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호의 소설들

당신이 잠든 밤에

by 한혜경



당신이 잠든 밤에



태풍 카눈이 상륙하면서 많은 피해가 발생했다. 몸을 가누기 힘든 강풍으로 나무가 뿌리째 뽑혀 나가고 주택의 외벽이 떨어져 나가고, 엄청나게 불어난 도랑물에 휩쓸려 사람이 실종되고, 맨홀 뚜껑이 치솟아 버스 바닥을 뚫어 버리는 일들이 일어났다.


태풍 피해로부터 비교적 안전한 지역에 있는 사람들은 텔레비전이나 신문을 통해 지난밤 사이 일어났던 재해의 현장을 알게 된다. 요즘은 핸드폰을 통해 수시로 피해현장을 검색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뉴스를 보기 전엔 폭우의 피해를 실감하지 못하리라. "뒤숭숭하던 간밤의 천둥소리를 단지 꿈으로만 치부"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당신이 잠든 밤에>)


당신이 편안하게 잠든 밤에 어떤 이는 밀려오는 토사와 급류에 휘말려 가기도 하고, 어떤 이는 밤새 지하 방에 차오르는 물을 퍼내거나 무너진 집 앞에 망연히 서 있었을 수도 있다.


비단 폭우 때문이 아니라도 모든 이가 잠자고 있는 한밤에 깨어 있는 자들이 있다. 실연의 아픔에 꼬박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자도 있을 것이고 시험을 앞두고 밤을 새워 공부하는 이, 돈을 벌기 위해 편의점이나 24시간 상점, 공장에서,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소설가는 어떤 사람들을 상상할까?


1999년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기호는 ‘이렇다 할 기술도, 학력도, 연고도 없는 지방 상경 청년들’과 외로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창조한다. 이른바 ‘스펙’이라고 불리는 수많은 조건을 갖춰도 취업이 어려운 요즘, 이런 청년들의 삶이 순조로울 리 없다는 것에는 누구나 쉽게 동의할 수 있으리라.


이기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우습기도 하면서 슬프다.

모두들 잠든 밤에 이 인물들이 깨어 있는 사연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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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잠든 밤에>(<<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에 수록)는 지방에서 올라와 고시원에서 근근이 살아가는 두 청년 시봉과 진만의 이야기이다. ‘이렇다 할 기술도, 학력도, 연고도 없는 지방 상경 청년들'이 "가장 만만하게" 할 수 있는 편의점 새벽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몰래 눈을 붙이다가 점장한테 들켜 해고된다.


3개월 치 선불을 내고 들어간 고시원 생활이 사흘 후면 끝이 나는 절박한 상황에서, 이들이 생각해 낸 것은 자해 공갈이다. 편의점에서 "싸가지 없게" 굴었던 여성을 여고생으로 추정하고 그녀가 운전하는 차에 치여 돈을 뜯어내겠다는 계획이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상황에 더해, 평소 "겁 많고 병약하기 그지없는" 이들이 자해 공갈을 계획한다는 사실이 씁쓸한 웃음을 자아낸다. 예상대로 실패하는데, 바로 그 실패 과정이 소설의 줄거리가 된다.


첫 장면은 비 내리는 여름밤 새벽 한 시, 방범 초소 옆에 쪼그리고 앉아 자동차를 기다리는 것에서 시작한다. “틀림없지?” “틀림없어.” 서로 확인하는 모습에서 이들이 계획이 얼마나 무모하고 불확실한가를 역으로 느끼게 된다.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그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의외의 복병’이 다양한 형태로 찾아온다. 보안 업체 직원에게 불심 검문을 당하며, 자동차에 부딪치려고 달려가는 도중에 보도블록에 걸려 넘어지고, 도움을 청하는 소녀를 따라갔다가 깡패들에게 폭행을 당하기까지 한다.


자동차 범퍼 근처에도 가 보지 못했는데 이미 온몸이 멍투성이가 되자, 시봉은 “이왕 이렇게 된 거, 아예 더 망가뜨려 볼까?”라며 자신의 발목을 벽돌로 내리친다. 상당히 긴 지면을 할애해 묘사하고 있는 이 삽화는 이들이 겪고 있는 고통과 상관없이 흘러가는 세상을 대비시킨다. 곧 시봉은 복사뼈가 커다랗게 부어오르고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지만, 사위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고요"할 뿐이다.


시봉에 대한 연민이 고조되는 부분이지만, 작가는 엉뚱한 상상력으로 연민의 농도를 묽게 만든다.



“살 속에 물이 가득 담긴 것 같지 않아?” “…… 이렇게 온몸이 다 부어오르면 어떻게 될까? 떡대가 정말 좋아 보이겠지……? 미쉐린 타이어 선전하는 놈처럼 말이야.”

“미친놈……. 넌, 정말 이상한 새끼야…….” “뭐가?” “남한테 불쌍한 모습 보여주고 싶어서 안달 난 놈 같다고.” 시봉은 말없이 진만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그래야 한 번이라도 더 나를 볼 거 아니야. ……말도 걸어오고 …… 너도 처음엔 그래서 말을 걸어왔잖아…….”

