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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무늬

에필로그

by NINA

얼마 전, 혼자 호수공원에서 ‘고래런’을 했다.

핸드폰 GPS를 켠 채 달리고 저장을 하면

내 움직임이 지도에 고래 모양으로 남는 달리기다.


거리는 10킬로. 나에게는 짧지 않은 거리다.

출발지에서 멀어질수록 숨이 가빠오

심장은 몸 밖으로 튀어나올 듯 요동쳤다.

발바닥이 딛는 땅마다 진동이 전해지고

땀방울이 흔들리는 발자국 옆으로 떨어졌다.


그 모든 순간은 지도 위뿐만이 아니라

내 몸과 마음에도 새겨졌다.


다른 이들 역시 각자의 그림을 그리고 있었겠지?

저마다 다른 모습, 다른 속도로.


문득 손끝의 지문이 떠올랐다.

태어나면서 지니고 있는 나만의 무늬.

우리 모두는 그 무늬를 품은 채 살아가며

또 다른 선들을 이어간다.


지금 이 순간처럼

발걸음 하나, 심장이 뛰는 박자,

숨결, 손끝에서 흘러나오는 생각까지

모두 연결되어 '나'라는 그림을 완성하는 것이다.


달리는 동안 나는 그동안 그려진 나를 바라봤다.


20대의 나는 두려움이 없었다.

부딪히는 일이 망설여지지 않았고

내가 옳다고 믿는 길 위를 날카로운 선으로 질주했다.

거칠지만 자유로운 선이, 그때의 나를 담고 있었다.


30대의 나는 보이는 것, 평가, 남의 시선에 마음을 쏟았다.

외모, 능력, 그리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까지.

반듯하고 보기 좋은 선을 그리려고 애썼지만

그 선은 쉽게 지워졌다.

남의눈에 맞춘 무늬는 오래가지 않았다.


40대가 된 지금,

나는 부족함조차 내 무늬임을 안다.

사람들과 나눈 웃음, 눈빛,

혼자 마주한 고요한 시간,

실패와 비난을 겪은 시간들.

다 끝난 듯했지만

다시 이어지는 순간들.


굵든 가늘든,

섬세하든 거칠든,

반듯하든 흔들리든,

그 모든 선과 색이 모여

삶을 다채롭게 물들였다.


‘아름답다’는 말에는 ‘나답다’라는 뜻이 담겨 있다.

우리가 그려낸 무늬를 아름답다 말고

무엇이라 부를 수 있을까.


삐뚤어져도, 번져도, 어떤 무늬든 빛난다.

우리는 가장 나다운,

유일한 무늬를 그리는 중일뿐이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비로소 나로 존재하는 기쁨을 만난다.


[내가 만난 마음]은 여기서 마무리합니다.
삶의 무늬처럼, 이 글들이
당신 마음에도 작은 흔적 하나로 머물면 좋겠습니다.

그동안 함께 걸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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