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천사 이 차장 - 남의 지갑 편

어두운 불빛 아래 착취하나, 와인 잔에 담긴 시간 하나

by 김땡땡

어두운 불빛 아래 착취 하나, 와인 잔에 담긴 시간 하나 (출처: 쿨 - 아로하)

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늘은 기부천사 이 차장을 쥐어뜯으러 왔어요.


다섯 번째 인간쓰레기, 기부천사 이 차장


본 시리즈 연재물의 중심이 되는 회사에 이 차장이 근무를 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이 차장과 저는 다른 회사에서 함께 일을 했었던 과거 직장 동료였어요. 시간 흐르고, 제가 취업을 하려는 시기에 맞춰서 이 차장에게 본인이 다니는 회사에 와보는 것은 어떻겠느냐라는 제의를 받았어요. 그리고서 절차상의 과정으로 면접을 보고서 이 차장이 다니던 그 회사에 들어가게 되었어요.


"나는 이 차장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나니 나 외에 신이 없느니라"

(출처: 성경 - 이사야 45:5)


입사를 하고 나서 알 게 된 중요한 사실이 있었어요. 이 차장이 아주 운이 좋게 대우를 받을 수 있는 포지션으로 들어가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이전 글에서 적었던 대로, 그 회사는 토목 설계를 하는 회사였어요. 그리고 그 회사에는 구조 분야 업무를 다룰 수 있는 사람이 없었어요. 구조 분야 업무 중에 일부를 다룰 수 있는 사람이 이 차장이었어요. 그 덕분에 제가 알기로는 이 차장은 이전 직장에 비해서 상당히 만족할만한 연봉을 받고서 들어가게 되었다고 본인에게서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저 또한 이 차장에게 구조 분야의 업무를 일부 배웠던 적이 있었어요. 이전에 같은 회사에서 일할 당시에 말이에요. 이 차장에 배운 업무는 도면을 작성하는 부분이었어요. 여기서 몇 가지 문제가 있었어요. 아마도 그 회사에 구조 분야의 경력직이 었었다면 이 차장은 회사에서의 입지가 그렇게 좋지 못했을 거라고 판단해요. 왜냐하면 이 차장에게는 심각한 문제가 있었거든요. 첫 번째 문제는 비전공자였다는 점이에요. 비전공자라고 해도 충분히 경력을 쌓으면서 전공자만큼의 포퍼먼스를 낼 수는 있어요. 다만 문제는 학부 기간 4년 동안에 배우는 그 공백을 채우려는 노력이 있었다면 괜찮지만, 그렇지 않고 단순히 일로 일을 습득한 경우에는 아무리 많은 경력이 쌓이게 된다고 해도 '왜'라는 질문에 답을 할 수 없는 형태로 일을 하게 되어 있어요. 본인조차도 원론적인 이론적인 근거를 알지 못한 상태로 업무를 하게 되기 때문이에요. 이 차장이 전형적인 '왜'을 알지 못하는 왜놈이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회사에는 이 차장이 하는 분야의 인력이 없었기 때문에 이 차장의 말이 무조건 적으로 옳다는 평가가 가득했어요.


그렇게 일을 하던 와중에 정말 관자놀이를 세게 두드리는 이 차장의 발언을 듣게 되었어요.

"나는 신이야,

나는 이 분야 도면 업무에 대해서는 모르는 게 없어."

그렇게 모르는 게 없으면, 나한테 그만 좀 물어볼 것이지, 업무 협의에 관한 전화를 하다 보면 종종 저에게 전화를 돌립니다. "김 과장, 내가 설명하기에는 어렵다, 전화 대신 받아서 설명해 줘"

이것은 이 차장뿐만이 아니었어요. 산소도둑 김 부장 또한 "김 과장, 김 과장 자리로 전화가면 받아서 설명해 줘"

애초에 차장 직급정도 달았으면 공부를 해서, 협의를 볼 생각을 하는 게 맞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쉬운 걸 신처럼 잘하면 뭐 하겠어요, 어려운 걸 해결하는 능력이 있어야 최소한 추앙이라고 해줄 텐데 말이에요. 본인을 추켜세우는 건 상관없지만, 그만한 지식과 업무 숙련도를 가지고서 얘기해야 하는데 말이에요. 그렇지 못하다는 점이 정말 크나 큰 문제였어요.


