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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초하 Sep 26. 2022

익숙함이 사랑일까?

이제는 의미를 담아 기록하지 않습니다.

의미 없는 것들에 의미 없는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는 건 언제나 나였다.

사람의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 흐려지기에 기록하기를 좋아했던 나는 그 기록의 과정에서 많은 부분에 의미를 부여하곤 했다.

그 사람과 그냥 함께하던 일상도 그냥 줬던 물건들도 그냥 갔던 장소도 내 기록 속에는 나에 대한 애정을 담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에 나는 그것들의 기록에 많은 의미를 담아 적곤 했다.

한 번도 먼저 그렇다, 아니다 를 말하지 않는 사람이고

내가 묻는 데로 답했기에 이왕이면 좋은 기억으로 남기고 싶었던 나는 의미를 담았던 것이다.

기록 속의 그 사람은 늘 괜찮은 사람이라 기억 속의 그 사람과 같은 사람이 맞는 건지 요즘은 잘 모르겠다.

십수 년의 기록과 기억 둘 중 어느 것이 문제인 걸까?


어느 날,

내가 더 이상 그 사람의 행동에 어떤 의미도 부여하지 않게 되자 나는 많이 외로워졌다.

그리고 그동안에도 외로웠음을 깨달았다.

외로우니까 자꾸 의미를 담았던 거다. 있는 그대로는 무미건조하니까.

어디든 나가는 걸 좋아했던 사람,  그저 내가 옆에 있어서 나와 다닌 건데,  내가 좋아 나와 다닌것이라고 적었더니 그런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음식을 특별히 가리지 않아 내가 먹자는 걸 먹는 사람, 중요한 일도 내가 물어봐야 대답하는 사람, 세상일 모두를 결정하고 책임지는걸 귀찮아하는 사람, 굳이 모든 일에 이유를 이야기하지 않음으로 본인을 숨기는 사람이었다.

내가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으면 나는 그 사람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먼저 알려주지 않음으로.

내가 그 사람에 대해 정확히 아는 것은 바꾸면 그뿐인 핸드폰 번호였다.


익숙함으로부터의 이별을 무서워하는 나.

나는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하는 이유와 미워하는 이유가 같다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해도 함께 일 수 있고 나를 미워해도 함께 일 수 있다. 어차피 어느 쪽이든 말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으니까, 그리고 영영 나는 진짜 그 사람을 알지 못한 채 끝나게 될 것이니까, 세월을 함께하는 것이 곧 그 사람을 아는 것이 아님을 이제는 내가 알고 있음으로...

내가 익숙한 것으로의 이별을 받아 들 일수 있다면,

나는 아마 조금덜 외롭고 조금 더 쓸쓸하게 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더 이상 확실하지 않은 어떤 일들에 의미를 부여하며 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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