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3개월 차, 전회사의 X-friend moment

x퇴사 3개월 차, 전 직장의 음주 연락 사건

by 김땡땡

Next Chapter : 인간쓰레기 Type

X-(boy or girl) friend moment

→ 있을 때, 잘해. 나가고 나서 괜히 쓸잘데기 없는 연락하지 마


“술 마신 X-friend에게서 오는 전화는 항상 늦다.”


1. 자존심을 굽히고 싶지는 않으나, 은근히 떠보는 취중 연락


이번 시리즈 연재에서 작성했던 권상무에게서 전화가 왔다. 마찬가지로 연재에 토픽으로 작성되었던 이 차장과 함께 술을 마시는 중이었다고 한다. 퇴사한 후 3개월이 지났지만, 내가 퇴사한 자리의 공석이 채워지지 않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나 또한 채용공고를 수시로 확인하는 구직자 입장이기에, 전 직장의 채용공고를 우연히 보게 된다. 그 채용공고를 통해서 '아직 뽑지 못했구나'를 어느 정도는 짐작하고 있었다.


그와의 통화내용은 다음과 같다.


권상무 : 김 과장, 이 차장이랑 같이 술 마시다가 생각나서 전화했어.

나 : 예, 상무님 잘 지내시죠? 별일 없으시죠?

권상무 : 똑같지 뭐, 김 과장은 뭐 하고 지내? (다른 회사 취업했어?)

나 : 생각보다 시장이 불황이네요. 쉽지 않네요. 하하하

권상무 : 김 과장이 자꾸 이직을 하니까, 이력서에 경력이 문제가 되니까 그렇지. 아직도 김 과장 자리 비어있어. 채용공고 지원해. 퇴사하고 연락 한 번이 없어.

나 : 이 차장님께는 따로 연락 한번 드렸는데, 하하하. 조만간 제가 먼저 연락하겠습니다.

권상무 : 그래, 어떻게 내가 기다려? (김 과장 연락하는 거 내가 기다려? 언제 연락할 건데?)

나 : 먼저 연락드려야죠. 연락드리겠습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절대 권상무는 누군가에게 먼저 연락할 성격이 되지 못한다. 곰곰이 생각해 봤다. 내가 전 직장은 다닌 기간은 대략 1년 3개월. 그 회사의 총인원은 평균 15명. 그리고 내가 재직하는 기간 동안에 퇴사한 총인원은 7명이다. 즉 대략 전체 인원의 50%가 재직하는 기간 동안에 퇴사하고 재입사자를 받은 것이다.

그렇다면 권상무가 퇴사한 그들에게도 연락을 따로 했을까? 아마도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는 게 맞다.

그들이 나간다고 해서, 권상무의 일이 늘어나거나 회사의 업무에 차질이 올 정도의 퇴사자는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나간다고 해서 회사의 업무에 차질이 생기지는 않는다. 다만 나의 공석을 채우기 위해서는 권상무와 이 차장이 오리가 수면 위에서 헤엄치듯이 미친 듯이 발재간을 부려야 한다. 재직할 당시에 권상무 업무의 99%를 내가 처리했다. 즉, 권상무는 내가 재직하는 기간 동안에는 거의 놀면서 급여를 받은 것이고, 이 차장은 경우는 그가 하던 업무를 그대로 내가 인계받고, 그는 다른 업무로 넘어가게 되었다. 문제는 인계받은 업무가 굉장히 작업량이 많은 업무라는 점이다.


또한 열이 뻗치는 지점은 바로 이것이다.

'권상무 왈 : 김 과장이 자꾸 이직을 하니까, 이력서에 경력이 문제가 되니까'

정말 나의 프로이직러의 경력이 문제가 되었다면, 전 직장에서도 나를 채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나에게 다시 채용공고에 지원하라는 얘기 또한 하지 않았을 것이다. 단순히 안부 정도만 확인했을 것이다.

괜히 야밤에 전화를 걸어서 사람을 박박 긁어놓고, 영양가 없는 통화를 하느라 성질만 치솟았다.


나의 공석을 채우는 일은 사실 몹시 간단한 일이다. 나와 얼추 비슷한 경력을 지닌 사람을 채용하면 해결될 일이다. 문제는 전 회사의 운영 방침에 있다. 그 회사는 사람들을 교육시키거나 실력을 향상하는 것에 투입되는 시간을 전혀 쓰지 않으려고 했고, 실제로 재직 기간 동안에도 무의미한 교육만을 진행하였다.

(주관적인 무의미가 아닌, 실제로 실무에 쓰지 않을 내용들만 골라서 교육을 진행했던 기억이 있다.)

정말 우연히도 회사에서 나에게 교육을 따로 하지 않아도 되는 실무 경력을 지닌 상태로 입사를 했다. 그렇기에 바로 회사에서 원하는 실무에 투입될 수 있는 상태였다.

아마도 회사는 나와 같은 실무 경력을 지닌 사람을 찾으려고 하고 있을 것이다.

어느 회사를 이직하든, 그 회사의 포맷에 맞게끔 다시 알고 있는 내용을 리폼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한 과정 없이 실무를 진행할 사람을 찾다 보니 여전히 공석으로 비어 있는 게 아닐까라고 추측해 본다.

