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합니다, 덴마크
씩씩하게 놀아보자
학교에서는 국제학생들을 위해 매주말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아직까지 나는 "하이" 정도 인사하는 관계들 뿐이지 "시간 날때 커피 마시자"라고 편히 말할 수 있는 친구를 만들지는 못했다. 그래서 이런 프로그램들이 나에겐 참 중요했는데, 대부분 참여하는 애들은 20대 초반. 씁쓸하긴 하지만, 이 나이에 대학생이 되기를 스스로 선택했으니, 어쩌면 이 상황은 너무나 당연했고 싫으면 안가면 되는것일뿐!
그날 주말 프로그램도 난 혼자서 씩씩하고 당당하게 참석했다. 다들 친구들과 함께 와서 그런지, 어쩌다보니 나만 다른 테이블에 덩그러니 앉아 있게 되었다. 역시 난, 참말로 씩씩하지. 아무 테이블에 가서 "여기 앉아도 돼?" 라고 물었고, 웃는 낯에 침 못뱉는다지. 친절한 친구들이 하는 말,
"sure"
나는 이날 이란 친구, 불가리아 친구를 만났다. 언덕을 구르고, 아이스크림을 함께 먹고, 지나가는 행인을 인터뷰하고, 버스도 같이 타고, 노래도 같이 해야하고. 이런 미션들을 다 수행하고 나니, 나이 국적은 아무 상관이 없었다. 물론 나는 그날 이후 근육통에 시달리긴 했지만. 헤어질때에는 다른 날 꼭 같이 차도 마시고 점심도 먹자했다. 드디어 내게도 커피마실 친구가 생겼다.
씩씩하게 놀다가도!
이렇게 놀다가도, 다음주 수업을 생각하면 마음이 급 불편해 진다. 내일 읽어야할 수업 자료를 열었다. 한국어로도 어려운 단어들을 영어 원서에서 만나면 한국어로 번역하고 그 의미와 맥락을 완벽하게 파악해야 영어 원서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다보니 한국어 페이지에서 오랫동안 머물러 있기 일쑤였다. 남들 한두시간 읽을것을 나는 하루종일 붙잡고 있어야만 하는 상황인거다. 그러다 갑자기 또 나는 여기 왜왔지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널뛰는 마음을 추스릴 몇 단어를 뽑아 책상앞에 두고 정신 단도리 해야지. 하는 마음에 노트북을 닫으려는데
띠링!
학교 입학팀에서 메일이 날라왔다. 그리고 눈물이 주루룩. 내가 해석을 잘못 한건 아니겠지? 몇번일 읽고 또 읽고를 반복했다. 쥐구멍에도 볕이 뜬다지!
맞아, 정말 맞겠지? 전액 장학금에 선정된게 맞았다. 아시아인들에게는 거의 불가능이라는 국비장학생으로 선발되었고 심지어 생활비까지 준다는 어마무시한 장학금이었다. (생활비는 1년만, 첫 달에는 적응하라고 2배) 생활비는 덴마크 학생들보다 더 높게 책정되었는데, 그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2년 다 못주니까 그런건가?) 장학금도 소득으로 인정되어 세금을 50% 떼어가긴 했지만 여전히 친절한 덴마크(학생은 비과세 적용이 일정 부분 된다. 비자받은 뒤 세금카드를 발급하면 미리 낸 세금은 소급적용이 가능하다), 이 나라, 나에게 왜이렇게 잘해주는걸까? 오며 가며 늘 환영받고, 물질과 마음까지 내어주는 주변의 덕을 나는 이 생에 톡톡히 받고 있다. 겸손한 마음으로 어떤식으로든 찬찬히 갚아야지.
한국에서 야근이 잦았던 나는, 퇴근후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집에 도착하면 방으로 들어가지 않고, 옥상으로 갔다. 평상에 누워 달을 보고 별을 보며 마음을 추스렸다. 미워하는 마음을 삭히기도 했고, 행복했던 순간들을 조금더 붙잡아 밤공기와 함께 누리기도 했다.
오늘 한국은 추석, 보름달이 그곳에도 떴겠지. 이곳 덴마크에서도 커다랗고 동그란 보름달이 떴다. 은평 공기같다. 이 좋은 소식 조금만 더 내 곁에 붙들다 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