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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우연 입니다 Oct 30. 2022

(9) 힘들땐 잘먹고 잘쉬고 잘 봐야지

요리와 자연과 현대미술

눈을 뜨니 12시. 9시 수업이 끝날 시간에 일어나다니! 이 나이가 되어서도 이런 어처구니 없는 농땡이를 칠수 있구나. 스스로 너무 한거 아니냐며 질책하다 괜시리 놀멍 쉬멍 하는거 아니냐는 합리화로 점심을 열었다. 맛있게 차려 먹고 숲이며 바다며, 전시장이며 옴팡지게 놀아 버렸다.


나는 맛있는것이 좋다. 한국에서 회사 다닐때에는 아침은 걸렀고 점심과 저녁엔(거의 매일 야근) 대부분 밖에 먹었기 떄문에 최대한 맛좋고 몸에 좋은 음식을 선택해서 먹으려 했다. 일터가 핫플 북촌에 있어서 먹거리 종류 선택의 폭이 넓었고 그덕에 식대로 디저트로 나가는 돈도 꽤 많았다. 주말에는 최대한 집에서 요리하는것을 즐겼다. 무엇보다 동네친구들과 나누어 먹는것이 좋았다. 한달치 먹는 식대값은 알수 있었지만 어떤 음식을 주로 먹고 조미료는 어느정도 먹는지는 내 몸을 대체 헤아릴수 없었다. 그런데 이곳에 와서는 대부분 집에서 혼자 해 먹다보니 쌀과 야채는 어느 정도를 소비하고 조미료는 어느 정도 먹는지 명확하게 계산이 된다. (생각보다 많이 먹구나 나) 마음이 헛헛해 질때에는 더 잘챙겨 먹어야 한다는 엄마의 말 때문에, 이곳에 와서 서럽고 외로울때 마다 나는 너무 잘 챙겨 먹었다. 그러다보니 이제는 뚝딱뚝딱 별 시간 별 노력없이도 금방금방 음식도 잘 만들어 낸다. 함께 나눌 친구가 없다는게 아직은 좀 섭섭하지만, 금방 찾겠지 뭐. 혼자먹어도 맛있으니까. 

주로 한식을 해 먹는다. 한국인은 밥심이지!

음식만큼 배를 부르게 해주는게 또 하나 있다. 자연.

다섯개의 학교를 두고 어디를 갈지 선택할때  "자연"을 곁에 두는것이 나에겐 너무나 중요했다. 내가 살고 있는 Aarhus는 지천이 바다고 호수고 숲이다. 숲속을 지나야 학교에 도착할 수 있는 이 동화같은 아침이, 수업이 끝나면 꼬불꼬불 숲을 지나 만날 수 있는 바다의 광경이, 저녁먹고 자전거를 타고 나가면 호수와 노을이, 이 모든것들이 외로운 마음을 채운다. 

오늘 하루 농땡이를 깠지만 공부보다 더 많은것들을 배웠으면 된거다.

Aarhus는 바다와 숲과 호수가 다 하고 있다.

음식과 자연만큼 나를 충족시켜주는 내 삶에 가장 중요한 것이 하나 더있다. 예술.

영어 원서 속에서 좌절하고 있는 나에게 이런 말없는 예술 실험들은 같은 세계를 다른 방식으로 읽히게 한다. 같은 한국말을 해도 불통이 일쑤였던 시절, 그때도 나는 늘 전시장을 찾았었다. 분명, 예술은 그만의 언어로 나긋나긋 세상을 읽어주며 심각해진 나를 구렁텅이에서 구원해 주는 존재임이 틀림없다. 그래서 고맙다. 기숙사에서 자전거로 20분만 나가면 지천에 깔린게 전시장이다. 오늘은 아로스 현대미술관 연간 회원권을 끊었다. 이걸로 집 드나들듯 오며 가며 덴마크와 나와 도시 이야기, 변화와 성장, 때로는 더딤의 시간까지 찬찬히 일년을 지켜 볼 셈이다. 

이렇게 알찬 농땡이가 없다.
주어진 틀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더 많은것들이 보이고 만지고 살피다보면 곧 내것이 된다. 우리는 이런것들을 더 자주 했어야 했다. 아니 지금이라도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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