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진 헤어짐. 영원이 아니길 바라

EP. 감정일기

by 꼬마승무원

어제와 오늘의 스케줄은 스탠바이 (5분 대기조)이다. 며칠 지나지 않아 다시 찾아온 스탠바이... 다행히 어제 불리지 않았고, 오늘도 불리지 않기를 바라면서 아침에 집안과 방 전체 청소를 마친 뒤, 목욕을 했다. 그런 뒤 따듯한 얼그레이 밀크티를 만들어 이렇게, 오늘도 아침에 뇌를 깨우자는 마인드로 글을 쓰고 있다. 오늘도 제발 불리지 않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어제 듀티를 마친 뒤, 동네에 사는 친한 회사 동기언니와 만나 저녁을 함께했다. 같은 배치는 아니지만, 함께 승무원 준비생 시절부터 스터디를 하며 동고동락한 언니이다. 언니가 먼저 회사에 한 달 정도 먼저 조이닝하고 그 이후에 내가 조이닝했다. 맞다, 이 언니가 바로 이전 글에 소개했던, 함께 조이닝 전에 무수한 소문으로 마음이 힘들 때 서로 의지했던 그 언니이다. 가끔 서로 비행이 어떤 지, 어떻게 지내는지 서로 안부도 묻고 정보도 공유하곤 했는데, 오늘 마침 스케줄도 똑같았기에 서로 만나자고 얘기가 나와 함께 얼굴 보는 시간을 보냈다.


저녁을 먹고, 신나는 수다타임을 가졌다. 항상 느끼지만, 여자들의 수다는 정말 끝이 없는 것 같다. 오후 7시에 만났는데 거의 밤 11시까지 식사를 포함해서 연신 수다를 떨었다. 그동안 살아온 얘기, 비행이야기, 크루 이야기 등등... 지금 서로가 겪어오고 지나오는 시간들이 비슷하기에 공감대가 많아서 그런 것 같다. 언니와 사주 얘기는 물론이고, 이직에 관한 이야기도 말을 꺼냈다. 언젠가 이 회사, 이 나라를 떠나야 할 때가 분명히 있을 터인데 과연 그 시기를 언제 잡을 건지, 앞으로의 행보를 어떻게 잡아야 할지.

지금부터 서로 슬슬 함께 준비해 나가기로 했다. 실예로 나의 경우 토익과 오픽, 독일어 자격증 등 모든 자격증의 기간이 만료가 되어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비행을 다니면서 새롭게 준비하기란, 아마 한국에 직장인으로 살며 준비하던 때와는 그 과정이 힘들고 피곤할 거란 걸 누구보다도 잘 안다. 어찌 되었든 미래의 나를 위해서는 힘들고 귀찮아도 해내야 하는 관문이다. 내가 다시 다른 나라의 해외항공사승무원으로 일하게 될지, 국내에 있는 항공사승무원으로 일하게 될지, 아니면 승무원이라는 직업을 내려놓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육자가 될지는 나조차도 아직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그렇기에 시시각각 바뀌는 사람의 마음이란, 나의 마음이란.. 나 조차도 미지수이기 때문에 미리 발판을 잡아놔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하나씩 해나가야겠지.


언니는 가고 싶어 하는 항공사가 정해져 있었다. 언니도 나처럼 독일에서 유학생활을 했었던 사람인지라, 루프트한자를 가고 싶어 하는 등 나와 얼추 생각이 같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뭔가 언니는 나보다는 해외에서 근무하기를 더 희망하는 것 같았다. 나도 해외에 사는 것에 있어서 그렇게 큰 거부감은 없지만, 뭔가 '그 나라 사람은 본인이 태어난 나라에 사는 것이 제일 속편 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지라, 계속 국내항공사로 생각이 기우는 것 같다. 아마 국내항공사에 대한 나의 저 마음 한편에 자리 잡은 열망과 꿈이 시간이 지나면서도 움틀 움틀 피어오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함께 다른 회사 이직 이야기를 하면서, 이 회사는 우리 회사보다는 월급이 적네, 하지만 일하는 환경은 어떻다고 들었네, 과연 얼마나 이곳에 남아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네 등등 이야기꽃을 열심히 피워나갔다. 내가 이전에 승무원의 단점에 대해서 글을 통해서 잠시 언급했던 적이 있었다. '이방인으로서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과 설계'. 슬슬 회사에 시니어가 되어가고 적응해 가는 이 시점에 드디어 이 문제가 점점 우리 앞에 그 실체와 모습을 드러내고 있음에 확실했다. 이전에 함께 대화를 나누면 이 회사에 어떻게 적응해나가야 하고 앞으로 치러야 하는 시험과 비행이야기를 더 많이 했었기 때문이다.


