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로 들어가면 돼요? 막지 말고 나와봐. 내가 알아서 들어갈게.”
하얀 얼굴. 짧은 커트머리.
가느다란 다리와 어울리지 않는 거친 말투.
전동휠체어를 능숙하게 모는 그녀는
소아마비를 앓은 지 오래된 60대였다.
검사실에 들어서자마자 숨도 고르지 않고 물었다.
“어떻게 해? 내가 절로 가?”
나는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아이고 잠깐만요, 천천히 하나씩 해요.”
“나 이거 꼭 하고 가야 해.”
“저도 그냥 보내기 싫어요.”
그녀는 그제서야 나를 보고 웃었다.
혹시라도 검사 안 해준다고 할까 봐 불안했던 모양이다.
장비와 휠체어 위치가 잘 맞지 않은 걸 발견하고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휠체어 타고는 힘들 것 같아요.
저 검사용 의자로 옮겨 앉을 수 있겠어요?”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해야지~ 내가 이 휠체어 절로 몰 테니까,
선생님이 안 움직이게 좀 잡아요.
뒤쪽 아래에 막대기 있죠? 그거 내려요.
그러면 손으로 움직일 수 있어요.”
그녀는 전동휠체어를 수동으로 바꾸는 법을 나한테 가르쳐줬다.
“오, 진짜 그러네! 이거 좋은데요~”
나는 웃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낑낑거리며 휠체어에서 검사용 의자로 옮겨 앉은 그녀가 물었다.
"자 이제 내가 어떻게 하면 돼?"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뭘 해요. 이제 제 차례예요.
제가 할 테니까 가만히 있어요~~"
나는 그녀가 앉은 바퀴 달린 의자를 요리조리 밀며 자세를 잡았다.
끙끙거리며 땀을 좀 흘렸지만, 검사는 무사히 끝났다.
"끝! 너무 잘했어요! 장하다!!!"
우리는 친구처럼 마주 보고 웃었다.
그때, 그녀 얼굴이 울컥거렸다.
"어쩌지? 나 너무 고마워... 어떡해 우리 차라도 한잔 하면 안 돼?"
"저도 너무 하고 싶죠. 그런데 밖에 환자들 줄 서있어요.."
옷을 챙겨 입으며 그녀가 말했다.
"나 이 검사 20년 만에 해요."
나는 놀라서 물었다.
"이렇게 잘하면서 그동안 왜 안 왔어요?"
그녀는 잠시 숨을 고르고, 지난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20년 전에 쌍둥이를 낳았거든?
그때 혹시나 해서 이 검사를 받았는데
내 유방에 머가 있다는 거야.
덜컥 겁이 나더라고.
얘들 두고 내가 죽을 수는 없잖아.
그래서 잘 움직이지도 않는 이 몸을 하고
이 병원 뻔질나게 들락날락거렸다?
그러다가 괜찮다는 얘기 듣고 발길을 끊었어.
내가 서질 못하잖아.
나 검사하려면 선생님들이 너무 힘들어하니까
피해주기 싫어서 더는 못 오겠더라고..
근데 작년에 우리 딸이 시집을 갔거든.
애들 다 보내니까 졸업한 거 같이 후련했어.
근데 지들이 시집가니까 잔소리가 더 많아지더라고
나보고 이검사 꼭 꼭 받고 오라고
외국에 살면서도 전화로 그렇게 잔소리를 해대더라고.
그래서 용기 내서 다시 왔어.
근데 몸이 이래서 검사 안 해준다고 할까 봐 걱정했어.
나... 진짜 너무 고마워.... 너무.."
나는 말없이 그녀를 안았다.
"그때 악착같이 버텼구나.. 너무 장해요.
저 검사할 때 하나도 안 힘들었어요.
본인이 이렇게 알아서 다 하시는데 내가 힘들게 머 있어~
마음만 좋죠. 용기 내 와주셔서 제가 더 고마워요~"
우리는 조용히 서로를 쓰다듬었다.
문 앞에서 나는 그녀의 발을 가지런히 휠체어 발판에 올려주며 말했다.
"꼭 또 와요~~"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녀의 씩씩함이
안쓰럽기도, 멋지기도 해서 마음이 울렁거렸다.
인간은 누구나 빈틈을 안고 산다.
그 불완전함이 우리를 서로의 곁으로 이끌곤 한다.
어느 날 나는 누군가의 손을 잡아주었고
또 다른 날 누군가가 내 손을 붙잡아주었다.
그렇게 온기를 주고받으며
우리는 조금 더 단단해지며 살아갈 힘을 얻는게 아닐까.
오늘 그녀의 용기가 내 마음을 가득 채웠다.
나는 군불처럼 은근하게 오래가는 그 따뜻함에 취해 하루종일 그녀를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