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의 이혼녀로 시작한 삶
나는 마흔 넘긴 싱글 여성이다.
혼자 지낸지는 벌써 16년이 되었다.
스무 살에 상경해 가족과 떨어져 살기 시작했고
스물여섯에 결혼이란 걸 경험했다.
하지만 그 결혼은 이듬해 끝이 났다.
이혼 사유는 단순했다.
그는 언젠가 부터 내게 자주 화를 냈고
헤어져! 이혼해!라는 말을 습관처럼 내뱉었다.
아이를 가지면 좀 나아질까 싶어 물었다.
"우리도 아이를 가져볼까?"
"아니~! 너 닮은 애가 세상에 태어난다고 생각하니 끔찍해."
".....내가 어디가 그렇게 싫은데?"
"니 존재 자체가 싫어."
"..그래."
나는 그 다음날 짐을 싸서 그 집을 나왔다.
원룸을 구해 살기 시작했는데
학생시절, 좁은 방에 익숙했던 탓인지
작은 원룸조차 내겐 넓고 편안했다.
법원에서 그 사람을 다시 만난 날.
그는 나를 붙잡고 울었다.
"정말 이렇게 끝내는 거야?"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미 마음은 단단히 정해져있었다.
그는 아마,
자신이 나에게 어떤 말을 쏟아붓고 있는지 몰랐던 거 같다.
자신이 원하는 만큼의 애정을 주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걸까.
화를 다 받아주면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그 모든걸 이해하고 받아주기엔, 그도 나도 어렸다.
서툴렀던 우리는 결국 함께 가던 길에서 벗어났다.
그때만 해도 '이혼했다'하면 아주 떠들석하던 시기였다.
스물 일곱의 나는, 주변 친구들은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나이에
이미 두 개의 경험치를 가진 부자가 되었다.
아이까지 있었으면 세 개였겠지.
가끔 "그 때 낳았어야 했나..."싶다가도 이내 웃음이 난다.
낳았으면 지금쯤 또 다른 드라마 속을 살고 있었겠지 뭐.
20대 이혼녀로 다시 시작한 나의 삶은
처음엔 위축되기도 했지만
연애도 하고, 일도 하고, 공부도 하면서
조금씩 나만의 길을 채워나갔다.
이제 친구들은 대부분 가정을 꾸리고
행복해하기도, 버거워하기도 한다.
그들을 보며 마음이 급했던 적도 있었다.
'더 늦으면 안 돼!’
다시 짝을 찾아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그치던 시절.
돌이켜보면 나는 그동안
나를 '팔아야 하는 물건'처럼 여겼던 것 같다.
잘 가꾸고 채워서
누군가에게 다시 선택받으려 애쓰던 시간들.
하지만 이제는 포장지를 다 뜯어버렸다.
내가 나를 쓰기로 했다.
나와 나. 끝까지 함께 갈 운명공동체.
원래부터 그게 맞았는데 이제야 깨달았다.
작년 대학원 동문모임에서 어떤 언니가 말했다.
"니나, 너 이제 누가 좋다고 하면 '감사합니다'하고 가야돼."
나는 눈이 똥그래져서 물었다.
"제가요?"
언니는 당연하듯이 말했다.
"어"
그순간 표정관리가 되지 않았다.
잠시 머물다가 일이 생겼다며 일어나
그 모임에 다시는 가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이 나이에는 당연히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키우는 틀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틀 안에서 모두 행복했을까.
그리고 그 틀 안에 있지 않은 나는 행복하지 않은걸까.
내가 행복하지 않다면
어떻게 이렇게 웃고
어떻게 지금까지 이렇게 예쁘지?
하하. 진심이다.
나는 지금 충분히 잘 살고 있다.
삐뚤빼뚤?
그거 별거 아니다.
내 삶의 무게는 내가 정한다.
누군가에겐 경로이탈처럼 보일지 몰라도
나에겐 그냥 내 길일 뿐이다.
그 이상의 무게도 그 이하의 가치도 없다.
그러니 당신도 괜찮다.