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아의 소설(2)

[봄빛]과 [봄날 오후, 과부 셋]

by 한혜경


"고리대금업자 같은 비정한 세월" 앞에서



정지아의 「봄빛」은 완벽을 추구하는 아버지의 기대에 못 미쳐 아버지와 의절하다시피 살아온 주인공이 치매가 온 아버지를 바라보며 회한에 젖는 이야기이다.


한때 "호랑이맨치 불을 뿜"던 눈이 "흐리멍텅하게" 변하고, 늘 어딘가를 향해 바삐 걸어가던 ‘짱짱한 걸음’은 "걸음마를 배우는 어린아이처럼 곧 쓰러질 듯 위태로"워진 아버지를 바라보는 그의 마음은 착잡하다.


그의 아버지는 가혹한 운명을 극복해 온 자이다.

여덟 살에 아버지를 잃고 병약한 어머니와 갓난쟁이까지 포함한 동생이 셋인 데다가, 누이까지 자신이 짊어져야 할 ‘혹’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눈앞이 캄캄했다. 그런데 “눈앞이 캄캄헝게야, 무선 것이 없드라. 죽기 배끼 더하겄냐” 하는 마음으로 생을 개척해 온 것이다.

하루 세 시간 이상을 자 본 적 없이 교사를 하면서도 논밭 농사를 야무지게 해 내던 아버지는 대학 입시에 계속 실패하고 늦은 나이에 이류 대학에 들어간 아들에게는 ‘죽어도 올라갈 수 없는 아득한 산’과 같은 존재이다.


그 딴에는 안간힘을 써도 아버지에게는 언제나 부족한 아들이었다. 부족을 메우고 싶어 발버둥 친 적도 있었고 발버둥 치기를 포기한 적도 있었다. 어느 쪽이든 아버지와 대결하는 일에 목숨을 거는 것 자체가 쓸데없는 시간 낭비임을 깨달은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일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 아버지는 ‘그의 삶을 가로막고 있는 거대한 산맥’이었는데, 그가 넘어서기도 전에 세월이 야금야금 무너뜨리고 있는 것이다. 운명을 무릎 꿇렸듯 세월도 무릎 꿇게 할 거라고 기대했으나, 세월 앞에서는 어쩔 도리 없음을 보여 주고 있다.


어머니 역시 과거와 다른 모습으로 주인공을 놀라게 한다.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고 조용하며 아버지 앞에서 발소리도 내지 않던 어머니는 이제 큰 소리로 따박따박 말대답에 거친 표현도 서슴지 않는다.

따뜻하고 순종적이던 어머니의 이러한 변화는 “워째 우리 엄마 같들 않다”라는 누이의 말에서도 잘 드러난다.

아들이 왔어도 겨우 몇 가지 반찬만 준비한 밥상과 계속 이어지는 잔소리에서 그는 어머니의 노쇠를 감지한다. 죽음보다 더한 치매 선고를 받고도 피곤해서 잠들 수밖에 없을 정도로 부모님의 몸이 늙었다는 사실과 동시에 ‘고리대금업자 같은 비정한 세월’이 자신으로부터도 수금을 시작하고 있음을 인식하게 된다.


부모가 그의 생명을 키워냈듯 이제는 그가 그들을 품어 그들이 세월에 빚진 생명을 온전히 놓고 죽음으로 떠나는 것을 지켜보아야 한다는 사실 앞에서 그는 ‘받은 것은 반드시 돌려줘야 하는 것’이라는 냉정한 생명의 법칙을 깨닫는다. 눈앞이 캄캄하지만 예전의 아버지처럼 그 역시 이상하게 무섭지 않다. 자연의 법칙 앞에서 순응할 수밖에 없음을 받아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흐드러지게 피었던 개나리며 진달래가 짙어가는 봄빛 속에 시들시들 말라 가고 있었다. 그 꽃이 지면 산에는 봄이 농익어 사철 중 가장 찬란하게 타오를 것이었다”라는 마지막 문장은 인간사와 무관하게 흘러가는 자연의 법칙을 환기시킨다.

여름이 지나면 가을이 오고 겨울 뒤 다시 봄이 오듯이 생명의 순환은 어김없으며, 그 사실을 인지할 때 인간사의 굴곡을 의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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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지 못할 바에는 재미나게 살아야지”



「봄날 오후, 과부 셋」은 읍내에 하나밖에 없던 보통학교 동창 세 명의 이야기이다.

