다는 건 정말 운이 좋다는 뜻)
요즘 회사에서는 스탠바이 듀티를 가진 크루들을 많이 부르지는 않는다고한다. 그만큼 충분한 크루들이 회사에 있다는 증거이기도하다. 하지만 이제 회사를 퇴사하는 크루들이 점점 보이는 요즘 혹시나 모른다. 나중에 스탠바이 듀티에 있는 크루들을 무조건 부를지도? 지금도 블로그 글을 쓰는 나는 여전히 내 옆에 핸드폰을 큰 소리 모드로 전환해놓고서는 힐끔힐끔 중간에 쳐다보고있다. 제발 부르지 말아주세요... 얘들아 그냥 너네한테 지정되어 있는 비행 가.. 그리고 아프고 가기 싫으면 전 날에 내.. 당일에 내지 말고...
참고로 나는 한번도 당일에 비행가기 싫다고 일부러 비행에 병가처리를 낸 적은 없다. 낸다고 해도 항상 다음 크루를 위해서 전 날에 아침 일찍 낸다. 물론 그 비행을 안 가는 것 자체가 해당크루에게는 민폐이지만, 그나마 배려해주고 그나마 덜 민폐를 주기 위해서 내가 하는 방법이다. 이렇게 갑자기 스탠바이로 불리게되면, 브리핑룸에 들어와서 간혹 어떤 크루는 웃으면서 아니 이거 비행 뺀 크루 누구임?ㅋㅋㅋ 이러면서 들어온다. 그러면 우리는 다들 웃으면서 야 그 크루 이름 누구누구임 이라고 말하거나 그런다. 그래도 다들 꼭 하는 말은, Thanks for making this flight 이라고 말한다. 그 크루가 아니면, 계속해서 크루들이 바뀌면 해당 비행에 큰 차질이 생겨서 간혹 비행이 정말정말 운이 안 좋으면 취소되는 경우도 있기때문이다.
가끔 내 이전에 내 지인들에게나 나 오늘 스탠바이야 라고 말하면, 뭐야 안 불리며 집에서 더 쉬는거잖아. 꿀빠네. 꿀이네 라고 종종 나한테 말한 경우가 있었는데, 그게 말이 쉬는게 쉬는거지 절대 그 스케줄이 끝날 때까지 긴장의 끈을 놓칠 수가 없다. 라스트 미닛으로 불리는 경우도 있고, 중간에 어디로 불릴 지를 모르니까 피곤하다. 자고 싶어도, 내가 멀리 친구를 만나고 싶어도, 잠깐 장을 보러 나가는 것도 어렵다. 그냥 집에 콕 박혀만 있어야하고, 나의 경우에는 밥 먹는 것도 참 애매하다.
아무튼, 스탠바이 듀티는 마치 내가 산 속의 길을 자동차를 타고 가고있는데 앞에 안개가 너무 뿌옇게 껴서 잘 보이지 않음에도 계속 걸어가는 느낌이다. 그 안개 속에서 갑자기 뭐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그런 느낌같은 너낌? 8월에도 스탠바이가 있는데 개인적으로 스탠바이를 다른 크루에게 줘버리고 한국으로 잠시 힐링을 다녀오고 싶어서 지금 노력중이다. 지금도 안개 속에서 글을 쓰는 느낌이다.
스탠바이. 다른 직업에도 5분 대기조 스케줄이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승무원에게 스탠바이란 승무원이라면 모두가 겪는 스케줄이다. 음.. 나에게 있어서는 노 모어 스탠바이 플리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