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불황이라던데 정말 가관이다. 정말 씨불황이다.
한 달 전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XX엔지니어링이라는 회사에서 면접을 봤다.
회사는 토목 구조 분야 설계 인력을 채용 중이었고, 나는 그 공고를 보고 지원했다. 지원자는 꽤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회사 연혁을 보니 설립된 지 대략 5년 정도 된 회사였다.
면접장에 들어가자마자 바로 알 수 있었다.
이 회사는 본인들이 무엇을 뽑고 싶은지조차 모른 채 채용을 진행하고 있었다는 걸.
사실 채용공고 자체가 굉장히 애매모호했다.
‘토목설계 인력 채용’이라고는 되어 있었지만, 정확히 토목의 어떤 분야를 채용하려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지원했던 이유는 분명했다.
첫째, 공고에 적힌 필수 프로그램들이 내가 실제로 사용해 온 프로그램들이었기 때문이다. 보통 해당 프로그램들은 구조물 계산을 전문으로 하는 인력들이 사용하는 툴이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아, 구조물 계산 쪽 인력을 뽑는 건가 보다’ 라고 생각했다.
다만 이상한 점도 있었다. 계산 직무를 뽑는 공고임에도 불구하고, 계산과는 거의 관계없는 내용들이 공고에 섞여 있었다. 계산 업무에서는 접할 일이 거의 없는 내용들이었다. 그때도 “좀 애매하네”라는 생각은 했지만, 면접에서 설명을 들으면 되겠지 싶었다.
그리고 면접에 들어가서 알게 됐다.
이 회사는 배관 + 건축을 주력으로 하는 회사였고, 이제 막 토목이라는 사업 분야를 늘려보려는 단계라는 것을.
면접 중, 질문을 주고받다가 내가 먼저 물었다.
“정확히 토목의 어떤 분야에 대한 채용을 하시는 건가요?, 채용공고만 봐서는 구체적이지 않아서요.”
면접관의 대답은 이랬다.
“저희가 토목 분야를 잘 모르다 보니, 말씀하신 것처럼 두루뭉실하게 적었어요.
토목이 건축이랑 다르게 분야가 여러 파트로 나뉘어 있더라고요.
그래서 구직자분들 내용을 보고, 적합한 분야를 정해서 채용하려고 합니다.”
순간 이해가 되지 않아 다시 물었다.
“그럼 지금 질문하신 내용들에 대한 역량을 전부 갖춘 인력을 찾으시는 건가요?”
“회사가 아직 초기 단계다 보니, 소수 정예로 운영하고 싶거든요.
그래서 최대한 여러 가지를 다 할 수 있는 분을 뽑고 싶습니다.”
아마 이 내용을 채용공고에 솔직하게 적었다면, 지원자는 절반도 안 됐을 것이다.
토목 분야가 여러 갈래로 나뉜 이유는 단순하다.
하나의 분야만 제대로 익히는 것도 벅차기 때문이다. 그래서 각 분야별로 엔지니어를 양성하는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이 회사는 그 기본적인 구조조차 모른 상태로 채용공고를 올려버린 것이다.
정말로, 그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날 면접관은 세 명이었다.
대표, 관리부 팀장, 그리고 건축설계팀장.
건축설계와 토목설계는 완전히 다른 분야다.
물론 일부 교집합은 있지만, 기본적인 사고 방식과 업무 영역은 명확히 다르다.
그런데 그날 면접에서는 건축 담당자가 토목 구직자를 평가하는 구조가 만들어져 있었다.
차라리 이런 상황을 채용공고에 명시했다면, 괜히 헛걸음하는 사람들은 절반은 줄었을 것이다.
하지만 회사는 그러지 않았다.
이유는 명확하다.
최대한 많은 지원자들로부터 토목에 대한 정보를 얻고 싶었고, 동시에 여러 분야를 한 번에 다룰 수 있는 ‘만능 인력’을 찾고 싶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회사는 채용공고를 한 번에 3개 정도 올리고, 공고가 끝나면 다시 올리는 일을 여러 차례 반복했다.
내 기억으로는 최초 공고 당시 지원자가 약 80명 정도였는데, 내가 면접을 본 날 지원자는 고작 3명이었다.
존재하지 않는 분야를 새로 만들고 싶다면, 정상적인 순서는 이렇다.
해당 분야의 팀장급 인력을 먼저 채용하고, 그 팀장을 면접관으로 세워야 한다.
하지만 이 회사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대신 토목팀을 건축팀 하위 조직으로 두고 운영할 생각이라고 했다.
솔직히 말해, 터무니없는 발상이다.
팀장은 뽑기 싫고, 기존에 함께 일해 온 건축팀장에게 토목 인력을 평가시키겠다는 발상.
이 구조에서 제대로 된 평가가 이루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요즘 구직 시장이 불황이라는 이야기는 정말 지겹도록 들린다.
구직자인 나 역시 그 현실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채용공고를 보다 보면 욕이 절로 나온다.
‘이 연봉을 주면서 이런 업무량을 요구한다고?’
회사들은 구직난을 명분 삼아 최대한 연봉을 후려치고, 최대한 많은 일을 시키려 한다.
반대로 구직자들은
‘이 조건에 이 연봉이면 안 가고 버티는 게 낫겠다’라는 생각으로 서로를 외면한다.
나는 이 상황이 구인난과 구직난이 동시에 겹쳐진 기이한 상태라고 느낀다.
그리고 면접장에 가면 꼭 등장하는 장면이 있다.
회사 자랑.
왜 그렇게 본인들 회사가 대단한지, 비전이 얼마나 큰지, 미래가 얼마나 밝은지.
정작 지원자가 하게 될 직무의 구체적인 내용이나 보상에 대한 이야기는 뒷전이다.
솔직히 말해, 회사가 얼마나 잘났는지는 관심 없다.
중요한 건 단 세 가지다.
내가 어떤 일을 하게 되는지
복지는 어떤지
연봉은 얼마인지
한참 회사 자랑을 듣다가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야근을 하게 되면 야근 수당은 지급되나요?”
대표의 대답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야근 수당보다는 회사의 비전과 미래,
그리고 본인의 역량을 키우는 데 관심 있는 분을 원합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
비전으로 월세를 내고, 미래로 밥을 사 먹을 수 있나.
이번 면접을 통해 확실히 느꼈다.
채용은 회사의 수준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장면이라는 것을.
무엇을 뽑고 싶은지도 모른 채 올린 공고,
전문성 없는 평가 구조,
그리고 보상 대신 비전을 들이미는 태도.
이 모든 것이 합쳐지면, 결국 남는 건 시간 낭비와 허탈감뿐이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단순하다.
비난을 하기 위해서도, 특정 회사를 조롱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다만, 누군가는 이 글을 읽고
“아, 나만 이런 경험을 한 게 아니었구나”
라고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언젠가는
지원자와 회사가 서로를 존중하는 면접이
당연한 풍경이 되는 날이 오기를, 조용히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