이제는 여든이 넘은 과부 에이코, 하루코, 사다코. 어릴 때 일본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한 탓에 일본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 더 친숙한 이들은 세월이 흘렀지만 어릴 적 성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욕심도 많고 지기 싫어하는 성품의 에이코는 약국 조수와 결혼하여 일찌감치 재물을 모은다. 자식 뒷바라지에 열성이지만 자신의 욕망에도 충실하여 남편이 죽은 뒤 댓 명의 남자와 연애를 한다. 소심하고 착한 하루코는 교사인 남편이 학교에서 쫓겨난 뒤 고향에 돌아와 에이코가 차려 준 책방을 하며 산다. 한 치 흐트러짐 없는 성격에 공부 잘하고 얼굴도 반반하여 늘 주목받던 사다코는 동경제대 나온 남자와 결혼하지만 남편 따라 산사람이 되고 감옥살이를 하는 등 역사의 질곡을 몸소 겪은 인물이다.


삶이란 누군가 자신의 삶을 지켜보고 있다가 ‘빨래를 걷듯 목숨 줄을 휙 걷어 버리는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나이에 이르렀지만, 에이코는 시샘과 욕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특히 사다코에 대한 감정은 복잡 미묘하다. 어떤 일에도 흔들리지 않으며 가진 것이 없는 데도 당당한 사다코를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루코가 온갖 도움을 다 주는 자신에게가 아니라 사다코에게 속 얘기를 하는 것에 심통이 난다. 사다코가 산에서 남편을 잃고 후에 같은 이력을 가진 가난뱅이와 결혼할 때 거액의 부조를 하면서 “공부 잘했다고 인생 잘 풀리는 게 아니다. 이래서 세상은 살아 봐야 하는 거”라고 만족스러워하기도 하지만, 힘든 내색을 하지 않는 사다코에게 번번이 비위가 상한다.


그렇다면 이들의 삶을 이끌어 온 동인은 무엇일까?

“너는 대체 무슨 맛으로 살았니?” 에이코의 질문에 사다코와 하루코는 다음과 같이 답한다. “너야 자식 때문에 살았을 거고, 하루코는 남편 때문에 살았을 거고, 글쎄 나는, 뭣 땜에 살았나…….”라는 사다코의 말에 이어서 하루코는 “사다코는 사상이 있잖아, 사상이. 우리 영감도 그랬는걸. 어쩌면 우리 영감은 나보다 그게 더 중요했는지도 몰라.”라고 말한다.

평생 누구에게도 기죽지 않고 당당했던 사다코의 비밀이 풀리는 지점이다.


“사상이고 뭐고, 살아 보니 다 덧없다. 죽으면 다 한 줌 재지, 뭐”라고 말하지만 아직도 그런 책들을 놓지 않고 있는 사다코의 모습을 통해 작가는 에이코의 물질, 하루코의 부부애 못지않게 사상이나 동지애가 삶을 굳건히 견디게 하는 힘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그동안 겉돌았던 이들의 관계는 한순간 함께 웃음으로 화해에 이르게 된다.

“할 수만 있다면 혀 깨물고 깨끗이 죽었으면 좋겠구만”이라고 말하던 사다코가 “죽긴 왜 죽어! 하루라도 더 재미나게 살아야지”라는 에이코의 생각에 동조하는 것이다. 티격태격하던 이들의 대화는 “죽지 못할 바에는 재미나게 살아야지”로 귀결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밥을 먹어야 한다는 지극히 당연하지만 중요한 결론에 이른다.


시장기를 느끼고 밥을 먹는 것, 그리고 웃음을 터뜨리는 것은 바로 생명의 표현이다.

특히 고기를 사러 가며 ‘살아 있는 한 재미있게 살 작정’을 하는 에이코는 실제 나이와 상관없이 젊고 활기차다. "봄볕 속으로 네 활개를 치며" 걸음을 옮기는 그녀의 모습은 화창한 봄날에 잘 어울리는 장면이다.








무심하지만 생명이 약동하는 봄날.


누구에게나 봄빛은 골고루 내리쪼이고 누구든 예외 없이 주었던 것을 되돌려 받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누구나 행복하게 살다 가고자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 것이 ‘세상지사’라 할 때,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작가는 봄날의 각기 다른 풍경을 통해 그 대답을 구하고자 하는 것 같다. 잠시의 행복도 허용되지 않는 듯한 삶에선 작은 것에라도 위안을 얻으며 살거나 체념의 지혜를 체득해야 하고, 시간의 흐름 앞에서는 제아무리 강한 인간이라도 무력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여든이 넘어도 생의 의욕을 북돋을 수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우리 인간이란 수북한 밥 한 사발에 행복을 느끼는 존재이면서 또 한편으로는 물질과 무관하게 정신적 자산으로 배부를 수 있는 존재임을 보여 준다.

또한 세월이란 비정한 고리대금업자와도 같지만 그 사실을 인정할 때 무서울 것이 없음을 보여 주기도 한다. 그리고 살고자 하는 의지만 강하다면 여든이 넘은 나이라도 열네 살 소녀 같은 생기를 지닐 수 있음을 보여 주면서 우리를 봄날의 풍경으로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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