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눌러! “
때는 학기를 마치고 서부로 떠날 때였다. 미리 짐을 부쳤음에도 나에게는 몸만 한 캐리어 하나가 있었다. 7일의 서부여행 기간 동안 이 캐리어를 책임져야 했다.
지정 수화물 무게를 넘어버렸다. 불쌍한 표정으로 직원을 바라봐도 소용없었다. 그렇게 캐리어 해체쇼가 시작되었다.
공항 바닥에 캐리어를 눕히고 뺄 수 있는 물건을 최대한 뺐다. 버리기 아까워서 챙긴 것들을 버리고, 친구 캐리어에 옮기고, 잘 닫히지 않는 걸 꾹꾹 눌러 담았다. 줄이고 줄여서 다시 무게를 재러 갔다.
무게가 초과하면 다시 눕혀서 열고 닫고를 반복한 나머지 내 캐리어의 바퀴는 아작 나고 있었다. 무거워서 너무 세게 올려놓은 나머지 한쪽 바퀴가 뜯어져 나가 버렸다
“망했다”
“이걸로 7일을 버텨야 하는데.. “
임시방편으로 캐리어에 있던 스카치테이프와 돌돌이 스티커를 뜯어내어 달랑거리는 바퀴를 붙이기 시작했다.
“제발 비행만 버텨다오”
이렇게 빌면서.
내가 바퀴와 씨름하는 사이 친구들은 해체쇼를 흥미진진하게 이어가고 있었다.
네 바퀴로 끌던 캐리어를 앞쪽 두 개로 끌려니 체감 무게가 훨씬 무거웠다. 끙끙거리면서 겨우 라스베이거스 호텔에 도착했다.
체크인이고 뭐고 나는 캐리어 바퀴를 고칠만한 큰 테이프를 찾기 시작했다. 늦은 시간이라 테이프를 빌릴만한 곳은 없었다.
아침에 프런트로 나와 나는 어제 봐놓았던 곳에서 테이프를 빌렸다. 친구들과 열심히 붙인 끝에 달랑거리던 바퀴는 끌 순 없어도 한국까지 아슬아슬하게 버틸 수 있어 보였다.
한쪽 바퀴를 잃고 나서야 4바퀴가 얼마나 소중한 지 깨달았다. 길도 찾아야 하고 주위도 살펴야 하는 초행길에 나는 온 신경을 캐리어에 둘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남들보다 뒤처졌고 언제 또 떨어질지 모르는 바퀴 때문에 스트레스 아닌 스트레스를 받았다.
여행하면서 이런 크고 작은 시련들을 마주하게 된다. 그때 나에게는 엄청 큰 일이었지만 사실 이 사건은 너무 미미해서 한동안 잊고 살았다. 우연히 어제 갤러리에서 바퀴 한쪽 잃은 내 캐리어 사진을 발견했다. ‘웃음’부터 났다.
그때는 엄청 큰 사건(?)이었는데 지나고 보니 이걸로 난 그때를 추억한다. 세상을 살면서 어쩌면 큰 일은 없을지도 모른다. 사소한 일에 스스로가 너무 큰 무게를 지면서 사는 건 아닐까.
한쪽 바퀴를 잃어 무게 중심을 앞으로 둔 것 반대로 당장 눈앞에 놓인 일의 무게 중심을 뒤로 두면 어떨까. ‘시간이 지나면 추억’이라는 말처럼 당장의 힘겨운 무게가 뒤에서는 ‘웃음’처럼 조금은 가볍게 느껴질 수도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