그러한 신이 존재하는 세상에 인류가 얼마나 무지해질 수 있는지, 그 광경을 보았어요. 즉, 이 차장의 관리를 받는 대리 이하 직급들은 정말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것들이 없었어요. 제대로 배운 게 없다 보니 그저 따라 하기, 복사 붙여 넣기 식으로 일하기, 다른 사람이 만들어둔 엑셀 시트에 숫자만 바꿔서 작업하기 등등 정말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넘쳐났어요.


결국에는 아낌없이 김 과장의 시간을 주는 나무를 심었어요. 직원들이 그간 잘못 알고 있던 내용들을 추려서 설명해줘야 했고, 그에 대한 근거 자료를 만들어서 배포해줘야 했어요. 그래야 대리 및 그 이하 직급들도 성장을 할 수 있을 테니 말이에요. 시간이 지나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 차장은 신이 맞기는 했어요. 예,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그 신이었어요. 생각보다 나보다 경력이 많음에도 무지한 선임들이 많다는 건 정말 억울해요. 내 시간을 갈아서 그들의 일을 처리해야 하는 일이 잦게 발생하게 됨에도 불구하고 돈은 선임이 더 받잖아요?

분통이 터집니다. 이 글을 쓰면서 드는 생각이지만, 직급을 다 없애고 능력대로 처리하는 업무대로 급여를 지불하는 세상이 온다면 생각보다 많은 경력자들이 도태될지도 몰라요. 경력직분들은 공감하실 수도 있겠지만, 생각보다 무능한 선임들이 너무 판을 치는 세상이에요. 물론 저 또한 도태될지도 몰라요.


업무량이 너무 많으면, 주말에 잠깐 같이 나와서 처리하면 되잖아?


이 놈 보게? 업무량이 넘쳐나던 평소와 같은 날에, 이 차장에게 얘기를 했던 적이 있어요. "이거 산소도둑 김부장 놈이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업무량이 너무 많아요. 제시간 안에 처리하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요?"

"그래? 그러면 주말에 잠깐 나와서 같이 처리하면 되지 않을까?"


첫째, 제가 다니던 회사는 '야근비 없음, 주말 출근에 대산 수당 없음'이었어요. 백번 양보해서 평일에는 야근을 꽤 자주 하는 편이었어요. 뭐 일이 많으면 야근비는 없지만 그래도 쥐뿔 없는 책임감 하나로 처리할 수 있지 라는 생각이었어요. 허나 주말에 나오자고? 돈도 안 주는데 공짜로 노동을 제공해 달라고? 이게 뭔 개소리야? 이거야 말로 개뼈다귀 물어뜯는 소리잖아?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나의 황금 같은 주말시간의 기부를 왜 이 차장 네가 왈가왈부하는 건가요? 역시나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이 글을 읽으시는 독자분들, 생각보다 이런 개뼈다귀를 가득 담아둔 회사들이 너무나도 많아요. 봉사하러 일하는 거 아니잖아요? 돈을 주면서 주말에 처리해 달라는 거면 이해를 하겠어요. 돈도 안 주면서 주말에 나와달라니? 이건 도저히 백번 양보해도 양보할 수가 없더라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숨을 백번 내쉬면서 결국은 주말 출근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고작 한번 주말 출근하고서 생색내는 거라고 생각하실까 봐, 오해를 바로 잡자면 업무가 갑자기 늘어나는 시즌에는 주말 출근이 생각보다 빈번했거든요)


갑자기 이 얘기를 하다 보니, 최근에 면접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잡코리아에 제 이력서를 공개해 둔 상태였어요. 한 회사에서 제 이력서를 열람했고, 그리고서 면접 제의를 받고서 가봤어요. 가서 야근 수당에 대한 질문을 했어요. "시간 외 수당 그리고 주말 출근에 대한 수당이 지급되나요"라고 질문을 했고, 그 당시 면접관 왈 "야근비에 대한 질문은 이번 채용에서 두 번째 듣네요. 저는 돈도 중요하지만, 돈보다는 업무에 대한 관심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라고 답하더라고요. 아직도 세상이 남의 시간을 기부하라는 기부천사들이 너무 많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끔 만드는 경험이었어요.


