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우가 자랄수록 하루 24시간의 밀도는 이전과 달라졌다. 아이의 성장은 눈부시게 빠르고, 나는 그 속도에 비례해 조금씩 낡아간다. 거울 속에서 연우와 반대로 늙어가는 내 모습을 마주할 때면, 새삼 시간이 야속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아침의 풍경은 이미 오래전에 무너졌다. 정돈된 거실에서 커피 한 잔과 함께 종이신문을 넘기던 그 고요한 사치는 이제 기억조차 희미하다. 새벽 6시, 방 안에서 나를 기다리는 연우의 존재가 내 알람이 되었다. 가끔은 모른 척 늦잠을 청해보지만, 결국 내가 먼저 몸을 일으켜야만 우리 부부에게도 '일찍 퇴근할 수 있는 밤'이 주어진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이 짧은 인사가 내 육아의 시작이다“
방문을 열면 연우는 환한 얼굴로 나를 반긴다. 잠이 덜 깬 눈으로 팔을 벌려 안아달라 보채는 그 찰나의 순간만큼은 내가 세상의 전부가 된 기분이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해가 높이 뜰수록 연우는 명확하게 감정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그 표현의 방향이 유독 나에게만 차갑다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연우는 나를 외면한다. 싫은 기색이 역력할 땐 아예 고개를 돌려버린다. 엄마처럼 살갑게 말을 건네지 못해서일까, 아니면 조용히 앉아 눈을 맞춰주지 못해서일까. 저녁마다 필라테스를 하러 떠나는엄마의 빈자리를, 아빠라는 투박한 존재가 메우지 못하는 것에 대한 서운함일지도 모르겠다.
가장 괴로운 건 아이가 자지러지게 울 때다. 그 울음소리 앞에서 나의 감정은 속절없이 요동친다. 순간적으로 치밀어 오르는 짜증을 다스리지 못해 얼굴을 붉히고 나면, 이내 지독한 좌절감이 밀려온다. 따뜻하게 안아주지는 못할망정 아이의 슬픔에 내 짜증을 얹어버린못난 모습. 그 속상함은 아이의 울음보다 더 날카롭게 나를 찌른다.
그럼에도 나는 다시 노력하기를 선택한다. 다정한 아빠라는 역할이 몸에 맞지 않는 옷처럼 어색할지라도, 아이의 서운함을 언어로 번역해 주려 애쓴다.
"연우가 엄마랑 더 놀고 싶은데 가서 속상했구나. 아빠가 더 재밌게 해줄게."
아이가 가리키는 손가락의 방향을 쫓고, 그 작은 움직임에 최대한의 반응을 보낸다. 내 삶의 궤적은 이제 오롯이 연우라는 작은 행성을 중심으로 공전하기 시작했다. 다정하지 못한 아빠가 다정한 척이라도 해보려 애쓰는 이 분투기가, 언젠가는 연우에게 닿을 진심이 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