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와의 첫 미팅
첫 과제물을 앞두고 교수님과 개인면담이 있어 학교에 왔다. 15분 단위로 쪼개진 이 짧은 시간에 무슨말을 임팩트 있게 할수 있으련지. 괜시리 심장이 쫄깃거려 대기할 수 있는 공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수님 방 입구 돌 계단에 앉아 찬 공기 크게 마시며 내차례를 기다렸다. Sources and Methods in heritage study 라는 코스인데 주제와 방식 모두 내가 직접 선택 할 수 있어 한편으로 이 미팅이 설레기도 했다. 내가 어떤것에 관심이 있는지를 교수에게 표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으니까.
정말이지 15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방금 무슨일이 일어난 거지?
집에 돌아와 (동의후) 교수님과 나눈 대화 녹음을 다시 들으며 (나의 서툰 영어보다) 잠깐 생각에 잠겼다. 왜 마음이 언짢을까 들여다 보았더니 지나치게 교수님의 말에 허용적인 내 자세가 좀 별로였던것 같다. 호기심 박사 천우연은 왜 진짜 궁금했던 질문은 꺼내지도 못하고 단편적 질문만 하다 왔을까. 그래서 꼭 단편적인 답변만을 얻어온건 아니지만 깊고 얕음의 대화와 조언의 정도를 가늠할 수 있는 짠밥이 있다보니 아쉬움이 남는건 어쩔 수 없었다.
'더 논리적으로 말하는 연습을 해야지' 하며 공부나 해볼까 했다만 집 정리부터 해야했다. 비자니 학생증이니 입학하자마자 급한 서류들을 정리하다 보니 삶 자리가 엉망이었다. 이불도, 책상도, 의자도, 낡은 이것들을 어떻게 해야할까. 필요한 몇가지들을 사고 이것저것 붙이고 오리고 하다보니 조금씩 방의 모습들도 갖추어졌다. 이렇게 하나씩 하나씩 천천히 해 나가야지. 오늘 이시간, 교수와의 미팅을 잘 기억해 두었다가 1년뒤 나는 얼마나 성장했을지 꼭 비교해 보자꾸나.
오후에는 이란에서 온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친구의 연구실을 구경하러 갔다. 온통 어려운 기계들뿐이었지만 열심히 연구하는 진지한 삶을 엿보기에는 충분했다. 늦은 점심을 같이 먹고 도서관에 가는 길, 이 도시 구석구석, 대부분의 건물이 죄다 대학 건물임을 확인하며 또 한번 놀랐다. 치열하게 논의하며 연구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창문 넘어 한건물 지나 계속 이어졌다. 학생증만 있으면 어느 건물이든 들어갈 수 있다는 호기로움 때문일까, 낯설었던 마음들이 조금씩 걷히고 이 도시가 나를 힘껏 환영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한국에서 대학원을 진학했더라면 언어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겠지 싶다. 더 깊이 있게 질문하고 더 많은 대화를 교수님과 했겠지. 하지만 분명 나는 일과 병행하며 야간 대학원을 다녔을테고 이렇게 낯선 눈으로 세상을 바라 보지는 못했을 것이다.
15분이라는 짧은 미팅속에서 참 많은것을 생각하게 했던, 긴, 긴, 하루였다.
돌아오는 길, 먹거리를 사서 냉장고도 가득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