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르렁-탁!
차는 순간 한쪽으로 들렸다가 턱 하고 내려앉았다.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
“아이씨…”
낯선 내 목소리에 내가 더 낯설어졌다.
급하게 몰던 차가 인도의 둔턱을 넘은 것이었다.
차를 세우고 내려 자연스럽게 소리가 난 쪽을 향했다.
타이어가 보기 좋게 찢어져있었다.
'어 찢어졌네.'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짧은 한숨을 내쉬고 생각했다.
'머 어쩔 거야~'
그냥 받아들이기로 한다.
보험접수를 하고 기다리는 동안
처음 겪는 이 순간을 즐겨보기로 했다.
찢어진 타이어 틈에 손가락을 넣어보니 쑥-하고 사라졌다.
"오오, 신기하네."
그 감각이 묘하게 즐거워진다.
다행히 차의 다른 부분은 멀쩡했다.
멀쩡한 차와 찢어진 타이어,
그 간극이 이상하게 마음을 건드렸다.
잠시 후 견인차가 도착했다.
기사님은 능숙하게 장비를 움직여 내 차를 들어 올렸다.
뒷 타이어가 찢어진 터라 앞바퀴와 바꿔 끌고 가야 한다고 하셨다.
드르르륵, 드르륵-
볼트 여섯 개가 풀리자 타이어가 쑥 빠졌다.
지켜보던 나는 너무 신기해서 중얼거렸다.
"와... 뭐 이리 간단해?"
기사님의 손놀림은 정확하고 매끄러웠다.
복잡해 보이는 일을 단숨에 처리하는 사람들은
언제 봐도 대단해 보인다.
차를 고정하고 조수석에 올랐다.
덜컹, 덜컹.
작은 방지턱에도 큰 소리를 내며 요동치는 차 안에서
나는 마치 다른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었다.
"더우시죠, 에어컨 틀어드릴게요. 차가 많이 덜컹거려요~"
"아 아니에요 기사님이 더 덥죠"
짧은 대화지만 마음이 오가며 편안해졌다.
"대학생이세요?"
"하하 그랬으면 좋겠네요."
기사님은 대학시절을 떠올리며 말했다.
"대학생 때 참 좋았는데 그땐 왜 좋은지도 몰랐나 몰라요~
뭐 하나 없으면 큰일 나는 줄 알았으니까요."
"맞아요 그땐 겁이 참 많았어요. 지금 돌아보면 다 별일 아닌데."
"저는 다시 그때로 돌아가면 하고 싶은 거 다 할 거예요"
기사님은 웃었지만 눈빛에 아쉬움이 묻어났다.
나는 말했다.
"근데 지금 충분히 좋아 보이세요.
그리고 우리 이렇게 살아남아 잘 살고 있잖아요. 그럼 된 거죠."
대화는 자연스레 삶과 어른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어릴 땐 어른들이 잔소리만 하는 줄 알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덕에 살아남은 것 같아요.
근데 좀 전에 뵙고 온 아버지가 너무 마르셔서... 마음이 안 좋더라고요.
그렇게 크던 분이 이제는 너무 작아지셨어요.”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셨구나.
어르신들은 점점 아기가 되어가는 것 같아요.
작아진 몸으로 웃어주실 때, 그 모습이 참 사랑스럽죠.”
마침 그때, 세 분의 꼬부랑 할머니가 골목을 건너고 있었다.
핑크, 보라, 아이보리 모자를 눌러쓰고
보행기를 하나씩 밀며 나란히 걸어가는 모습은
느리지만 평온했고, 보기만 해도 마음이 놓였다.
"저렇게 다니시는 거 보면 참 좋지 않아요?
모든 어르신들이 저렇게 건강하게
친구들과 다니면서 맛있는 거 드시고
즐겁게 지내셨으면 좋겠어요."
기사님과 나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과 어른의 보살핌 덕에 우리가 여기까지 왔다는 것,
그 은혜 위에서 지금 이렇게 나란히 앉아 있다는 걸
우리는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의 안녕을 마음 깊이 빌었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언제나 당연하지 않은 지금 속에 있었다.
찢어진 타이어와 멀쩡한 차,
단순해 보이지만 쉽지 않은 일,
놓치기 싫었으나 지나고 보니 별일 아니었던 순간,
커다랗던 어른이 작아져버린 모습,
혼자라 믿었으나 언제나 곁에 있던 보살핌들.
잠시 떠오른 것만 해도 이렇다.
아직 발견하지 못한 것들은 더 많을지도 모른다.
찢어진 타이어가 만들어준 뜻밖의 멈춤이
나를 세상에 귀 기울이게 했다.
덕분에 오늘, 이 당연하지 않은 지금을 더 사랑하게 된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