대강 경력 비슷하고, 같은 계열에서 일했던 사람을 채용해서 한두 달 정도 습득 시간을 주면 충분히 이미 채용하고도 남았을 시간이다. 정말 퇴사한 이후에도 지긋지긋한 면모를 보여준다.


2. 감동은 119에서 소생 실패


취중연락이었다고 해도, 권 상무가 무슨 얘기를 했든 고마운 마음이 있었다.

전 회사를 퇴사할 당시에 송별회가 없었다.


회사 사람들과 얼굴을 붉히고 나온 것도 아니고 단지 사장이 갑자기 회사를 이사하는 바람에 통근 불가로 퇴사를 했다. (시리즈 연재글 _ 마지막 잎새 아니, 씨잎새 최대표)


굳이 송별회를 해줬으면 하는 마음은 없지만, 최소한 퇴사하는 마당에 그렇게나 직원들 간에 화합이 중요하다고 외쳤던 회사가 송별회를 안 해준 것은 상당히 별로였다. 만약 회식이라던가 단체 모임을 자율적으로 하는 회사였다면 송별회를 하든 말든 별 관심도 없었을 것이다. 하나 그 회사는 늘 강조하던 것이 그놈의 화합과 인간적인 친밀도였기 때문이다. 본인들의 필요에 따라서만 생기는 인간적인 친밀도라면 그게 과연 정말 화합이 맞나 라는 의구심이 든다.


그러한 와중에 이유와 의도가 어찌 되었건, 먼저 연락을 해준 권상무가 상당히 고마웠다.

그러나, 그러한 고마움과 감동은 여운을 느낄 틈도 없이 바스러졌다.

권상무에게서 연락이 온 다음날 아침 7시 30분에 핸드폰에서 전화가 울렸다. 권상무에게 온 전화였다.

출근하면서 전화한 건가 라는 생각을 했다.


나 : 상무님, 안녕하세요? 어제 잘 들어가셨어요?

권상무 폰 : 119인데요, 가장 최근 통화하신 분이 김땡땡씨더라고요.

나 : 혹시 권 XX 씨 사고 난 건가요? 무슨 일 있는 건가요?

권상무 폰 : 취하셔서, 주소지 확인하려고 전화한 거예요.

나 :...

권상무 폰 : 예, 알겠습니다. (구급대원)


놀랍게도 권상무는 만취, 취객, 집이 아닌 어딘가에서 노상 취침, 그리고 누군가의 신고로 인한 119 출동까지 풀세트로 완성했다.


이미 떠난 회사 동료이니, 진상짓을 하든 말든 내가 신경 쓸 일이 아니다.

그 순간 스쳐 지나간 생각이 다음과 같다.

'어? 그럼 이 아저씨(권상무) 119에 신고가 접수될 정도면 아예 인사불성이라는 얘기네?

그럼 어제 했던 얘기도 기억 못 하겠네?'


솔직히 말하면, 그가 한 말의 의미를 따지는 순간부터 감동은 유지될 수 없었다.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었고, 다음 날 아침 119가 대신 전화를 해 줄 정도의 상태였다면,
그 말이 과연 그의 의식에서 나온 건지, 아니면 술이 사람을 통째로 삼켜버린 뒤 남긴 잔여물 같은 건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사람이 기억하지 못할 만큼 취한 상태에서 한 말은, 의지가 아니라 반사에 가깝다.
선의라기보다는 습관이고, 선택이라기보다는 자동 반응이다. 그 순간에는 따뜻해 보일 수 있어도,
다음 날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면 그건 말이지 마음은 아니다.

그래서 나는 그 전화에 의미를 부여할 수 없었다. 그가 기억하지 못할 말을, 내가 기억하면서 감동해야 할 이유는 없으니까.
감동은 상대의 의식 위에 놓여야 하는데, 그날 밤의 그는 이미 자기의식 바깥에 있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그 전화는 마음이 아니라 상태에서 나온 거였고, 사람이 아니라 술이 건 전화였다는 걸.

그래서 감동은, 느낄 새도 없이 사라졌다.


3. 그래서 더 이상 돌아갈 이유가 없었다.

이 일로 새삼 깨달은 게 있다.
사람이 떠난 자리를 채우지 못하는 조직은, 대체로 그 자리가 왜 비었는지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날 밤의 전화는 미련이 아니었고, 다음 날 아침의 119는 책임도 아니었다.
그 사이 어디에도 ‘반성’이나 ‘변화’는 없었다.
그저 사람이 빠져나간 자리에 생긴 공백을 다시 사람으로 막고 싶다는 욕망만 남아 있었을 뿐이다.

나는 이미 그 회사가 어떤 방식으로 운영되는지 알고 있다. 사람을 키우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사람에게만 일을 몰아주고, 떠나면 아쉬워하면서도 바꾸지는 않는 구조.

그 구조 안으로 다시 들어간다는 건, X-friend의 “나 달라졌어”를 증빙 서류 없이 믿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래서 나는 돌아가지 않는다. 분해서도 아니고, 자존심 때문도 아니다.
그저 이미 결론이 난 관계이기 때문이다.



cf) 이 글을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오랜만에 브런치 스토리에 글을 남깁니다.

2025년 한 해도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새해에는 좀 더 편안한 날들이 많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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