모지리야, 모리지야. 내가 이 회사에 왜 왔는지 네가 가장 잘 알잖아?


이 차장 아저씨에게 입사 제의를 받았을 때에, 그 회사 말고도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많았아요. 엄밀히 따지면 보다 많은 연봉과 복지를 택할 수 있는 회사에 대한 옵션이 꽤 있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차장 아저씨의 제안이 나이스 했던 이유는 오직 하나, 통근 거리 때문이었어요. 편도 50분 정도의 거리에, 버스를 타는 시간은 30분 정도였어요. 통근 시간이 길어지면 정말 못 다니겠더라고요. 제가 살고 있는 위치상 서울권 회사로 출퇴근을 하려면 기본 왕복 3시간을 넘겨야 하기 때문에 이 차장 아저씨의 제의가 몹시 감사했어요. 그러던 와중에 회사가 갑작스럽게 이사를 하게 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어요. 회사의 이전으로 저의 출퇴근 왕복 시간이 대략 2시간에서 3시간 30분 정도로 늘어나게 되는 상황을 맞이했어요. 저는 당연히 퇴사를 결정한 상태였어요. 이 차장 아저씨는 제가 왜 그의 제안에 응했는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어요. 오직 거리가 가까워서 다녔다는 그 이유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어요.


회사 이전 소식으로 인해서 이 차장 아저씨와 얘기를 주고받았어요. "차장님 거리가 너무 먼데요, 이 정도 거리면 저는 못 다닐 것 같아요." "김 과장, 이전하는 회사 거리를 못 다닐 정도면 선택할 수 있는 회사가 거의 없을 텐데" "이 정도 거리를 감당하고 다닐 거라면 애초에 굳이 이 회사를 다닐 이유가 없었죠, 더 좋은 회사들 안 가고 온 이유가 거리 때문이잖아요"

어처구니가 없는 건, 이 차장 아저씨 본인 입으로 회사 동료들에게 말을 하고 다녔다는 점이에요. "김 과장은 거리가 멀면 회사 못 다닌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우리 회사 온 거야." 본인이 직접 직원들에게 말할 때는 언제고 회사 이전한다니까 거리 때문에 못 다니면 다닐 회사가 없을 거라니요? 그래서 네가 오라는 제의에 수락한 거잖아요? 정말 까마귀세요? 다 잊으셨어요?

본인의 이익에 맞춰서 생각을 바꿔버리는 그의 이중성에 좌파 우파도 울고 갈 지경이었어요.


나는 관리자라서, 윗분들의 생각도 이제는 이해가 가더라고


이 차장 아저씨가 했던 얘기 중에 기억에 남는 말이에요. "나는 중간관리자라서"

이놈에 중간관리자라는 말은 정말 20번은 넘에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업무능력으로 어깨뽕을 차는 거라면 정말 치켜세워줄 수 있어요. 그런데 고작 중간관리자라는 이유 하나로 어깨뽕을 차다니? 생각보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직급으로 어깨뽕을 가득 채우는 인간 군상들이 많은 걸 보게 됩니다. 물론 아닌 분들도 정말 많아요.

실력이 압도적이어서 어깨뽕을 차는 거라면 정말 받들어 모실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만큼 나도 배울 수 있으면 좋은 거니까요. 고작 직급이 올라서 부릴 수 있는 직원이 늘어남에 대한 어깨뽕은 정말로 절레절레입니다.


직급으로 어깨봉을 차게 되면 겪게 되는 몇 가지 문제가 있어요.

첫째, 자꾸만 업무처리를 시뮬레이션 게임이라고 생각하게 된다는 겁니다. 특정 업무에 사람을 분배한다고 해서 그 사람들이 업무를 확실히 처리해 줄 수 있는지는 지켜봐야 알 수 있는 문제입니다. 계속해서 확인하고, 다다른 방향으로 접근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면 계획을 수정하는 세심함이 필요하죠.


