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에 있을 안녕을 위해

EP. 미래 일기 _ 퇴사

by 꼬마승무원

오늘따라 마음이 답답하다. 그래서 그런지, 쉬는 날이면 글을 두 세편은 거뜬히 썼지만 오늘만은 머리 회전이 잘 되지가 않는다. 요 며칠 사이에 몸이 좀 안 좋음을 느껴서 그런 걸까? 모르겠다.

이제 슬슬 내년에 쓸 휴가를 위해 다시 머리를 써야 하는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언제 써야 할 것인가에 더 머리를 쓰게 되는 이유는 내겐 퇴사 계획이 있기 때문이다. 빠르면 내년 중반기에서 12월 사이에는 우리 회사와 안녕을 할 계획이다. 엄마는 내 생각을 알고 있다. 여러분들한테는 나중에 퇴사를 하고 나면 할 이야기가 엄청 많다. 하지만 지금은 잠시 넣어두겠다.



처음에는 오래 일하고 싶었다. 오래 일 할 계획이었고. 하지만 시간이 지나 나이를 먹어가니 깊어지는 고민이 생겼다. 미래의 나가 보이지 않는 거 같았다. 나이를 먹어서까지 승무원으로 일하는 내 스스로가 상상이 되지가 않았다. 시간이 지나 일이 익숙해지면서 점점 다가오는 깊은 고민. 그것은 바로



어차피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 정착할 생각이라면,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내가 원하는 다른 직업을 찾고 자리를 하루 한시라도 빨리 잡을 것인가, 아니면 늦어도 좋으니 그냥 최대한 이 직업을 즐기다가 돌아갈 것인가



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사람은 본인이 태어나고 자란 나라에 사는 것이 제일 좋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어차피 나는 한국으로 정착할 생각이 강하게 자리 잡은 사람이다. 이런 생각이 기본적으로 깔려있는 와중에 하나둘씩 본인의 배우자를 찾아 내년이면 휘리릭 떠나갈 예정인 대학교 동기들의 소식들을 들으니 생각이 많아졌다.



각자마다 인생을 살아가는 방향이며 속도는 다르고, 각자의 시간에 맞춰 우리는 잘 살아가고 있음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변에서 들려오는 안정적이고 포근한 이야기들은 나를 더 외롭게 만들고 있었다. 나이가 들면서 이제는 안정적으로 누군가를 만나고, 안정적인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한 나이다.



오늘 유튜브를 통해서 에미레이츠 항공 전직 승무원분의 영상을 보았다. 럭셔리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란, 해가 뜰 때 눈을 뜰 수 있고, 달이 뜰 때 잠에 들 수 있으며, 휴일에 소중한 사람들과 가족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좋은 곳에 놀러 가 추억을 공유하는 삶이라고 그녀를 말했다. 그녀의 말을 듣고는 머리가 띵했다. 맞는 말이었다. 남들이 볼 땐 승무원의 삶이 럭셔리하다고 느낄 수 있겠지만, 그게 아니다. 매번 밤낮이 바뀌는 환경에서 잠에 싸우고, 기압차로 인해 피곤한 몸을 이끌고 전 세계를 왔다 갔다 하며 좋은 음식, 장소를 혼자서 외롭게 보내야만 하는 승무원의 삶은 결코 럭셔리함이 아니다. 그녀의 말처럼, 세상에 둘러보면 하루의 시작과 끝을 우리가 보편적으로 아는 생활 패턴으로 사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그렇게 규칙적인 삶이 곧 행복한 삶이고 건강한 삶이겠지.



생각이 많아져 엄마와 동생에게 카톡을 보냈다. 생각이 많다고. 나도 설날과 추석을 가족들이랑 함께 보내는 삶을 이제는 보내고 싶다고 말이다. 그러자 둘은 누가 가족이 아니랄까 봐 똑같이 말했다.



정 힘들면 그만두는 것이 맞지. 하지만 벌써부터 내년의 일을 걱정하고 전전긍긍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 당장 내일 어떤 일이 일어질지 모르는 것이 사람 인생인데 벌써 너무 힘쓰지 마. 그저 오늘 하루만 잘 견디자, 오늘 하루 잘 보내보자 하면 어느 순간 시간은 지나가있을 거란 걸 그 누구보다도 잘 알거라 믿어. 그냥 지금은 너의 직업을 즐기고 지금의 순간을 누구보다도 즐겼으면 좋겠어. 남들은 일 년에 한 번이라도 가는 것이 버거운 곳을 너는 타인들보다는 쉽게 갈 수 있잖니. 앞으로 네가 100살을 산다고 하면, 앞으로 평생 보낼 명절은 수없이 많아.



그렇긴 하다. 어쩌다 보니 벌써 이렇게 승무원이 된 지 2년 차가 되어간다. 그저 하루하루를 버티다 보니 벌써 이렇게 시간이 흘러가버렸다. 나는 잘 안다. 내년에 그만두면 어떤 결정을 짓더라도 사람인지라 후회할 거라는 걸 말이다. 그 결정이 덜 후회가 되는 쪽을 택하는 것이 맞겠지. 승무원이 아닌 나는 어떤 일을 하게 될지, 요즘 얼추 마인드맵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그려진 상태이기도 하다. 공부하고 싶은 것도 많고, 취미로 배워보고 싶은 것도 너무 많은 미운 30살이다.

일단, 내년에 있을 안녕의 시기는 잠시만 생각 저 편에 고이 넣어 두기로 했다. 이 회사를 떠날 때가 되면 나는 과연 눈물을 펑펑 쏟을까? 글쎄.. 아직 미래의 내가 그려지지는 않는다. 어쩌면 말은 이렇게 해도 내 마음은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그것만은 말할 수 있다. 이곳을 떠날 때, 아 정말 치열하게도 살아왔다는 것을. 고생 많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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