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천우연 입니다 Oct 30. 2022

(5) 비자 없이 덴마크에 들어왔다.

그래서, 오늘 아침엔 아주 잠깐 울었다.

도착 후, 좌충우돌 에피소드. 


1. 덴마크에 비자 없이 들어왔다. 

한국에는 덴마크 비자를 볼 오피스가 없어서 스웨덴 대사관이 중계하는데 그 비용이 70만원, 그거 내기가 나는 그리 싫었다. 혹시나 나를 밀입국 방으로 데려갈까 입국심사에 약간 쫄리기도 했지만 그것도 경험이리라, 했다. 사무관은 활짝 웃으며 무슨 공부를 할거냐, 그 도시 정말 아름답다. 열심히 해라. 중간에 포기하지 말고. 힘들어도 너라면 잘 해낼 것이다. (엥, 한국 친구 응원 저리가라 치얼업 해 주시는 이분은 뭐지?)라 했다.

여기까지 웰컴투 덴마크. 다음 날, 비자 처리를 위해 한달전 한국에서 예약한 사무관과 만났다. 인터넷 블로그만 보고 준비해 간 종이자료를 드렸더니 이 모든것 인터넷으로 제출하고 왔어야 한단다. 그래 어쩐지 이렇게 구닥다리 종이 제출을 하는 나라가 있을리가 없지. 그럼 잠깐 시간을 달라. 여기서 하겠다 했다. 새 노트북을 들고와서 이전 로그인 기록은 날아갔고, 아이디와 비번은 자꾸 틀리다고 (이건 한국이나 덴마크나 맨날 그래).

덴마크 날씨가 벌써 가을을 훌쩍 지났는데, 나는 땀을 뻘뻘. 게다가 오피스 문을 2시에 닫는 노동자 친환경 상황에 내게 주어진 시간은 겨우 10분. 포기하고 다음에 다시 오겠다 하며 사무관의 눈웃음에 화답했다. 나오는 길, 입은 웃고 있었지만 속이 참 쓰렸다. 아 나의 비자!


2. 친절해서 거꾸로 탔다.

30키로가 넘는 이민가방과 캐리어, 그리고 등에 맨 가방까지 이고지고. 이 작은 몸뚱이로 한국을 떠난지 3일째 되는 날, AARHUS, 나의 공간에 도착했다. 그렇찮아도 길치인데 어마무시한 짐에, 노 와이파이, 그러니 내리기만 하면 거꾸로 가고 길을 잃기 일쑤. 

기차역에서 역시나 또 거꾸로 짐을 끌고 가는 내게 키가 크고 잘생긴 아저씨가 다가와 버스 정류장을 안내해 주셨다. 참 친절했는데, 정말 친절했는데, 그 버스 반대방향으로 가더라. 

버스기사님 왈, 종점이 멀지 않으니 이 큰 짐을 들고 갈아타지 말고 종점에서 다시 출발할거니 20분만 기다려라. 하셨다. 그럼 나 이 버스에서 앉아서 기다려도 되냐 했더니 자신은 지금 점심을 먹고 올테니 내 버스를 잘 지켜줘. 하고 쿨 하게 떠났다. 그후 정확히 20분 뒤, 내가 주인인 버스에 기사님은 손님처럼 나타나셨다.


3. 인터넷이 없다. 

요 이틀새, 손과 발이 묶인 기분이다. 학교에서 하라는 방법대로 케이블을 샀는데 벽에 있는 구멍이랑 안맞다. 구멍이 작아 끼워넣으려해도 안된다. 옆방, 앞방 모두 락더 도어를 하며 헬프미를 외쳤건만. 방안에서는 아무도 응답이 없다. 다들 학교에 갔나했다. 그런데 1층 창문틈 사이로 사람이 보인다. (요놈의 새끼 딱걸렸어. 왜 대답을 안해. 내가 잡아먹을것도 아닌데, 정말 그 당시 나의 리얼 딕션) 천우연 방법이다. 에라 모르겠다. 그 친구 창문을 두드려 도움을 요청했다. 눈이 마주쳤으니 이 친구도 빼박이다.

자기 방에 있는 공구통을 들고 내 방까지 와주었는데 (결국 해결하지 못했다) 이렇게 착하고 순한 친구가 왜 대답을 안했을까. 유럽의 젊은 학생들이 자기만의 세계에 갖혀 폐쇄적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이야길 들은적이 있는데 그런 이유라면, 아픈 청춘들이 안쓰럽다. 

자신의 와이파이를 잠시라도 쓰라며 비번을 알려준 이 친구 이름은 토르다.


4. 덴마크어를 모른다.

사람과의 대화는 영어로 해서 크게 문제가 없지만 기계와 종이에 써진 정보들은 이해하기 어렵다. 영어 안내가 없어 방금 세탁기를 돌렸는데 빨래를 넣지 않고 돌려 버렸다.

물과 세제만 휑휑하고 돌아간다. 으악. 히어로는 늘 어려울때 나타나지. 토르가 나타났다. 안전하게 세탁기를 돌리고 마트에 가려는데 가방안에 넣어둔 지갑이 온데간데 없다. 빨래통에 같이 넣고 돌린듯 하다. 물과 세제와 옷과 지갑과 돈과 카드가 휑휑하고 씐나게 돌아가고 있겠지. 멈추고 싶지만 방법을 모르겠다. 

도착해 이틀 이집에서 자면서 이런 생각이 들더라. 한국과 비교했을때 터무니 없이 비싸고 불편하며 안락하지 않구나. 그래서 은평집이 그립다. 나누고 버린 나의 소중했던 애착 인테리어 소품, 나보다 나를 더 잘아는 동네 친구들, 보고 싶고 그립다.



조금씩 갖추어 나가야 하는데 물건도 관계도 자꾸 마음이 급해진다. 묘한 요 고독과 분주의 감정들이 마구섞여 오늘 아침 슬픔의 덩어리로 내 머릿속에 훅하고 들어왔다. 그래서, 오늘 아침엔 아주 잠깐 울었다. 

더 눈물이 나기 전, 이케아에 빨리 가야겠다.

이전 04화 (4) 떠난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