시뮬레이션 게임이라고 생각하고서 사람을 투입시키게 되면, 내가 생각하는 기대치만큼 그 사람이 해야 함이 기준이 되더라고요. 즉, 업무에 투입된 사람이 일 처리가 안된 경우에 그 이유나, 상황 같은 것은 중요하게 바라보지 않게 되는 문제점이 있다는 겁니다.


둘째, 본인은 업무를 하는 사람보다는 시키는 사람이라고 정의하게 된다는 겁니다. 결국 업무를 부하직원에게 지시했다고 하더라도 결국에는 모두의 업무인 셈이거든요. 안되면 본인이 투입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제외해 버립니다. 이게 정말 사람을 미치게 합니다. 책임져야 할 사람이 책임은 모르겠고, 이건 니일이니 처리해라는 탑다운식 업무를 해버리면 책임을 부하직원이 짊어져야 하는 셈이거든요.


그래서 저는 다른 직원과 협업을 할 때에 중간중간 확인을 해가면서 일을 합니다. "저는 여기까지 업무 처리 했어요, 어느 정도 되었나요? 지금 남은 업무 중에서 그럼 제가 이걸 처리하고 있을게요. 잡고 있는 업무가 안될 것 같으면 깊게 생각하지 말고 바로 말해주세요"라고 말이에요. 어깨뽕으로 뿌듯해할 시간에 제발 일을 하란 말이야.



이대로 마무리하기는 허전하니, 시 한 편을 적어볼게요.


<빛을 닮은 어둠의 사무실>


희미한 형광등 아래
책상마다 굳어버린 꿈 하나씩 놓여 있고
책장에는 매뉴얼 대신
‘묻지 말 것’이라는 침묵이 꽂혀 있다.


어떤 이는 스스로 높은 곳에 선다며
구름 위에 깃발을 꽂아두었고
발밑의 진흙은 보지 못한 채
입술로만 벽돌을 쌓아 집을 지었다.


누군가는 ‘알고 있다’ 말하며
실은 비어 있는 사전을 품에 안고 걸었고
그 위를 지나가는 후배들의 귀에는
바람만 스쳤다.


나는 하루에 한 줌씩 시간을 갈아
낡은 톱니 사이에 흘려 넣었고
굳은살 오른 손끝에서는
잔잔히 흰 먼지 같은 슬픔이 피어올랐다.


그러나 어둠 속에서도
빛을 가르치는 별은 있었다.
아무도 보지 못한 틈 사이
서랍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던 작은 진실,
그것이야말로
무너진 지도 위를 다시 그려내는 유일한 손길이었다.


누군가는 직급으로 계단을 오르고
누군가는 노력으로 길을 만든다.
누군가는 이름으로 말을 올리고
누군가는 답을 찾기 위해 밤을 오린다.


나는 안다, 진짜 높이는
의자 높이가 아니라
얼마나 깊이 듣고, 얼마나 넓게 배우며,
얼마나 겸손히 가르칠 수 있는가
그것으로 정해진다는 것을.


그래서 오늘도 다짐한다.


누군가의 어깨를 딛고 오르는 사람이 되지 않겠다고,
다른 이의 시간을 빌려 영광을 채우지 않겠다고,
자신을 증명하는 방법이
타인의 희생이 되지 않도록.


빛을 잃은 사무실 구석 어딘가에서
나는 작은 펜을 꺼내어
이 말을 적는다.


“진짜 높이는
누군가를 밀어내는 곳이 아니라
함께 서 있을 수 있는 자리다.”


여러분 여러분, 오늘도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추운 날씨에 감기 조심하세요. 엄청 쌀쌀하더라고요.

그리고, 여러분의 시간으로 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문득 쓰다 보니, 이 글을 읽는 시간 또한 몹시 귀한 시간일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 글이 귀하다는 것이 아닌, 여러분의 시간이 귀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귀한 시간으로 이 글을 보아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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