<당신이 잠든 밤에>에서



불쌍하게 보임으로써 타인의 관심을 끈다는 시봉의 이야기는 내세울 것이 아무것도 없는 자의 아픔을 담고 있으면서 독특한 상상력으로 웃음을 유발하기도 한다. 또 ‘딱히 되돌아갈 곳’이 없는 처지임에도 세상에 대한 원망이나 비관을 찾아볼 수 없다는 점도 특징이다. 그 대신 자신처럼 상처를 지닌 자들을 ‘모르는 척’ 하지 않음으로써 ‘상처 위에 상처를 덧대면서 상처를 잊는 친구’가 되어 이 세상의 고달픔을 견디려고 한다고 하겠다.






외로운 자들은 국기 게양대에 매달려 있다


<국기 게양대 로망스 – 당신이 잠든 밤에 2>에는 시봉보다 더 엉뚱한 인물이 등장한다. 바로 국기 게양대를 사랑하는 남자다.

앞 이야기에서 자해 공갈에 실패한 시봉은 국기 게양대에 내걸린 국기를 떼다 파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그런데 국기를 떼기 위해 게양대에 올라간 어느 밤, 옆 게양대를 오르는 젊은 남자를 만난다. 모두가 잠들어 있는 새벽 세시 무렵, 깜짝 놀란 시봉에 비해 그는 시종일관 밝은 태도로 자신도 근처 고시원에서 살고 있으며 가끔 시봉을 봤다고 아는 척을 한다. 그리고 게양대에 매달려 있는 시봉의 자세를 고쳐 주기도 하며 이런저런 대화를 이어가다가, 시봉이 왜 게양대에 올라왔는지 다 안다고 말한다. 자신이 국기를 떼다 파는 것을 안다는 말인 줄 알고 시봉이 민망해하자, 그는 주저하며 고백한다.

"아저씨, 사실은...... 저도요...... 저도 말이에요."

"사실은...... 저도 국기게양대를 사랑하고 있어요!"


이 기상천외한 이야기에 할 말을 잃고 한숨을 내쉬고 있는데, 또 하나의 사내가 나타난다.


세 개의 국기게양대 중 비어있던 게양대를 한참 동안 맞잡고 있던 사내는 어느 순간 위를 올려다 보고 시봉과 눈이 마주친다. 그리고는 게양대를 오르기 시작해 이 둘과 나란히 매달려 있게 된다.

깡마르고 넥타이를 맨 30대 중반의 사내는 사라진 아내를 찾으러 다니는 중이다. 같은 동네 다세대주택 반지하에 사는 이 사내는 아내가 집을 나갔는데,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한다. 사연을 들어보니, 그의 아내는 일 년 전부터 말을 할 수 없는 병에 걸려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된 이유는 남편 모르게 빚보증을 섰기 때문이라는 것.

그 아내가 매일 이곳, 국기게양대아래에 나와 있었으므로 혹시나 해서 찾아왔다고 말한다. 아내는 이 국기게양대에 한 손을 짚고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움직이지 않은 채 가만히 서 있었다. 가끔 고개를 끄덕이고 또 가끔 국기게양대를 토닥거려 주기도 했다. 그건 분명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었다고 사내는 말한다. 그것이 싫어서 국기게양대에 가지 못하게 했더니 사라졌다는 것이다.


국기 게양대를 사랑한다고 한 남자는 이 사내에게도 국기 게양대를 사랑하기를 권한다. “그렇게라도 외로움을 이겨 내셔야죠.”라고 하면서. 곧 국기 게양대는 "외로운 사람들을 껴안아 주려고" 존재한다는 것이다. 달리 방법이 없는 넥타이 사내도 국기 게양대를 사랑해 보기로 마음먹는다.


그렇게 해서 온 동네가 "어둠 속에 괴괴히 잠들어 있는데" 세 남자가 "말없이 가만히" 국기 게양대에 매달려 있는 풍경은 처연하기 그지없다. 급기야 넥타이 사내가 울음을 터뜨리고 내내 울적하던 시봉 역시 눈물을 흘리지만 그 아래 세상은 이들의 아픔과 무관하다.

게양대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지나치는 신문 배달부, 성경책을 끼고 교회에 가는 노파, 새벽이 되어 가는데 "좀처럼 잠에서 깨어나지 않고" 있는 사람들은 오 미터 상공에 누군가 매달려 울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시봉은 사실 국기를 떼러 올라간 것이었으므로 옆의 남자처럼 국기 게양대에 매달려 있을 필요가 없다. 그러나 왜 계속 매달려 있는지 스스로 알 수 없어하면서 "왠지, 그냥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라고 느낀다. 이는 옆의 남자가 “우리 같은 사람들은 그렇게 하면서라도 살아야죠.”라며 만난 지 얼마 안 된 시봉에게 바로 ‘우리’라는 표현을 쓴 것처럼, 이들 사이에는 "당해 본 사람만 알 수 있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기에 넥타이 사내가 울음을 터뜨리자 같이 눈물을 흘리게 되는 것이다.


시봉을 비롯해 국기 게양대를 껴안고 있노라면 국기 게양대가 아닌 ‘다른 무엇’이 되는 것을 느낀다는 남자나 얘기할 대상이 없어 국기 게양대와 대화를 나누던 넥타이 사내의 아내, 아내를 잃고 괴로워하다가 국기 게양대를 사랑해 보기로 하는 넥타이 사내. 이들은 모두 고시원과 반지하 월세방에 살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외로운 자들이다. 달리 마음을 붙일 데가 없어 국기 게양대에 의지해 외로움을 견디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는 외로운 자들의 절박함을 인상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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