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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디아 Dec 07. 2023

놓치니 보이는 것들

 “일단 타고 도착해서 보여드리면 안 될까요? 비행하는 동안 승인이 날 거 같아서요.”

 “이 상태론 캐나다 상공을 날 수 없으세요.”


 때는 파리에서 토론토로 돌아오는 날이었다. 버펄로 공항까지 가는 비행기의 수가 적었기에 나와 친구는 토론토 공항으로 가 레인보우 브리지를 건너 육로로 나이아가라에 갈 생각이었다.


 평소 지내는 곳과 멀어서 자주 가지 못한 토론토 시내 우동 맛집도 들를 생각이었다. 나의 작은 소망은 한순간에 무너져버렸다.


캐나다 공항으로 입국하려면 비자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은 것이다. 평소 미국에 있을 때 육로로만 캐나다로 이동해서 비자를 챙길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우리가 파리 공항에 도착한 건 출발 두 시간 전, 비자를 신청한 건 출발 1시간 전이었다. 캐나다 비자는 다행히도 당일 신청이 가능해 보였다. 비자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지하자마자 나는 곧바로 신청했다.


 시간이 부족했으므로 한국, 캐나다 할 수 있는 온갖 방법으로 대사관에 전화해 사정을 설명하고 승인을 빨리 받을 수 있도록 요청했다.


 돌아오는 답변은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기다리시라 “ 뿐이었다.


 하는 수없이 기다렸고, 마침내 비자 승인이 된 시점에는 이미 게이트가 닫힌 상태였다.


 그렇게 나는 한 번에 200만 원을 잃었다. 파리와 런던을 여행하면서 생각보다 여행비를 줄였다는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돌아가야 했으므로 가장 빠른 다음날 비행기를 전날 예약하는 바람에 그 큰돈을 쓸 수밖에 없었다.


 강제로 얻게 된 1일 자유시간, 이대로 공항에만 있기에는 아쉬워서 다시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파리 시내로 갔다. 가장 먼저 한식당에 들러 돌아가면 한동안은 구경도 못할 김치찌개를 미친 듯이 먹었다.


 ”이제 뭐 할까 “


 시간에 쫓겨 가보지 못한 곳도 천천히 구경하고 로컬 가게에서 웃픈 이 순간을 기억할 장미 향수도 샀다. 200만 원을 한 번에 잃고 보니 그간 여행하면서 아낀 몇 유로가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을 때우고 루브르 앞 연못이 보아는 근처 공원에 앉았다. 초록색 의자에 앉아 아까의 순간을 회상했다. 후회하기에는 이미 늦었으니 즐기자는 생각이 들었다. 연못을 바라보며 멍 때리던 그 순간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지나서 알게 되었는데 파리에 오는 많은 관광객들이 초록색 의자에 앉아 사색에 잠기는 걸 로망으로 뽑는다고 한다.


 이번에도 놓치면 정말 큰일 날 거 같아서 서둘러 공항에 도착했다. 아직 항공편도 뜨지 않고 수속 절차도 시작하지

않은 깜깜한 공항이었다. 이곳에서 나와 친구는 꼬박 버텨야만 했다.


 딱딱한 의자에 기대어 캐리어를 발판 삼아 잠깐 눈을 붙였다. 추운 공기가 가득한 공항에서 후드 모자를 뒤집어쓰고 코트를 덮었다. 소매치기가 걱정돠어 캐리어를 지키느라 거의 뜬눈으로 새벽을 보냈다.


  내 인생에서 노곤한 순간이었다. 누가 살짝만 건드려도 픽 쓰러질 것만 같았다. 어떻게 비행기를 탔고 버스로 갈아타 기숙사로 돌아왔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가는 16시간 비행만큼이나 힘들었다. 돌아와 짐을 풀면서 아까 산 장미 향수를 뿌려보았다. 은은한 장미향이 풍겼다.


 돌아올 곳이 있다는 사실이 그날따라 크게 와닿았다. 방랑의 생활을 멈추고 안정적인 곳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파리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언제예요?”

 누군가 물을 때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말한다.

 “비행기 놓쳐 보신 적 있으세요?”

 

 비행기를 놓쳐서 파리를 한번 더 다른 눈으로 찬찬히 즐길 수 있었다. 물론.. 그날의 진 마음의 빚으로 돌아와 더 열심히 일하게 되었지만 말이다.


 세상에 완전한 비극은 없는 거 같다. 당장의 비극이 훗날 희극이 되기도 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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