함께 공원을 몇 바퀴 돌며 얘기를 나누다가 벤치에 앉아 나머지 수다를 떨었다. 이미 언니와 함께 비행을 해서 얼굴을 알고 있던 몇몇의 한국인들 중 퇴사를 한 사람이 꽤나 있었다. 또 퇴사 예정자도 많았고 말이다. 언니는 언니의 같은 배치 동기들 중 친하게 지낸 외국인 친구들이 빠르면 1월, 그리고 내년 2-3월이면 퇴사한다고 말을 건넸다고 했다. 벌써부터 언니는 마음이 싱숭생숭하고 이제 시간이 흘러 하나둘씩 진짜로 간다고 말을 하고, 떠나가면 그 당시와 이후에 또 다른 기분과 생각에 마주할 생각에 참 묘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언니의 눈을 봤는데 따로 말은 안 했지만 밝게 빛나는 언니의 눈동자에 벌써부터 맑은 눈물이 고여있었다. 정해져 있는 안녕에 대한 서운함이 아닐런지.


그러면서 말했다. 분명 언니와 나도 서로가 언젠가 이제 이곳을 떠난다고 하면, 함께 떠나는 것이 아닌 언니 혹은 내가 먼저 떠나게 된다면. 남아있는 사람이 느끼게 될 감정은 과연 얼마나 허전함이 클까말이다. 우리는 서로가 승준생시절에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얼마나 이 직업을 꿈꾸고 이루는 것에 있어서 미쳐있었는지 잘 알기 때문에 이제 떠난다고 하면, 다른 누구보다도 상대의 앞날에 큰 축복을 빌어주면서도 섭섭함이 매우 클 것이 분명했다. 서로만의 동기들이 있지만, 동기들 이전에 서로 의지하고 맘을 털어놨던 그 시절의 우리가 있었고, 불안감을 이겨내고 꿈을 이뤄낸 뒤 어쩌면 똑같다면 똑같은 발자취를 밟고 살아가는 우리가 서로에게 의지하는 건 남들보다도 더 크다는 건 자명한 사실이다. 티는 안 냈지만 벌써부터 마음이 뭉클했다. 빠르면 내년부터 헤어짐이 우리에게 다가올 텐데. 언니의 빈자리를, 나의 빈자리를 서로가 잘 끌어안고 지낼 수 있을까. 나의 비행 이야기를, 나의 삶의 순간순간을 그 누구보다도 공감해 주고 이해해 주는 사람인데.


회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언니에게 말했다.

'언니 그거 알아요? 우리 한 2-3년 전 만해도 우리 둘 다 그냥 어디든 좋으니까 승무원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잖아요. 그 당시에 우리가 꿈꾸고, 이뤄내고 싶다고 한 삶의 모습이 지금 이렇게 벤치에 앉아서 수다 떠는 우리의 모습이에요. 피곤한 몸뚱이로 지겨운 유니폼, 캐리어를 끌고 어제는 스페인, 오늘은 뉴욕, 내일은 호주로 가서 지내는 이 삶의 모습이, 승객이 먹다 남긴 음식에 손이 다 더럽혀지고, 더러운 화장실을 치우고, 상사들이며 선배들이며 눈치 보고 살아가는 이 삶이 우리가 2-3년 전에 꿈꾸던 그 삶이에요.'

언니는 소름 돋는다면서 말하면서도 그래, 그렇네. 우리가 보내는 이 삶의 순간이 꿈이네. 그런 거 보면 정말 우리는 감사해야 해.라고 말했다. 정말 감사한 삶이다. 언니와도 말을 했다. 이 세상에 승무원이 되고 싶어서 승무원을 준비하는 사람은 정말 많다. 하지만 실제로 이뤄낸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그 누구보다도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는 우리를 누군가는 정말로 꿈꿔왔지만 이뤄낼 수 없었고 그저 동경으로 바라만 본다. 그런 걸 생각하면 정말 감사하고 특별한 삶을 살고 있음에는 분명했다.


언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우리 모두가 다 안다. 세상에 영원한 건 없기 때문에, 우리 모두 언젠가 각자의 또 다른 미래를 위해, 정해진 헤어짐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우리에게 정해진 헤어짐이 당장 내년이 될 수도 있다. 그 순간이 다가오면 서로의 앞날에 큰 안녕과 행복을 빌어줄 테지만, 그 섭섭함과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 글을 쓰는 나 역시 벌써부터 눈에 눈물이 고여있다.


우리에게 정해진 헤어짐을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좀 더 마음을 단단하게, 그리고 서로를 더 아껴주고 생각해 주는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부디 나에게, 언니에게, 내 가까운 사람들에게 정해진 헤어짐이 영원이 아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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