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핑 인생, 나 왜 왔지 여기.
나는 어쩌다가 이런 쩜핑을 하고 있나 몰라.
하고 싶은대로 막 살다보니 지금까지 거쳐 왔던 삶의 자리들이 어느 하나 한국사회가 요하는 순서대로 맞아 떨어지는게 없다. (내 의지로 불가능했던 학교 시스템에서 벗어나는 순간부터)
스물하나, 인턴생활을 시작했고 스물다섯, 영국의 뮤지컬이 보고 싶다며 회사를 때려치웠다. 하루이틀로는 다 보고 오지 못할 듯 해서 여섯달을 살았다. 다시 돌아와서 죽도록 일하던 어느날, 문득 공부가 하고 싶어 편입으로 방통대에 들어갔다. 그때 나이가 스물아홉. 수강신청 하는날을 깜빡하고, 시험보는 날을 깜빡하고, 출석수업을 깜빡하다 보니 2년만에 끝날 것을 4년을 다녔더라. 회사와 병행하며 힘들 줄 알았는데 어려운지 모르고 즐겁게 다녔다. 현장 실습으로 논문을 대체해서 그럴 수도 있다. 그리고 다들 결혼할 나이에 나는 또 긴 여행을 떠났다. 고향친구들은 아이들을 막 낳고 기르던 시기에 시집안간 딸이 일년 넘는 여행을 한다니 우리 엄마 아빠 기가 찼던 모양이다. 내 여행 소식을 듣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내 고집을 알기에 10초정도? 있다가 바로 진정 되셨다) 이후 한국에 돌아와서 책을 내고 이후 두번의 직장을 다니며 7년을 보냈다. 그리고 나는 지금 어디있나. 덴마크에 있다.
하고 싶은 마음대로 인생길 따라가다 보니, 막 말하면 ‘막 살다보니’ 거참, 뒤죽박죽 인 듯 하지만, ‘한결 같은 정신 세계로 무장하고 도전하며 가고 있다’에 더 의미를 두어 보려 애쓴다. 그러나, 이건 좀 너무 한거 아닌가? 한국에서 논문을 써보지 않은 아이가, 지금 하고 있는 석사과정과는 전혀 다른 과목을 전공한 아이가, 아카데믹 영어는 들어보지도 않은 아이가, 평균 20대 중반인 유럽아이들과 함께 지금 이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 내 인생이지만 어쩌자고 이런 시련을 던진걸까.
이건 내 인생 최대의 도전이라 쓰고 눈물이라 읽으며 신세계라 칭해본다.
여기가 은평이야, 덴마크야
이제 고작 3주인데 서너달은 걸리겠지. (아니 나는 나이가 많으니 조금더 걸릴거야. 6개월까지도 스스로 봐주자 흑흑) 라는 마음으로 스스로를 달래고 있긴 하지만 2,30대 때보다 습득의 시간이 슬로우 모션으로 가는 것을 온몸이 느끼니 그날이 곧 오지 않을까 두렵기도 하다. “수업시간에 나에게 질문을 하면 어떡하나?” 와 같은 걱정, 친구들이 많은 버스를 피해서 타는 경험, 구글번역기는 돌리는 것이 창피하다 느끼는 경험, 인생에서 한번도 경험하지 않았던 이것들을 지금 내가 하고 있다. 학교 동기들은 이런 내 마음을 아무도 모를테다. 왜냐, 나는 학교에서 꽤나 발랄한 한국인의 캐릭터로 살고 있으니까. 앞으로 조별과제들과 프리젠테이션(발표는 걱정이 안됨, 질의응답과 토론이 걱정), 오럴테스트 등의 어마무시한 것들이 펼쳐질텐데 잘해내고 싶은 마음은 하늘 끝까지 이지만 내 실력은 아장아장 걷지도 못하고 기어가는 수준임을 매 순간 인정해야 하겠지. 다들 학부를 졸업하고 석사로 건너온 동기들 속에서, 인생에 쩜핑! 쩜핑! 쩜핑! 을 막 하며 사는 내 삶이 지금은 아카데믹 필드에서 쫄보로 머물러 있지만 곧, 뭇 다른 성숙한 시각을 동기들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오길 기다려본다.
지금 사는 이 공간이 아직은 친숙한 나의집 같지 않고, 아침에 눈 뜰때마다 여기가 은평이야 덴마크야 하는 비몽사몽도 여전한걸 보면 완벽한 적응까지 아직 도달하지 않은 것으로. 그럼에도 날짜는 하루하루 가고 있고 안 보던 영어책을 매일 읽어야 하니 이렇게 저렇게 살다보면 스리슬쩍 차곡차곡 적응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